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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사자성어 사전 - 차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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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피일(此日彼日) 오늘 내일 하면서 약속이나 기한 따위를 연기한다는 뜻.

 

차호위호(借虎威狐) 권세있는 사람을 배경삼아 뽐내다.

 

창업수성(創業守成) 창업은 나라를 처음으로 세우거나, 어떤 사업을 일으킴을 말하고, 수성은 부조가 이룩한 이 업을 이어받아 지킴.

 

創業易守成難(창업이수성난) (創業易守成難) 創:비롯할 시작할 창. 業:업 업. 守:지킬 수. 成:이룰 성. [원말] 이창업 난수성(易創業難守成). [출전]《唐書》〈房玄齡專〉,《貞觀政要》〈君道篇〉,《資治通鑑》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 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高祖)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太宗)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外征)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ㅗ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治世)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盛世)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태종 정관 연간(627∼649)의 치세]'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左僕射) 두여회(杜如晦),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右僕射) 방현령(房玄齡), 강직한 대부(大夫) 위징(魏徵)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善政)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 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창해상전(滄海桑田) 푸른 바다가 변하여 뽕밭으로 된다는 말로 곧 덧없는 세상이라는 뜻.(=桑田碧海)

 

창해유주(滄海遺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자(賢者) 또는 명작(名作)을 비유하는 말.

 

창해일속(滄海一粟) 한없이 넓은 바다에 떠 있는 한 알의 좁쌀. 크고 넓은 것 가운데 있는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하는 말.

 

채미지가(采薇之歌) 고사리를 캐는 노래

 

채신지우(采薪之憂) 자기 병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아파서 나무를 할 수 없다는 뜻.(-負薪之憂)

 

책기지심(責己之心) 스스로 제 허물을 꾸짖는 마음

 

책상퇴물(冊床退物) 글 공부만 하여 산 지식이 없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이름.

 

처성자옥(妻城子獄) 아내의 성과 자식의 감옥에 갇혀 있다. 妻子가 있는 사람은 집안 일에 완전히 얽매여서 다른 일에 꼼짝도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 곧 ① 하늘이 맑고 오곡 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가을을 형용하는 말. ② (흉노에게 있어, 전하여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나) 활약(동)하기 좋은 계절을 이르는 말.

天:하늘 천. 高: 높을 고. 馬:말 마. 肥:살찔 비. [원말] 추고마비(秋高馬肥). [동의어]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 [유사어] 천고기청(天高氣淸). [출전]《漢書》〈匈奴專〉 은(殷)나라 초기에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흉노는 주(周)ㅗ진(秦)ㅗ한(漢)의 삼왕조(三王朝)를 거쳐 육조(六朝)에 이르는 근 2000년 동안 북방 변경의 농경 지대를 끊임없이 침범 약탈해 온 표한(剽悍)한 유목 민족이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군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늘 고심했는데 전국시대에는 연(燕)ㅗ조(趙)ㅗ진(秦)나라의 북방 변경에 성벽을 쌓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기존의 성벽을 수축(修築)하는 한편, 증축 연결(增築連結)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흉노의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북방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흉노에게 우선 초원이 얼어붙는 긴 겨울을 살아야 할 양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지는[天高馬肥]'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고 한다.

천금매골(千金買骨) 열심히 인재를 구함.

 

천금매소(千金買笑) 천금을 주고 사랑하는 여자를 웃게 한다.

 

천년일청(千年一淸) 가능하지 않은 일을 바람. 황하(黃河)같은 탁류(濁流)가 맑아지기를 천년 동안 바란다

 

천려일득(千廬一得) 바보 같은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 속에는 한 가지 쓸만한 것이 있음. 천 번 생각하면 한 가지는 얻는다.

 

천려일실(千慮一矢) 현명한 사람도 실수를 할 수가 있음. 千:일천 천. 慮:생각할 려. 一:한 일. 失:잃을 실.

[원말] 지자천려 필유일실(智者千慮必有一失). [동의어] 지자일실(智者一失). [반의어] 천려일득(千廬一得). [참조] 배수지진(背水之陣). [출전]《史記》〈淮陰侯列傳〉 천 가지 생각 가운데 한 가지 실책이란 뜻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하나쯤은 실책이 있을 수 있다는 말. 한나라 고조의 명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조(趙)나라로 쳐들어간 한신(韓信)은 결전을 앞두고 '적장 이좌거(李左車)를 사로잡는 장병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지덕(知德)을 겸비한 그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전 결과 조나라는 괴멸했고, 이좌거는 포로가 되어 한신 앞에 끌려 나왔다. 한신은 손수 포박을 풀어 준 뒤 상석에 앉히고 주연을 베풀어 위로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천하 통일에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 있는 연(燕)ㅗ제(齊)에 대한 공략책을 물었다. 그러나 이좌거는 '패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않는 법[敗軍將 兵不語]'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신이 재삼 정중히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패장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쯤은 실책이 있고[智者千慮 必有一得]고 했습니다. 그러니, 패장의 생각 가운데 하나라도 득책이 있으면 이만 다행이 없을까 합니다." 그 후 이좌거는 한신의 참모가 되어 크게 공헌했다고 한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하늘의 본성(天道)을 명(命)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만물에게 부여해준 것을 본성(本性)이라고 한다.

 

천방지축(天方地軸) 어리석게 날뛰거나 너무 급하여 함부로 행동함.

 

천석고황(泉石膏 ?) 샘과 돌이 고황(膏 )에 들었다. 고질병이 되다시피 산수 풍경을 좋아함을 일컫는 말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병적(病的 )이라 할 만큼 깊다는 뜻.

 

천시불여지리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 하늘이 주는 좋은 때는 지리적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

 

천신만고(千辛萬苦) 온갖 고생. 또는 그것을 겪음.

 

천양지판(天壤之判) 아주 엄청난 차이.

 

천양현격(天壤懸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현격한 차이가 있음.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늘이 돕고 신이 도움.

 

천의무봉(天衣無縫) 선녀거 입은 옷은 바느질한 흔적이 없다는 뜻으로, 시문(詩文)의 글귀가 자연스럽고 재치 있게 잘 된 것을 비유한 말 또는 완전 무결함.

《出典》'太平廣記' 鬼怪神寄 곽한(郭翰)이 뜰에 누웠는데 절세미인이 나타나서, "저는 천상(天上)의 직녀(織女)이온데, 남편과 오래 떨어져 있어 울화병이 생겨서, 상제(上帝)의 허락을 받고 요양차 내려왔습니다."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기를 요구하더니 매일 밤 찾아왔다. 칠월 칠석이 되자 며칠 안 오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남편[牽牛]과의 재미는 좋았소?" 하자, "천상의 사랑은 지상의 사랑과 다릅니다.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니 질투는 마십시오." 했다. 곽한이 조용히 그녀의 옷을 살펴보니, 바느질한 곳이 전혀 없었다. 이상해서 물으니, "하늘의 옷은 원래 바늘이나 실로 꿰매는 것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가 벗은 옷은 그녀가 돌아갈 때면 저절로 가서 그녀의 몸에 입히는 것이었다. 徐視其衣竝無縫 翰問之 謂翰曰 天衣本非針線爲也 每去 輒以衣服自隨.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날, 직녀(織女)의 시녀가 소식을 한 번 전한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곽한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미인을 보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집안의 혈통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싫어도 아내를 맞이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고 부부의 사이도 좋지 않아 아들도 얻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말았다.

천인단애(千 斷崖) 천 길이나 되는 깍아지른 듯한 벼랑

 

천자만홍(千紫萬紅) 가지가지 빛깔로 만발한 꽃을 비유하는 말.

 

천재일우(千載一遇)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기회.

 

《出典》'文選' 袁宏 三國名臣序贊 동진(東晉)의 학자로서 동양 태수(東陽太守)를 역임한 원굉(袁宏)은 여러 문집에 시문(詩文) 300여 편을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文選》에 수록된 '三國名臣序贊'이다. 이것은《三國志》에 실려 있는 건국 명신 20명에 대한 행장기(行狀記)인데, 그 중 위(魏)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에서 원굉은 이렇게 쓰고 있다. 대저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곧 천년에 한 천리마도 없다. 夫未遇伯樂 則千載無一驥. 말[馬]에 대하여 안목이 높은 말[馬]의 명인 백락을 만나지 못한다면, 천년이 지나도 한 마리의 천리마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어진 신하가 명군(名君)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과 통한다.

대저 만 년에 한 번의 기회는 이 세상의 통칙이며

[夫萬歲一期 有生之通途(부만세일기 우생지통도)]

천 년에 한 번의 만남은 현군과 명신의 진귀한 해후다

[千載一遇, 賢智之嘉會(천재일우 현지지가회)]

이와같은 기회를 누구나 기뻐하지 않고는 못 견디니, 기회를 잃으면 누구나 어찌 능히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 순문약 : 후한(後漢) 말, 조조(曹操)의 참모로 활약했으나 조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반대하다가 배척당한 강직한 인물. [주]백락 : 주(周)나라 시대에 준마(駿馬)를 잘 가려냈다는 명인. 夫萬歲一期 有生之通塗 千載一遇 賢智之嘉會 遇之不能無欣 喪之何能無慨. 【동의어】천재일시(千載一時), 천재일회(千載一會), 천세일시(千歲一時) 【유사어】맹귀부(우)목(盲龜浮(遇)木)

천재지변(天災地變) 천재와 지변

 

천진난만(天眞爛漫) 조금도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천성 그대로 행동함.

 

철두철미(徹頭徹尾)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머리에서 꼬리까지 투철함, 즉 처음부터 끝까지 투철함

 

철면피(鐵面皮) ①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수치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사람. ②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름. 또 그런 사람. ③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음. 후안무치(厚顔無恥).

鐵:쇠 철. 面:낯ㅗ겉 면. 皮:가죽 피. [동의어] 후안무치(厚顔無恥). [유사어] 면장우피(面帳牛皮), 강안여자(强顔女子). [출전]《北夢?言(북몽쇄언)》,《虛堂錄》 왕광원(王光遠)이란 사람이 있었다. 학재가 뛰어나 진사(進士)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욕이 지나쳐 그는 고관의 습작시를 보고도 '이태백(李太白)도 감히 미치지 못할 신운(神韻:신비롭고 고상한 운치)이 감도는 시'라고 극찬할 정도로 뻔뻔한 아첨꾼이 되었다. 아첨할 때 그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았고 상대가 무식한 짓을 해도 웃곤 했다. 한 번은 고관이 취중에 매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때려 주고 싶은데, 맞아 볼 텐가?" "대감의 매라면 기꺼이 맞겠습니다. 자 어서…‥." 고관은 사정없이 왕광원을 매질했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동석했던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질책하듯 말했다. "자네는 쓸개도 없나? 만좌(滿座) 중에 그런 모욕을 당하고서도 어쩌면 그토록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잘 보이면 나쁠 게 없니." 친구는 기가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광원의 낯가죽은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鐵甲)과 같다."

철부지급(轍 之急) : 철부(轍 )는 수레바퀴 자국 속의 붕어로서 그 자국만큼의 물 만 있어도 살 수 있는 처지이다. 다급한 위기, 곤궁한 처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수레바퀴 자국 속의 붕어의 다급함

 

철주 : 남의 일을 못하게 막다. : 철주(철?)=잡아당길 철(制자 밑에 手자를 붙인자), 팔꿈치 주. 팔꿈치를 건드림. 곧 남의 팔꿈치를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하여 일에 훼방을 놓는 일을 말한다. 즉, 웃사람이 너무 간섭하여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여씨춘추 '심응(審應)'편, 공자가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 복자천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복자천은 공자보다 마흔 아홉 살이나 적은 제자였는데 공자는 그를 군자라고 칭찬한 일이 있다. 그가 노나라 애공 때 단보(亶父)란 지방의 장관으로 부임한 일이 있었다. 이른 세살로 죽은 공자가 살아 있을 때 일이었으니 그의 나이에 대한 기록이 사실과 틀림이 없다면 많아도 스물 남짓밖에 안되었을 때다. 복자천은 부임에 앞서, 임금이 간신들의 말에 의해 자기 하는 일에 간섭하게 될 것이 두려워 꾀를 썼다. 임금 가까이 있는 두 관원을 청해 함께 단보로 부임한 것이다. 그가 부임하자 고을 관원들이 모두 신임 장관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 복자천은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데리고 온 두 관원에게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그들이 정성들여 이름을 한창 적고 있노라면 복자천은 이따금 옆에서 그들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글씨가 제대로 될리가 만무였다. 그러면 복자천은 글씨가 그게 뭐냐고 성을 내며 야단을 쳤다. 두관원은 하도 속이 상해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복자천은, "자네들은 글씨가 원체 서툴러서 안되겠네. 부디 앞으로 조심해서 잘 하게" 하고 즉시 돌아가게 했다. 두 관원은 조정으로 돌아와 임금에게, "복장관 밑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하고 보고를 드렸다. "어째서냐?" 하고 임금은 물었다. "복장관은 저희들에게 기록을 하라고 시키고는 옆에서 팔을 흔들어 글씨를 바로 쓸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저희들 보고 글씨가 그게 뭐냐고 화를 내며 꾸중을 하는 통에 보고 있던 아전들까지 모두 웃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더 참을 수 없어 돌아온 것입니다." 임금 애공은 그들의 말을 듣고 크게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자천은 그것으로 과인의 부족함을 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가 하는 일에 필요 없는 간섭을 해온 것이리라. 너희들이 아니었던들 과인은 또 같은 실수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애공은 즉시 심복을 단보로 보내 자천에게 이렇게 전하게 했다. "이제부터 단보는 과인의 것이 아니고 경의 것이다. 단보를 위한 일이면 무슨 일이든 과감히 행하라. 결과는 5년 뒤에 보고하면 된다." 이리하여 복자천은 자기 생각대로 단보를 다스릴 수 있었다. 단보의 백성들이 살기 좋게 되었다는 소문이 공자의 귀로 들려 왔다. 3년 되던 해 공자는 무마기란 제자를 단보로 보내 복자천의 정치가 어떤 것인가를 보고 오게 했다. 무마기는 평민 옷차림을 하고 단보로 들어갔다. 어느날 밤 강변의 한 고기잡이가 그물에 걸린 고기를 도로 강물에 던지는 것을 본 그는, "모처럼 애써 잡은 고기를 왜 도로 물에 넣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고기잡이는, "어린고기는 잡지 말라는 복장관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 물에 넣은 것은 어린 고기들뿐입니다." 더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무마기는 그 길로 돌아와 공자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자천의 덕은 단보의 구석구석까지 다 보급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마치 무서운 법령이 옆에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습니다." 했다. 논어 공야장편에 "군자로다,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으면 이 사람이 어찌 이런 덕을 가질 수 있으리오" 하고 공자가 감탄한 것도 이 이야기를 들은 뒤의 일이 아닌지 알 수 없다.(최동윤의 고사성어)

철중쟁쟁(鐵中錚錚) 같은 또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철천지원(徹天之寃) 하늘에 사무치도록 크나큰 원한.

 

철천지한(徹天之恨) 하늘에 사무치는 원한

 

청담(淸談) ① 명리(名利)ㅗ명문(名聞)을 떠난 청아(淸雅)한 이야기. 고상한 이야기. ② 위진 시대에 유행한 노장(老莊)을 조술(祖述)하고 속세를 떠난 청정무위(淸淨無爲)의 공리공론(空理空論).

淸:맑을 청. 談:말씀 담. [유사어] 청언(淸言), 청담(淸譚). [출전]≪晉書≫ <?超傳(극초전)> <王衡傳>. ≪宋書≫ <蔡郭傳論>. ≪顔氏家訓≫ 위진 시대(魏晉時代:3세기 후반)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사회가 혼란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 난세였다. 게다가 정치적 권력자와 그에 추종하는 세속적 관료들의 횡포도 극심했다. 그래서 당시 사대부(士大夫) 간에는 오탁(汚濁)한 속세를 등지고 산림에 은거(隱居)하여 노장(老莊)의 철학이라든가 문예 등 고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죽림 칠현(竹林七賢), 곧 산도(山濤) 완적(阮籍) 혜강(?康) 완함(阮咸) 유령(劉伶) 상수(尙秀) 왕융(王戎)은 도읍 낙양(洛陽) 근처의 대나무 숲에 은거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술에 취한 채 '청담'-청신기경(淸新奇警:산뜻하고 기발함)한 이야기, 곧 세속의 명리(名利) 명문(名聞)희비(喜悲)를 초월한, 고매한 정신의 자유 세계를 주제로 한 노장(老莊)의 철학-을 논하며 명교(名敎:儒敎) 도덕에 저항했다.

청운지지(靑雲之志)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욕망.

 

《出典》張九齡 朝鏡見白髮 / '史記' 伯夷列傳 장구령은 현종(玄宗) 때의 어진 재상으로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모략으로 인해 벼슬길에서 파직되어 초야에서 여생(餘生)을 보냈다. 다음은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의 감회를 읊은 시이다. 옛날 청운의 뜻을 품고 벼슬길에 나아갔는데 다 늙은 지금에 와서 차질을 빚게 되었다. 누가 알리요 밝은 거울 속의 그림자와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서로 측은히 여기고 있는 것을. 宿昔靑雲志蹉跌白髮年 誰知明鏡裏形影自相潾 오늘날, 보통이 아닌 큰 뜻, 입신출세에 대한 야망을 '청운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청운'이라는 말은 옛날《史記》'伯夷列傳'에도 나오며, 다음과 같이 쓰여지고 있다. 항간의 사람들은 행실을 닦아 이름 세우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靑雲의 선비라고 붙이는 것이 아니니, 어찌 능히 후세에 베풀 수 있으랴! 閭巷之人 欲砥行立名者 非附靑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

청천백일(靑天白日) 맑게 갠 하늘에서 밝게 비치는 해

 

[출전]《唐宋八 家文》〈韓愈 與崔群西〉,《朱子全書》〈諸子篇〉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빛나는 해라는 뜻. 곧 ① 맑게 갠 대낮. ② 뒤가 썩 깨끗한 일. ③ 원죄가 판명되어 무죄가 되는 일. ④ 푸른 바탕의 한복판에 12개의 빛살이 있는 흰 태양을 배치한 무늬. 당나라 중기의 시인ㅗ정치가인 한유[韓愈:자는 퇴지(退之), 768∼824]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사람인데 그에게는 최군(崔群)이라는 인품이 훌륭한 벗이 있었다. 한유는 외직(外職)에 있는 그 벗의 인품을 기리며 〈최군에게 주는 글[與崔群書]〉을 써 보냈는데 명문(名文)으로 유명한 그 글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좋고 싫은 감정이 있을 터인데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모두 자네를 흠모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봉황(鳳凰)과 지초[芝草:영지(靈芝)]가 상서로운 조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며 '청천 백일'이 맑고 밝다는 것은 노예인들 모를 리 있겠는가?" [주] 여기서 '청천백일'이란 말은 최군의 인품이 청명(淸明)하다는 것이 아니라 최군처럼 훌륭한 인물은 누구든지 알아본다는 뜻임. 당송팔대가 : 당(唐:618∼906)나라와 송(宋:北宋, 960∼1127)나라 시대의 여덟 명의 저명한 문장 대가(大家). 곧 당나라의 한유(韓愈:韓退之) 유종원(柳宗元:柳子厚),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歐永叔) 왕안석(王安石:王介甫) 증공(曾鞏:會子固) 소순(蘇洵:蘇明允) 소식(蘇軾:蘇東坡) 소철(蘇轍:蘇子由). 당송 팔가, 팔대가라고도 일컬음.

청천벽력(靑天霹靂) '뜻밖의 큰 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靑:푸를 청. 天:하늘 천. 霹:벼락 벽. 靂:벼락 력. [원말] 청천비벽력(靑天飛霹靂). [출전] 육유(陸游)의《劍南詩稿》〈九月四日鷄未鳴起作〉 맑게 갠 하늘의 벼락(날벼락)이란 뜻. ① 약동하는 필세(筆勢)의 형용. ② 생각지 않았던 무서운 일. ③ 갑자기 일어난 큰 사건이나 이변(異變)의 비유. 이 말은 남송(南宋)의 대시인 육유[陸游:호(號)는 방옹(放翁)]의《검남시고(劍南詩稿)》〈9월4일 계미명기작(九月四日鷄未鳴起作)〉에 나오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의 끝 구절이다.

방옹이 병으로 가을을 지내고 [放翁病過秋(방옹병과추)]

홀연히 일어나 취하여 글을 쓰니 [忽起作醉墨(홀기작취묵)]

정히 오래 움츠렸던 용과 같이 [正如久蟄龍(정여구칩룡)]

푸른 하늘에 벼락을 치네 [靑天飛霹靂(청천비벽력)]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출어람이 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의 준말로서, 쪽에서 우러난 푸른 빛이 쪽보다 낫다는 뜻. 흔히 제자가 스승 보다 더 나아짐을 일컫는 뜻.

《出典》'荀子' 勸學篇 이 말은 전국시대의 유학자(儒學者)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글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靑取之於藍(청취지어람)]

쪽빛보다 더 푸르고 [而靑於藍(이청어람)]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氷水爲之(빙수위지)]

물보다도 더 차다 [而寒於水(이한어수)]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끊임없이 발전과 향상을 목표로 하여 노력해야 하고 중도에서 그만두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학문은 더욱 깊어지고 순화되어 한 걸음씩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여기서 '푸름과 얼음'의 비유가 등장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학문과 마차가지로 그 과정을 거듭 쌓음으로써 그 성질이 더욱 깊어지고 순화되어 가는 것이다. 스승에게 배우기는 하지만 그것을 열심히 익히고 행함으로써 스승보다 더 깊고 높은 학문과 덕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이 너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그를 능가하기는 어렵다.【준 말】출람(出藍) 【동의어】출람지예(出藍之譽), 출람지재(出藍之才), 후생각고(後生角高), 출람지영예(出 藍之榮譽)

초미지급(焦眉之急) 눈썹이 타게 될 만큼 위급한 상태. (=燒眉之急)

 

초동목수(樵童牧수) 나무하는 아이와 소 먹이는 총각. 즉, 배우지 못한 천한 사람을 일컫는 말.

 

초록동색(草綠同色) 같은 처지나 같은 경우의 사람들끼리 함께 행동함.=가재는 게 편.

 

촉견폐일(蜀犬吠日) 촉(蜀)나라의 개는 해를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해만 보면 짖는다. 식견이 좁은 사람이 선하고 어진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고 의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조그만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 곧, 간단한 말로 사물의 가장 요긴한 데를 찔러 듣는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을 이름.

《出典》'學林玉露' '학림옥로(學林玉露)'라는 책은 남송(南宋) 때의 나대경(羅大徑)이, 찾아오는 손님들과 주고받은 청담(淸談)을 시동(侍童)에게 기록하게 한 것으로 '天 地 人'의 세 부분 18권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 중 '지부(地部)' 제7권 <살인수단(殺人手段)>에는 종고선사(宗?禪師)가 다음과 같이 선(禪)을 논하여 말했다. 비유하면 한 수레의 병기를 싣고서 하나를 희롱하여 마치면 또 다른 하나를 꺼내 가지고 와서 희롱함과 같지만, 이것이 곧 사람을 죽이는 수단은 아니다. 나는 곧 단지 촌철(寸鐵)이 있으므로, 문득 사람을 죽일 수 있다. 宗?論禪曰 譬如人載一車兵器 弄了一件 又取出一件來弄 便不是殺人手段 我則只有寸鐵 便可殺人. 이것은 그가 선(禪)의 요체(要諦)를 갈파한 말이므로, 살인이라고 하지만 물론 칼날로 상처를 입히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 속의 속된 생각을 없애는 것'을 뜻한다. 아직 크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그 속된 생각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성급하게 이것 저것 대답을 해 오겠지만, 정신의 집중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두 날것들뿐이다. 그와 같은 칼로는 몇 천 몇 만 개나 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모든 일에 온 몸과 온 정성을 다 기울일 때, 충격적으로 번득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큰 깨달음인 것이다.

추기급인(推己及人) : 제 마음을 표준 삼아 남의 마음을 추측한다는 뜻으로 (推 : 밀 추, 己 : 자기 기, 及 : 미칠 급, 人 : 사람 인)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제 배 부르면 남의 배 고픈 줄 모른다'는 속담과 그 뜻이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큰 눈이 내렸다.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우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푹 취해 있었다. 경공은 눈이 계속 내리면 온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 재상인 안자(晏子:안영)가 경공의 곁으로 다가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설경에 도취되어 흥취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들뜬 목소리로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치 봄날씨처럼 따뜻한 게 조금도 춥지 않아"라고 말했다. 안자는 경공의 여우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은지 되물었다.

그러나 경공은 안자가 왜 그렇게 묻는지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생각도 않고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안자는 안색을 바꾸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또 누군가가 피로해 하지 않을까를 늘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공께서는 자신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시는군요." 안자의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자는 제나라의 정치가로 국민의 신망이 두터웠고,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훌륭한 재상이었다. 그는 너무나 검소하여 밥상에 반찬을 세 가지 이상 올리지 못하게 했으며, 늘 누더기 같은 낡은 옷을 입고 다녔다. 항상 백성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던 그는 편안한 일상에 묻혀 눈오는 경치에만 정신을 빼앗긴 채 추위에 떨고 있을 백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공의 불찰을 옛 군주들의 예를 들어 따끔하게 지적하였다. 군주라면 마땅히 도량을 넓게 하여 자기 중심적인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마음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오늘날 이 말은 '내 배 부르면 종의 밥 짓지 말라 한다'는 속담이나 또는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과 같이 남의 어려움이나 불행도 자기 중심적으로 소홀히 여긴다는 의미로 쓰인다.

추우강남(追友江南) 친구 따라 강남간다. 주견 없는 행동을 뜻함.

 

축록(逐鹿) 권력이나 지위를 얻기 위하여 서로 다투는 일.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사슴을 쫒는 사람은 그 뒤를 보지 않는다. 사슴을 잡기 위하여 그 뒤를 보는 사람은 산이 깊고 험한가를 보지 않음.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음,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다른 일을 돌보지 않음.(逐鹿者不顧兎) (-攫金者不見人; 돈을 움켜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동의어] 축수자목불견태산(逐獸者目不見太山). [출전]《淮南子》〈說林訓篇〉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뜻. 곧 ① 명예와 이욕(利慾)에 미혹(迷惑)된 사람은 도리도 저버림. ② 이욕에 눈이 먼 사람은 눈앞의 위험도 돌보지 않음. 또는 보지 못함. ③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음.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중앙 정권에 대항적인 입장을 취했던 왕족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 ? ∼ B.C.122)은 문하(門下) 식객(食客)의 도움을 받아 많은 서책을 저술했는데, 그중 특히 도가(道家)사상을 중심으로 엮은《회남자(淮南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逐鹿者 不見山(축록자 불견산)]

돈을 움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

[攫金者 不見人(확금자 불견인)]

춘추필법(春秋筆法)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논조.(直筆) 오경(五經)의 하나인 춘추(春秋)와 같이 비판의 태도가 썩 엄정함을 이르는 말. 대의 명분을 밝히어 세우는 사실의 논법을 일컫기도 한다.

 

춘래불사촌(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봄답지 않다.

 

춘치자명(春雉自鳴) 봄철의 꿩이 스스로 운다. 시키거나 요구하지 아니하여도 제풀에 하는 것을 말한다.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되돌아간다.

 

출몰무쌍(出沒無雙) 들고 나는 것이 비할 데 없이 잦음.

 

출장입상(出將入相) 전시(戰時)에는 싸움터에 나가서 장군(將軍)이 되고 평시(平時)에는 재상(宰相)이 되어 정치를 함.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나갈 때는 부모님께 반드시 출처를 알리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뵈어 안전함을 알려 드린다.

 

충언역이(忠言逆耳)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로움

 

취모멱자(吹毛覓疵) 털 사이를 불어가면서 흠을 찾음. 남의 결점을 억지로 낱낱이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취사선택(取捨選擇)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 잡음

 

취생몽사(醉生夢死) 아무 의미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텅하게 살아감.

 

취약(脆弱) 허약하고 가냘픔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 惻隱之心仁之端也(측은지심인지단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근본이다.

 

층층시하(層層侍下) 부모·조부모가 다 살아 있는 시하.

 

치사분지(治絲 之) 실을 급히 풀려고 하면 오히려 엉킨다. 가지런히 하려고 하나 차근차근 하지 못하고 급히 해서 오히려 엉키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치인설몽(痴人設夢) 어리석은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한다. 바보를 상대로 하여 어떤 말을 할지라도 처음부터 소용이 없음을 뜻한다.

 

癡:어리석을 치. 人:사람 인. 說:말씀 설, 달랠 세. 夢:꿈 몽. [원말] 대치인몽설(對癡人夢說). [동의어] 치인전설몽(癡人前說夢). [출전]《冷齋夜話》〈卷力〉,《黃山谷題跋》 바보에게 꿈 이야기를 해준다는 뜻. 곧 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의 비유. ② 종작없이 지껄이는 짓의 비유. ③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이해되지 않음의 비유. 남송(南宋:1127∼1279)의 석혜홍(釋惠洪)이 쓴《냉재야화(冷齋夜話)》〈권9(卷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시대, 서역(西域)의 고승인 승가(僧伽)가 양자강과 회하(淮河) 유역에 있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지방을 행각(行脚: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할 때의 일이다. 승가는 한 마을에 이르러 어떤 사람과 이런 문답을 했다.

"당신은 성이 무엇이오[汝何姓]?"

"성은 하가요[姓何哥]."

"어느 나라 사람이오[何國人]?"

"하나라 사람이오[何國人]."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書道家) 이옹(李邕)에게 승가의 비문을 맡겼는데 그는 '대사의 성은 하 씨(何氏)이고 하나라 사람[何國人]이다'라고 썼다. 이옹은 승가가 농담으로 한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석혜홍은 이옹의 이 어리석음에 대해《냉재야화》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곧 이른바 어리석은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此正所謂對癡說夢耳].' 이옹은 결국 꿈을 참인 줄 믿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주] '치인설몽'이란 말은 요즈음에는 본뜻과는 반대로 바보(치인)가 '종작없이 지껄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이옹 : 일명 이북해(李北海), 678∼747. 특히 행서(行書)에 능하여 생전에 쓴 비서(碑書)가 800여에 이른다고 함.

치지도외(置之度外) 내버려 두고 상대하지 않음

 

칠령팔락(七零八落) 나무나 풀이 산산이 어울어 떨어짐과 같이 세력이 떨어지고 연락이 끊기어 형편없이 됨을 말한다.

 

칠보지재(七步之才)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

七:일곱 칠. 步:걸음 보. 之:갈 지(…의). 才:재주 재. [동의어] 칠보재(七步才), 칠보시(七步詩). [유사어] 의마지재(倚馬之才), 오보시(五步詩). [출전]《世說新語》〈文學篇〉 삼국 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와(魏王) 조조(曹操)는 문장 출신이었지만 건안(建安) 문학의 융성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비(丕:186∼226)와 셋째 아들인 식(植)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식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비를 제쳐놓고 식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비는 어릴 때부터 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비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189∼226)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220∼226)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했다. 어느 날, 문제는 동아왕(東阿王)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이렇게 하명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짓지 못할 땐 중벌을 번치 못할 것이니라."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심히 핍박(逼迫)하는가'라는 뜻의 칠보시(七步詩)를 듣자 문제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주] 이후 '자두연두기' 약하여 '자두연기(煮豆燃?)'는 '형제 혹은 동족간의 싸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음.

칠전팔기(七顚八起)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또 일어난다. 여러 번 실패해도 굽히지 않고 분투함을 일컫는 말. 실패를 거듭하여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섬.

 

칠전팔도(七顚八倒)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엎어진다.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음

 

칠종칠금(七縱七擒) 상대를 마음대로 함 제갈량이 맹획을 여러 번 잡아서 놓아주었는 말

 

침소봉대(針小棒大) 작은 사건을 크게 과장해서 이야기함.

 

침어락안(沈魚落雁) 물고기는 잠기고 기러기는 떨어진다.

 

침윤지참(沈潤之讒) 아무 표시없이 은근히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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