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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사자성어 사전 - 아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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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물(阿堵物) 돈 대신 사용하는 말.

아비규환(阿鼻叫喚) 여러 사람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울부짖는 참상.

아유구용(阿諛苟容) 아첨하여 구차하게 굶.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에게만 이롭게 하려는 것.= 제 논에 물 대기.

아치고절(雅致高節) 아담한 풍치와 높은 절개. '매화'의 속칭.

안중지정(眼中之釘) 눈에 못이 박힌 것처럼 괴로운 존재

안고수비(眼高手卑) 눈은 높으나 손이 낮음. 눈은 높으나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 전에는 사치하게 살던 사람이 가난해져 눈은 높고 돈은 전처럼 쓰지 못할 경우를 일컫기도 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 편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앎.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기며 삶. <後漢書>

안서(雁書) 철따라 이동하는 기러기가 먼 곳에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편지를 일컫는 말.

[동의어] 안찰(雁札), 안신(雁信), 안백(雁帛). [참조] 인생조로(人生朝露). [출전]《漢書》〈蘇武專〉한(漢)나라 소제(昭帝)는 19년 전, 선제(先帝)인 무제(武帝) 때(B.C. 100)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匈奴)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억류당한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의 귀환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현지에 도착한 특사가 곧바로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에게 소무의 석방을 요구하자 선우는 '소무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죽었다'며 대화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은밀히 특사의 숙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무를 따라왔다가 흉노의 내란에 말려 일행이 모두 잡힌 뒤 투항한 사람 중하나요. 그런데 그때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소무는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당한 뒤 아직도 그곳에서 혼자 어렵게 살아가고 있소." 이튿날 특사는 선우를 만나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황제께서 사냥을 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는 헝겊이 감겨 있었소. 그래서 풀어 보니 '소무는 대택(大澤:큰 못)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이것만 봐도 소무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 않소?" 안색이 변한 선우는 부하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제가 잘 모르고 실언을 한 것 같소. 그는 살아 있다고 하오." 꾸며댄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며칠 후 흉노의 사자(使者)가 데려온 소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의 손에는 한나라 사신의 증표인 부절(符節)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이 고사에 연유하여 그 후 편지를 안서라고 일컫게 되었다.

안중지인(眼中之人) 눈 속에 있는 사람. 정(情)든 사람을 뜻한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말하기도 하고, 눈 앞에 없어도 평생 사귄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안중지정(眼中之釘) 눈에 박힌 못이라는 뜻. 곧 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비유. ② 몹시 싫거나 미워서 항상 눈에 거슬리는 사람(눈엣가시)의 비유.

眼:눈 안. 中:가운데 중. 之:갈 지(…의). 釘:못 정. [동의어] 안중정(眼中釘). [출전]《新五代史》〈趙在禮專〉당나라 말, 혼란기에 조재례(趙在禮)라는 악명 높은 탐관오리가 있었다. 그는 하북 절도사(河北節度使) 유인공(劉仁恭)의 수하 무장이었으나 토색(討索)질한 재무를 고관대작에게 상납, 출세길에 오른 뒤 후량(後梁)ㅗ후당(後唐)ㅗ후진(後晉)의 세 왕조에 걸쳐 절도사를 역임했다. 송주(宋州:하남성 내)에서도 백성들로부터 한껏 착취한 조재례가 영흥(永興) 절도사로 영전, 전임하게 되자 송주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놈이 떠나가게 되었다니 이젠 살았다. 마치 '눈에 박힌 못[眼中之釘]'이 빠진 것 같군." 이 말이 전해지자 화가 난 조재례는 보복을 하기 위해 1년만 더 유임시켜 줄 것을 조정에 청원했다. 청원이 수용되자 그는 즉시 '못 빼기 돈[拔釘錢(발정전)]'이라 일컫고 1000푼씩 납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미납자는 가차없이 투옥하거나 태형에 처했다. 이처럼 악랄한 수법으로 착취한 돈이 1년간에 자그마치 100만 관(貫)이 넘었다고 한다.

안하무인(眼下無人) 눈아래 사람이 없음

암중모색(暗中摸索)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음. 어림으로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아내려 함.

[준말] 암색(暗索). [동의어] 암중모착(暗中摸捉).[유사어] 오리무중(五里霧中). [출전]《隋唐佳話》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였던 즉천무후(則天武后:690∼705) 때 허경종(許敬宗)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경망한데다가 방금 만났던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할 적도로 건망증이 심했다. 어느 날, 친구가 허경종의 건망증을 비웃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네 같은 이름 없는 사람의 얼굴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조식(曹植)이나 사령운(謝靈運) 같은 문장의 대가라면 '암중모색'을 해서라도 알 수 있다네." [주] 조식 :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 뛰어난 시재(詩才)를 시기하는 형 문제[文帝:후한을 멸하고 위(魏)나라를 세운 조비(曹丕), 220∼226]의 명을 받고 지은〈칠보시(七步詩)〉는 특히 유명함. 사령운 : 남북조 시대 남송(南宋)의 시인. 별명 사강락(謝康樂).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치적(治積)을 쌓지 못하자 그의 글재주를 아끼는 문제(文帝:424∼453)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임. 이후 막대한 유산으로 연일 수백 명의 문인(文人)들과 더불어 산야(山野)에서 호유(豪遊)하다가 반역죄에 몰려 처형됨. 서정(抒情)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 문화 사상에 산수시(山水詩)의 길을 열어 놓음에 따라 '산수 시인'이라 불리기도 함.《산수시》《산거적(山居賊)》 등의 시집을 남김.(385∼433).

암향부동(暗香浮動) 그윽한 향기가 떠돔.

앙급지어(殃及池魚) 재난이 뜻하지 않은 곳에 미치다. 초(楚)나라 성문에 불이 붙어, 성 밖에 있는 연못의 물로 이 불을 끄게 되었는데, 못의 물이 전부 없어져 그 속에 있던 고기들이 모두 말라 죽은 고사에서 비롯됨. 이유 없이 재앙(災殃)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애매모호(曖昧模糊) 사물의 이치가 희미하고 분명치 않음

애인여기(愛人如己)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듯 함.

애인자인항애지(愛人者人恒愛之)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늘 그를 사랑해준다.

약방감초(藥房甘草) 무슨 일에나 빠짐없이 끼임.

약육강식(弱肉强食)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힘.

양금택목(良禽擇木)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는 뜻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김의 비유. [동의어] 양금상목서(良禽相木棲).

[출전]《春秋左氏專》〈衷公十八年條〉,《三國志》〈蜀志〉춘추 시대, 유가(儒家)의 비조(鼻祖)인 공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遊說)하기 위해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세 상의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良禽擇木]고 했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하느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공자의 귀국을 만류했다.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더 머물도록 하시오." 공자는 기분이 풀리어 위나라에 머물려고 했으나 때마침 노(魯)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간청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공자는 노구(老軀)에 스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노나라로 돌아갔다.

양대(陽臺) 해가 잘 비치는 대. 남녀의 정교(情交)를 의미한다.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 한 번 정교(情交)를 맺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고기를 내걸고 실상은 개고기를 팖. 겉과 속이 다름.=양질호피(羊質虎皮).

《出典》'晏子春秋' 無門關 揚子法言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 때의 일이다. 영공은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晏子)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그 유행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며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禁令)을 내렸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과 같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십시오.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공은 안영의 진언(眞言)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임금께서는 궁중에서는 미인에게 남장하는 것을 용서하면서도, 궁중 밖에서는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마치 소의 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궁주에서는 미인에게 남장시키는 것을 금하지 않는 것입니까? 궁중에서 금한다면 궁중 밖에서도 감히 남장하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君使服之於內 而禁之於外 猶懸牛首于門 而賣馬肉於內也 公何以不使內勿服 則外莫敢爲也. 【동의어】현양수매마육(懸羊首賣馬肉),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유사어】양질호피(羊質虎皮), 현옥고석(衒玉賈石)

약롱중물(藥籠中物) 약농 속의 약품이란 뜻으로, 항상 곁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인물(심복)을 이르는 말. 藥:약 약. 籠:농 롱. 中:가운데 중. 物:만물 물.

[동의어] 약롱지물(藥籠之物). [참조] 양약고구(良藥苦口). [출전]《唐書》〈狄仁傑專〉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高宗:628∼683)의 황후였던 즉천무후(則天武后)때의 이야기이다. 14세 때 2대 황제인 태종(太宗)의 후궁이 된 그녀(무후)는 26세 때 태종이 죽자 여승이 되었으나 재색(才色)을 탐낸 고종의 명예 따라 환속(還俗), 그의 후궁으로 있다가 고종 6년(655)에 황후가 되었다. 그 후 고종이 중풍에 걸리자 무후는 스스로 천후(天后)라 일컫고 수많은 명신(名臣)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고 전 황후의 소생인 태자를 폐하는 등 포악한 정치를 했다. 고종이 죽은 뒤 무후의 친아들인 중종(中宗:4대)ㅗ예종(叡宗:5대)을 세웠으나 곧 폐하고 67세 때(690년)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690∼705)라고 했다.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가 출현한 이 정변을 무주 혁명(武周革命)이라고 한다. 그 무렵, 적인걸(狄仁傑:630∼700)이라는 청렴 강직하고 식견이 높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더없이 잔인하고 명석한 무후를 직간(直諫), 보필하여 어지러웠던 정치를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유능한 선비를 추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조야(朝野)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따라서 적인걸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원행충(元行沖)과 같은 박학다재(博學多才)한 인물도 있었다. 그 원행충이 어느 날, 적인걸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공(相公) 댁에는 '맛있는 것(훌륭한 인재)'이 많습니다. 혹 과식하시어 배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저 같은 쓴 약도 곁에 놔두십시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良藥苦於口而利於病], 충언을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忠言逆於耳而利於行]'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자 적인걸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야말로 바로 내 얄롱중물일세[君正吾藥籠中物].' 임, 하루라도 곁에 없어서는 안 되고 말고[不可一日無也]." [주] 적인걸 : 산서성(山西省) 사람. 당나라 고종(高宗) 때 강남 순무사(江南巡撫使)가 되어 치적을 쌓은 뒤 위주 자사(魏州刺史)로 있을 때 거란(?丹)의 침략군을 물리쳐 공을 세움. 재상으로 있을 때 즉천무후(則天武后)에게 직간하여 그녀의 친조카인 무삼사(武三思)로 하여금 황통(皇統)을 잇게 하려는 대역(大逆)을 막고 당황실을 회복, 수호하는 데 힘씀. 이후 국로(國老)로 예우 받음. 예종(睿宗) 때 양국공(梁國公)에 추봉됨.(630∼700).

양상군자(梁上君子) 들보 위의 군자, 집 안에 들어온 도둑의 비유. 천정 위의 쥐를 달리 일컫는 말.

《出典》'後漢書' 陳寔傳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태구현(太丘縣 : 河南省 所在)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어느해 흉년이 들어 현민의 생계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밤, 진식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내가 몰래 드러와 대들보 위에 숨었다. 도둑이 분명했다. 진식은 모르는 척하고 독서를 계속하다가 아들과 손자들을 대청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악인(惡人)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그러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는 마루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진식이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이로부터 이 고을에 다시는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 時勢荒民儉 有盜夜入其室 止於梁上 寔陰見乃起自整拂 呼命子孫 正色訓之曰 夫人不可不自勉 不善之人未必本惡 習以性成 遂至於此 梁上君子者是矣 盜大驚自投於地 稽?歸罪 寔徐 譬之曰 視君狀貌不似惡人 宜深剋己反善 然此當由貧困 令遺絹二匹 自是一縣無復盜竊.

양수집병(兩手執餠) 두 손에 떡을 진 격.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좋은약은 쓰다.

《出典》'史記' 留侯世家 / '孔子家語' 六本篇 이것은 孔子의 말씀으로《孔子家語》'六本篇',《설원(說苑)》'정간편(正諫篇)'에 실려 있다. 효과가 있는 좋은 약은 입에 넣을 때 쓰고, 사람들에게 듣는 충고는 좋은 말일수록 귀에 들어올 때 거슬린다는 뜻이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 殷나라 탕왕(湯王)은 곧은 말을 하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번창했고, 夏나라의 걸왕(桀王)과 殷나라의 주왕(紂王)은 무조건 따르는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 임금에게 다투는 신하가 없고, 아버지에게 다투는 아들이 없고, 형에게 다투는 동생이 없고, 선비에게 다투는 친구가 없다면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하가 諫해야 하고,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들이 諫해야 하고, 형이 잘못을 저지르면 동생이 諫해야 하고,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친구가 諫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나라에 위태하고 망하는 징조가 없고, 집안에 패란(悖亂)의 악행도 없고, 부자와 형제에 잘못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孔子曰 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 湯武以棍棍而昌 桀紂以唯唯而亡 君無爭臣 父無爭子 兄無爭弟 士無爭友 無己過者 未之有也 故曰 君失之 臣得之 父失之 子得之 兄失之 弟得之 己失之 友得之 是以國無危亡之兆 家無悖亂之惡 父子兄弟無失 而交遊無絶也.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간 학정에 시달려온 민중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에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훗날의 한고조)은 역전(歷戰) 3년 만(B.C. 206)에 경쟁자인 항우(項羽)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했다. 유방은 3세 황제 자영(子?)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자 강직한 용장 번쾌(樊睫)가 간했다.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오소서." 유방이 듣지 않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張良)이 간했다. "당초 진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간은 서민이 이처럼 왕궁을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정하시자 재보와 미색(美色)에 현혹되어 포악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於耳利於行], 독약(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의 진언을 가납(嘉納:권하는 말을 기꺼이 들음)하시오소서." 유방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上:함양 근처)에 진을 쳤다. 【원 말】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동의어】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 간언역어이(諫言逆於耳), 금언역어이(金言逆於耳)

양자력(量自力) 자기 자신의 능력의 정도는 자신만이 안다는 의미. 어떤 일을 마음이 곧고 충실하게 탐구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양자택일(兩者擇一) 둘 중의 하나를 택함.

양포지구(楊布之狗) 변한 겉모습을 보고 속까지 변했다고 판단하다. 양포(楊布)가 외출할 때는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맞아 검은 옷으로 갈아 입고 돌아왔는데, 양포의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대서 개를 때리려 했더니, 형 양주(楊朱)가 말하기를 "네 개가 나갈 때는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온다면 너 역시 괴상하게 여기지 않겠냐"고 나무랬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겉모습이 변한 것을 보고, 속까지 변해버렸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양호유환(養虎遺患) 범을 길러 우환거리를 남김. 호랑이를 키워 후에 그 호랑이에게 해를 입는다는 말.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한테 도리어 손해를 입게 된다. 혹은 스스로 화를 만들어 당함을 뜻하는 말이다.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는 대가리, 짐승의 고기는 꼬리가 맛이 좋음을 이르는 말.

어로불변(魚魯不辨) 매우 무식함.

어망홍리(魚網鴻離)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렸다. 즉, 구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반대로 구하려고 하지 않은 것을 얻었다는 말이다.

어목연석(魚目燕石) 어목(魚目)은 물고기의 눈, 연석(燕石)은 燕山의 돌. 모두 玉과 비슷하여 옥으로 혼동함. 허위를 진실로 우인(愚人)을 현인( 賢人)으로 혼동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변성룡(魚變成龍)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됨. 어릴 적에는 신통치 못하던 사람이 자라서 훌륭하게 됨을 일컫는 말이다.

어부지리(漁父之利) 두 사람이 이해 관계로 다투는 사이에 어뚱한 사람이 } 이익을 봄.

《出典》戰國策 燕策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하도록 부탁했다. 조(趙)나라에 도착한 소대(蘇代)는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하여 혜문왕의 연나라 침공 계획을 철회시켰다고 한다. "오늘 귀국에 들어오는 길에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 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雙方)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사납게도 그곳을 지나가던 어부(漁夫)에게 그만 둘다 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입니다. 연(燕) 조(趙)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인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입니다." "과연 옳은 말이오."하며 혜문왕은 침공을 중지했다. 趙且伐燕 蘇代爲燕謂惠王曰 今者臣來過易水 蚌方出曝 而鷸啄其肉 蚌合而?其喙 鷸曰 今日不雨 明日不雨 卽有死蚌 蚌亦爲鷸曰 今日不出 明日不出 卽有死鷸 兩者不肯相舍 漁者得而幷禽之 今趙且伐燕 燕趙久相支 以弊大衆 臣恐强秦之爲漁夫也 故願王之熟計之也 惠王曰 善乃止.

【동의어】어부지리(漁父之利),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兎之爭), 전부지공(田父之功),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 즉,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뜻한다.

어수지친(魚水之親) 고기와 물의 친함. 임금과 백성이 친밀한 것을 일컫기도 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水魚之交)

어유부중(魚遊釜中)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釜中之魚)

언문풍월(諺文風月) 지난날, 우리 글로 지은 시가(詩歌) 따위를 얕보아 이르던 말. 격식을 갖추지 아니한 사물을 이르는 말.

억강부약(抑强扶弱)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일.

억조창생(億兆蒼生) 수많은 백성.

언서지망(偃鼠之望) 쥐는 작은 동물이라서 강물을 마신대야 자기 배 하나 가득히 밖에 더 못 마신다. 자기 정한 분수가 있으니 안분(安分)하라는 말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음.

언중유골(言中有骨) 말 속에 뼈가 있음. 예사로운 말 속에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말한다.

언즉시야(言則是也) 말인즉 옳음.

엄목포작(掩目捕雀) 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으려 한다. 일을 성취하려면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

엄이도령(掩耳盜鈴) 자신이 듣지 않는다고 남도 듣지 않는 줄 알다. 방울을 훔치는 도적이 방울이 소리가 난다고 자기 귀만 막고 방울을 훔친다. 모든 사람이 그 잘못을 다 아는데 얕은 수를 써서 남을 속이려 하나 아무 효과가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掩耳盜鐘)

여도지죄(餘桃之罪) 사랑할 때는 허물이 아니던 일도 사랑이 식으면 죄가 된다.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餘:남을 여. 桃:복숭아 도. 之:갈 지(…의). 罪:허물 죄. [동의어] 여도담군(餘桃?君). [출전]《韓非子》〈說難篇〉전국 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먹이다니…‥."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리박빙(如履薄氷) 살얼음을 밟는 것과 같음. 매우 위험한 것을 말함.

여민동락(與民同樂)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김.

여반장(如反掌)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매우 쉽다는 뜻.

여붕우교이불신호(與朋友交而不信乎) 증자(曾子)가 하루에 세 가지를 돌아본 것 중의 하나로 벗과 사귀는 데에 신의로서

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여우여로(如愚如魯) 당나라 때 동산 선사의 「보경삼매」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이름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조용히 행할 뿐임을 가리킨다.

여자동포(與子同袍) 자네와 두루마기를 같이 입겠네. 친구 사이에 서로 허물없이 무관하여 하는 말.

여출일구(如出一口) 한입에서 나온 것처럼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같음.

역린(逆鱗) 용의 턱 아래 거슬려 난 비늘 군주의 노여움에 비유.

역발산기개세(易拔 山氣蓋世) 항우(項羽)의 힘센 기상을 비유한 말. 영웅의 힘이 세고 기상이 큰 것을 일컬음.(-拔山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함.

역자교지(易子敎之)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치다. 父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인다

역자이식(易子而食) 식량이 없어 아들들을 바꾸어 삶아 먹다.

역지사지(易之思之)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말.

연도일할(鉛刀一割) 납으로 만든 칼도 한번은 자를 힘이 있다. 자기의 힘은 미약하다고 겸손하게 하는 말로도 쓰이며, 소인배도 한번은 착한 일을 할 수 있으나 두번은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말로도 쓰인다.

연목구어(緣木求魚) 불가능한 일을 하고자 할 때 비유하는 말.= 산에서 물고기 잡기.

《出典》'孟子' 梁惠王篇 전국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愼?王) 3년(BC 318), 양(梁 : 魏)나라 혜왕(惠王)과 작별한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로 갔다. 당시 나이 50이 넘은 孟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 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遊說) 중이었다. "전하의 대망(大望)이란 무엇입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 앞에서 패도(覇道)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하였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 아니면 아름다운 색(色)이 부족하시기 때문입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은 천하통일을 하시고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하오나 종래의 방법(무력)으로 그것(천하통일)을 이루려 하시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습니다." '잘못된 방법[武力]으론 목적[天下統一]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토록 무리한 일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합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습니다. 하오나 패도(覇道)를 좇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曰 王之所大欲 可得聞與 王笑而不言 曰 爲肥甘 不足於口與 輕煖不足於體與 抑爲采色 不足視於目與 曰 吾不爲是也 曰 然則 王之所大欲 可知已 欲抗土地 朝秦楚 `?中國而撫四夷也 以若所爲 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王曰 若是其甚與 曰 殆有甚焉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적고 젊음이 넘쳐 혈기가 왕성함.

연비어약(鳶飛魚躍)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 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다.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으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도(道)임을 말한다.

연안대비(燕雁代飛) 제비가 올 때 기러기는 떠난다. 사람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연저지인(?疽之仁) 종기를 입으로 빠는 사랑.

연하고질(煙霞痼疾)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병처럼 깊음을 뜻하는 말이다. 천석고황

연홍지탄(燕鴻之歎) 봄과 가을에 엇갈리는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이다.(-燕雁代飛)

염념불망(念念不忘) 자꾸 생각하여 잊지 못함.

염량세태(炎凉世態)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사한 말로 세태염량

영고성쇠(榮古盛衰) 사람의 일생은 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함.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흘러간다. 배움의 길도 속성으로 이루려 하지 말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닦아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영만지구(盈滿之咎) 가득 차면 기울고 넘친다. 만사가 다 이루어지면 도리어 화를 가져오게 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영어(囹圄) 감옥. 교도소

오동일엽(梧桐一葉) 오동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 한 가지 구실을 보면 일의 전말을 알 수 있다는 말로 쓰인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갈피를 못 잡고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

《出典》'後漢書' 張楷傳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병을 핑계대고 끝내 출사(出仕)치 않았다. 장해(張楷)는《春秋》'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서 평소 거느리고 있는 문하생만 해도 100명을 웃돌았다. 게다가 전국 각처의 숙유(夙儒)들을 비롯하여 귀족, 고관대작, 환관(宦官)들까지 다투어 그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는 이를 싫어하여 화음산(華陰山) 기슭에 자리한 고향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해(張楷)를 좇아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은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볐다. 나중에는 화음산 남쪽 기슭에 장해(張楷)의 자(字)를 딴 공초(公超)라는 저잣거리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장해(張楷)는 학문뿐만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능하여 쉽사리 '오리무(五里霧)'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방술(方術)로써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장해(張楷)는 성격이 도술을 좋아하여, 능히 5里 안의 안개를 지을 수가 있었 다. 그때에 관서(關西) 사람인 배우(裵優)가 또한 능히 3里의 안개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장해(張楷)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제자로 들어가 배우기를 바랬지만 장해(張楷)는 모습을 숨겨서 그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張楷 性好道術 能作五里霧 時關書人裵優亦能爲三里霧 自以不如楷從學之 楷避不肯見.[주]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은 '오리무'에 '중(中)'자를 더한 것인데 처음부터 '중'자가 붙어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함. 방술 : 신선의 술법을 닦는 방사(方士)의 술법.

 

예미도중(曳尾塗中)  부귀로 인해 속박받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살겠다.

오두미배요(五斗未拜腰) 녹으로 받는 오두미 때문에 허리를 꺾을 수 없다.

오만무도(傲慢無道)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고 버릇이 없음.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 깨나 잊지 못함.

오매사복(寤寐思服) 자나깨나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오비삼척(吾鼻三尺) 내 코가 석자. 내 일도 감당 못해 남을 도울 여유가 없음을 뜻한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우연의 일치를 의도적인 것으로 남에게 의심을 받았을 때 하는 말

오설상재(吾舌尙在) 몸은 조금 망가졌어도 혀만 성하면 뜻을 펼 수 있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 '국화'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오손공주(烏孫公主) 정략 결혼의 희생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

烏:까마귀 오. 孫:손자 손. 公:공변될 귀인 공. 主:주인 주. [참조] 요령부득(要領不得). [출전]《漢書》〈西域專〉오손은 전한(前漢) 때 서역(西域) 지방에 할거하던 터키계(系)의 유목 민족으로, 그 세력권은 천산(天山) 산맥 북쪽의 이시크를 호수 부근으로부터 이리하(伊犁河:일리 강) 유역의 분지를 포함하여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르 강 상류의 나린 강 계곡에 있던 적곡성(赤谷城:본거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오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성했던 흉노는 북방 몽골 땅을 근거지로 삼고 한나라를 끊임없이 침범했다. 그래서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건원(建元) 26년(B.C. 115) 장건(張騫)을 오손에 보내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0년 후 무제의 형인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을 공주로 꾸며 오손왕에게 출가시킴으로써 동맹은 더욱 굳어졌다. 이리하여 흉노는 한나라와 오손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서역은 물론 한나라의 변경으로부터 북방 멀리 쫓겨가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서역 50여 이민족의 소국들은 한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는 이들 나라의 이반을 막기 위해 구자(龜玆:쿠차)에 감독ㅗ사찰 기관으로서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었다. 건국 이후 100년 이상 시달려 온 흉노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먼 이국의 이민족에게 주어진 오손 공주는 망향의 노래를 부르며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오십보백보(五十步 百步)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 근소한 차이를 말함.

 

[동의어]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유사어] 대동소이(大同小異). [출전]《孟子》〈梁惠王篇〉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는다는 뜻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론 마찬가지라는 말. 전국 시대인 기원전 4세기 중엽,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진(秦)나라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다(이후 양나라라고도 불렸음). 그러나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도 늘 패하는 바람에 국력은 더욱 떨어졌다. 그래서 혜왕은 국력 회복을 자문하기 위해 당시 제후들에게 왕도 정치론을 유세중인 맹자를 초청했다. "선생이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이렇게 와 준 것은 과인에게 부국 강병(富國强兵)의 비책(秘策)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겠소?" "전하, 저는 귀국의 부국 강병과 상관없이 인의(仁義)에 대해 아뢰고자 왔나이다." "백성을 생각하라는 선생의 인의의 정치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힘써 베풀어 왔소. 예컨대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이들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옮기고, 늙은이와 아이들에게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누어주도록 하고 있소. 그와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면 하내의 곡식으로 구호하도록 힘쓰고 있지만, 백성들은 과인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것 같지 않고, 또 이웃 나라의 백성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못 들었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전하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아뢰겠나이다.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사옵니다. 그런데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다면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나이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소?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들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는 이웃 나라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은 대답을 못 했다. 이웃 나라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백성을 구호한 것을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서 구호한 양 자랑한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주] 대량(大梁)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내 개봉(開封:카이펑)

오언장성(五言長城) 오언시(五言詩)를 잘 짓는 것이나 만리장성(萬里長城)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바랄 수 없는 일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오우천월(吳牛喘月) 오(吳)나라의 소가 더위를 두려워해서 달을 보고도 해인줄 알고 헐떡인다. 지레 짐작으로 공연한 일에 겁을 내어 걱정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겅 보고 놀란다

오운지진(烏雲之陣) 까마귀가 흩어지는 것처럼, 또 구름이 모이는 것과 같이 모임과 흩어짐이 계속되면서 변화가 많은 진법(陣法)을 말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같은 경우에 처하게 됨.

《出 典》'孫子兵法' 九地篇 《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孫子》 '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 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동의어】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유사어】동주상구(同舟相救), 동주제강(同舟濟江),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오조사정(烏鳥私情) 까마귀가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임. 부모에게 효양(孝養) 하는 정.

오합지졸(烏合之卒) 임시로 모집하여 훈련이 없는 병사. 수는 많으나 쓸모가 없음.

《出典》'後漢書' 耿龕傳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 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發突騎以徊烏合之衆 如?枯腐耳. 【동의어】오합지중(烏合之衆) 【유사어】와합지중(瓦含之衆)

오합지중(烏合之衆) 까마귀떼와 같이 조직도 훈련도 없이 모인 무리

옥상가상(屋上家屋) 지붕 위에 또 지붕을 만듦.

옥석구분(玉石俱焚) 옥과 돌이 함께 탐. 선악의 구분 없이 함께 멸망함

《出典》'書經' 夏書 胤征篇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망하는 것을 <옥석구분(玉石俱焚)>이라고 한다. 《書經》夏書 胤征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불이 곤강(崑岡)에 타면 옥(玉)과 돌이 함께 탄다. 임금이 덕을 놓치면 사나운 불길보다도 격렬하다. 그 우두머리 괴수는 죽이고 협박에 못이겨 복종한 사람들은 벌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에 물들어 더러워진 풍속은 모두 더불어 오직 새롭게 하리라.

火炎崑岡 玉石俱焚 天使逸德 烈于猛火 殲厥渠魁 脅從罔治 舊梁?俗 咸與惟新.'胤征'은 윤후(胤侯)가 夏나라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희화(羲和)를 치러 나갈 때 한 선언으로, 희화를 치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崑岡'은 玉을 생산하는 산의 이름이다. 만일 곤강이 불에 탄다면 玉과 돌이 함께 타버릴 것이다. 화재는 무서운 재앙을 가져오거니와, 임금이 덕을 잃는다면 그 피해는 사나운 불길보다도 더 심하다. 따라서 지금 그 수령인 자를 쳐서 멸망시키는 것이거니와, 억지로 가담했던 사람까지 모두 처벌하지는 않을 것이니, 함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착함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동의어】옥석혼효(玉石混淆)

옥석동궤(玉石同 ) 옥과 돌이 한 궤짝 속에 있음. 좋은 것과 나쁜 것, 혹은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한데 섞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옥석혼효(玉石混淆) 옥과돌이 뒤섞여 있다.

 

玉:구슬 옥. 石:돌 석. 混:섞을 혼. 淆:뒤섞일 효. [동의어] 옥석혼교(玉石混交), 옥석동가(玉石同架), 옥석동궤(玉石同?). [유사어] 옥석구분(玉石俱焚), 옥석동쇄(玉石同碎). [출전]《抱朴子》〈外篇 尙專〉옥과 돌이 뒤섞여 있다는 뜻. 곧 ① 훌륭한 것과 쓸데없는 것이 뒤섞여 있음. ② 선과 악, 현(賢)과 우(愚)가 뒤섞여 있음. 동진(東晉:317∼420)이 도사(道士)인 갈홍(葛洪:호는 포박자, 283∼343?)은《포박자(抱朴子)》〈외편(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경(詩經)》이나〈서경(書經)〉이 도의(道義)에 대해(大海)라 한다면 제자백가(諸子百家:춘추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의 글[書]은 그것을 보강하는 냇물의 흐름이라 할 수 있으며 방법은 달라도 덕을 닦는 데는 변함이 없다. 옛사람들은 재능을 얻기 어려움을 탄식하여 '곤륜산(崑崙山:중국 전설상의 산)의 옥이 아니라 해서 야광주(夜光珠)를 버리거나 성인(聖人)의 글이 아니라 해서 수양에 도움이 되는 말'은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漢)ㅗ위(魏) 이래 '본받을 만한 좋은 말[嘉言]'이 많이 나와 있는데도 식견이 좁은 사람들은 자의(字義) 해석에만 사로잡혀 오묘한 점을 가볍게 보며 도외시한다. 또한 소도(小道)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거나 넓고 깊어서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고 많은 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룬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또 천박한 시부(詩賦)를 감상하는가 하면 뜻 깊은 자서[子書:제자(諸子)의 서(書)]를 가볍게 여기며 유익한 금언(金言)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래서 참[眞]과 거짓[僞]이 전도(顚倒)되고 '옥과 돌이 뒤섞이며[玉石混淆]' 아악(雅樂)도 속악(俗樂)과 같은 것으로 보고 아름다운 옷도 누더기고 보니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주] 갈홍 : 동진의 도사. 강소(江蘇) 사람. 자는 치천(雉川), 호는 포박자(抱朴子), 소갈선옹(小葛仙翁)이라 불리기도 함. 고학으로 유학(儒學)을 배웠으나 신선술(神仙術)에 통달한 재종조부(再從祖父:할아버지의 사촌 형제) 갈현(葛玄:별명-갈선인)의 영향을 받고 갈현의 제자 정은(鄭隱)으로부터 연단(煙丹)의 비술(?術)을 전승함. 동진의 시조(元帝:317∼322)가 진(晉:西晉)나라 승상으로 있을 때 무공을 세워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짐. 만년에 교지(交趾:북베트남)에서 단가[丹砂:주사(朱砂)-수은과 유황의 화합물]를 채광하여 선약(仙藥)을 만들었다고 함. 평소부터 갈홍을 흠모하던 광주 자사(廣州刺史) 등악(鄧嶽)이 "스승을 찾아 멀리 떠날까 하네."라고 쓴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가 보니 앉은 채로 죽은 갈홍의 얼굴색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입관(入棺)할 때의 시체도 부드럽고 가벼웠다고 함. 그래서 세인은 61세로 세상을 떠난 갈홍이 껍데기인 시체만 남겨 놓고 신선이 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함. 저서로는 신선의 도를 설(說)한 내편(內篇)과 정치 도덕을 논한 외편(外篇)의《포박자》《신선전(神仙專)》등이 있음.(283∼343). 연단(煉丹) : 도사(道士)가 단사로 황금이나 선약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연금술(鍊金術)의 한 가지.

옥오지애(屋烏之愛) 사람이 사랑스러우면 그 사람의 집에 있는 까마귀까지 귀여워함. 한번 사람을 좋게 보면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을 좋게 보게 됨을 말한다.

옥하(玉瑕) 옥에도 티가 있다.

옥하가옥(屋下架屋) 집 아래 집을 다시 짓는다. 부질없이 모방만 하고 새로운 발전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온고지신(溫故之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앎.

 

《出典》《論語》〈爲政篇〉[참조] 기문지학(記問之學), 구이지학(口耳之學).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 것을 안다는 뜻. 溫故는 '옛 것[故]을 배우다[溫]'이다. 溫에는 '배우다'는 뜻도 있다. 知新은 '새 것[新]을 알다[知]'이니 溫故之新은 '옛 것을 공부하면 새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공자는《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 된다. 즉 고전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예기(禮記)》〈학기(學記)〉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기문지학(記問之學: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記問之學 不足以爲師矣]." 지식을 암기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과 표리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을 연구함에 있어서도고전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와각지쟁(蝸角之爭) 매우 하찮은 일로 다투는 것, 또는 좁은 범위 안에서 싸우는 일.

 

《出典》'莊子' 則陽篇 전국시대, 양(梁: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대진인(戴晉人)은 도가자류(道家者流)의 현인(賢人)답게 이렇게 되물었다.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微物)이 있는데 그것을 아십니까?" "물론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 지 15일 만에야 전쟁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전하, 이 우주의 사방상하(四方上下)에 제한(際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오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地上)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으음, 과연." "그 나라들 가운데 위(魏:梁)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梁:開封)이라는 도읍이 있으며,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십니다. 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 위의 촉씨, 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 대진인(戴晉人)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惠王)은 혜자(惠子)에게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원 말】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동의어】와우각상(蝸牛角上), 와각지쟁(蝸角相爭), 와우지쟁(蝸牛之爭) 【유사어】만촉지쟁(萬觸之爭)

와부뇌명(瓦釜雷鳴)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천둥이 치는 소리로 착각함. 무식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이 아는 체하고 크게 떠들어댄 소리에 여러 사람이 혹하여 놀라게 된 것을 뜻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원수를 갚고자 고생을 참고 견딤을 비유한 말.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딤의 비유.

《出典》'史記' 越世家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가 간(諫)하는 것도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想起)했다. 그리고 구천 부부는 함께 밭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曆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 : 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 : 折江省 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유사어】회계지치(會稽之恥), 절치액완(切齒扼腕)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아무 이익도 없는 일로 다툰다

완물상지(玩物喪志) 쓸 데 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소중한 자기의 의지를 잃음. 물질에만 너무 집착한다면 마음 속의 빈곤을 가져와 본심을 잃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완벽(完璧) 모자라거나 흡잡을 데가 없다.

 

完:완전할 완. 璧:둥근 옥 벽. [동의어] 완조(完調). [유사어] 화씨지벽(和氏之壁), 연성지벽(連城之壁). [출전]《史記》〈藺相如列傳〉,《十八史略》〈趙篇〉① 흠이 없는 구슬[壁:환상(環狀)의 옥(玉)]. 결점 없이 훌륭함. ② 빌려 온 물건을 온전히 돌려보냄.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천하명옥(天下名玉)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어떻게든 화씨지벽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성(城) 15개와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혜문왕에게는 실로 난처한 문제였다. 제의를 거절하면 당장 쳐들어 올 것이고 화씨지벽을 넘겨주면 그냥 빼앗아 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혜문왕은 중신들을 소집하여 의논했다.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강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다 하여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혜문왕은 중신들에게 물었다. "사신으로는 누가 적임자일 것 같소?" 그러자 대부인 목현(繆賢)이 말했다. "신의 식객에 지모와 담력이 뛰어난 인상여(藺相如)라는 자가 있사온데 그 자라면 차질 없이 중임을 완수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리하여 사신으로 발탁된 인상여는 소양왕을 알현하고 화씨지벽을 바쳤다. 화씨지벽을 손에 들고 살펴보던 소양왕은 감탄하여 희색이 만면했으나 약속한 15개 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인상여는 조용히 말했다. "전하, 그 화씨지벽에는 흠집이 있사온데 그것을 외신(外臣)에게 주시면 가르쳐 드리겠나이다." 소양왕이 무심코 화씨지벽을 건네주자 인상여는 그것을 손에 든 채 궁궐 기둥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소양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하께서 약속하신 15개 성을 넘겨주실 때까지 이 화씨지벽은 외신이 갖고 있겠나이다.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화씨지벽은 외신의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 부딪쳐 깨지고 말 것이옵니다." 화씨지벽이 깨질까 겁이 난 소양왕을 일단 숙소로 돌려보냈다. 인상여는 숙소에 돌아오자 화씨지벽을 부하에게 넘겨주고 서둘러 귀국시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양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당장 인상여를 잡아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죽였다가는 신의 없는 편협한 군왕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그대로 곱게 돌려보냈다. 이리하여 화씨지벽은 '온전한 구슬[完璧]'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인상여는 그 공으로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왕자불가간(往者不可諫) 지나간 일은 어쩔수 없다.

왕후장상(王候將相) 제왕과 제후,장수와 재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왜자간희(矮子看戱) 난장이가 키가 작아 구경은 못하고 남들이 보고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가 본 체, 아는 체 한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남이 말하면 자기도 같이 아는 척하고 떠드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요동지시(遼東之豕)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 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遼:멀ㅗ나라 이름 요. 東:동녘 동. 之:갈 지(…의). 豕:돼지 시. [준말] 요시(遼豕). [동의어] 요동시(遼東豕). [출전]《文選》〈朱浮書〉,《後漢書》〈朱浮專〉 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 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요령부득(要領不得)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要:종요로울요,구할 요. 領:옷깃령,요소 령. 不:아니 불. 得:얻을 득. [출전]《史記》〈大宛專〉,《漢書》〈張騫專〉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의 일이다. 당시 만리장성 밖은 수수께끼의 땅이었다. 그러나 영맹한 흉노는 동쪽 열하(熱河)에서부터 서쪽 투르키스탄(중앙 아시아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펴고 빈번히 한나라를 침범 약탈했다. 그래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 흉노에게 쫓겨 농서[?西:감숙성(甘肅省)]에서 서쪽 사막 밖으로 옮겨간 월지(月氏:大月氏)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월지에 다녀올 사신을 공모한 결과 장건(張騫:?∼B.C. 114)이란 관리가 뽑혔다. 건원(建元) 3년(B.C. 138), 장건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쪽 이리(伊犁:위구르 자치구 내)란 곳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월지를 찾아 장안[長安:서안(西安)]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흉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장건은 활짝 트인 성격으로 해서 흉노에게 호감을 사 장가도 들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장건은 처자와 일행을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뚝 솟은 천산(天山)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타림 분지를 횡단한 그들은 대완국(大宛國)ㅗ강거국(康居國)을 거쳐 마침내 아무 강 북쪽에 있는 월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곧 월지의 왕을 알현하고 무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서천(西遷) 이후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소. 그러니 백성은 이제 구원(舊怨)을 씻기 위한 그런 쓸데없는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오." 장건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大夏國)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史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要領不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 넘게 억류되었으나 부하 한 사람과 탈출, 13년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B.C. 126). 그로부터 3년 후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진 장건은 계속 서역(西域) 사업에 힘썼는데 그의 대여행은 중국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동서의 교통이 트이면서 서방으로부터 명마(名馬)ㅗ보석ㅗ비파(琵琶)ㅗ수박ㅗ석류ㅗ포도 등이 들어오고 한나라로부터는 금과 비단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크 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 대완국 :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 강거국 : 아랄해 동쪽 시르강 하류의 키르기스 초원에 있었던 터키계(系) 유목 민족의 작은 나라. 대하국 : 일명 박트리아 왕국. 힌두쿠시 산맥의 계곡, 아무 강 상류의 좁은 지역에 있었던 나라.

요산요수(樂山樂水) 산과 물을 좋아함.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의 준말로 지혜있는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 한다는 뜻이다.

요원지화(燎原之火) 넓은 들에 붙은 불길.세력이 대단해서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요조숙녀(窈窕淑女) 마음씨가 얌전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 요조(窈窕)는 고상하고 정숙함을 뜻한다.

요지부동(搖之不動) 흔들어도 꼼짝 아니함.

욕소필연(欲燒筆硯) 붓과 벼루를 태워버리고 싶다. 남이 지은 문장의 뛰어남을 보고 자신의 재주가 그에 미치지 못함을 탄식하는 말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일을 속히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 서두르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용두사미(龍頭蛇尾) 머리는 용이나 꼬리는 뱀. 처음은 좋으나 끝이 좋지 않음을 비유. 처음엔 그럴 듯 하다가 끝이 흐지부지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용미봉탕(龍尾鳳湯) 맛이 썩종은 음식.

용사비등(龍蛇飛騰) 용과 뱀이 나는 듯 활기가 있는 매우 잘 쓴 글씨.

용의주도(用意周到) 고루 마음을 쓰고 준비하여 빈틈이 없음.

용호상박(龍虎相搏) 용과 범이 서로 싸운다는 뜻. 두 강자끼리 서로 싸움을 이르는 말.

용훼(容喙) 간섭하여 말참견을 함.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

 

[출전]《列子》〈湯問篇〉愚:어리석을 우. 公:귀 공. 移:옮길 이. 山:메 산. [유사어] 마부작침[磨斧作針(鍼)], 수적천석(水適穿石), 적토성산(積土成山). 춘추 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이름은 어구(禦寇)]의 문인들이 열자의 철학 사상을 기술한《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知未)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 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娥)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

우수마발(牛수馬勃) '소 오줌과 말 똥'이란 뜻으로, 아무 데도 쓰지 못할 하찮은 것을 일컬음.

우왕마왕(牛往馬往) 소 갈 데, 말 갈 데. 갈 수 있을 만한 곳은 다 다녔다는 뜻.

우유부단(優柔不斷)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하지 못함.

우이독경(牛耳讀經) 쇠 귀에 경 읽기.(=牛耳誦經, 牛耳彈琴)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는 일, 또는 그처럼 무지한 사람을 가리킨다.

우화등선(羽化登仙) 사람이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우후죽순(雨後竹筍) 비온 뒤에 솟는 죽순같이 어떠한 일이 한때에 많이 일어남.

운니지차(雲泥之差) 구름과 진흙의 차이. 천지지차(天地之差)와 같은 말. 사정이 크게 다름을 말한다.

운상기품(雲上氣稟) 속됨을 벗어난 고상한 기질과 성품

운예지망(雲霓之望)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 그 희망이 간절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운주유악(運籌유幄) 들어않아 기획하다.

운중백학(雲中白鶴) 구름 속을 나는 백학. 고상한 기품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운증용변(雲蒸龍變) 구름이 들끓어 용으로 변함. 영웅호걸이 때를 만나 일어남을 일컬음.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침. 遠:멀 원. 交:사귈 교. 近:가까울 근. 攻:칠 공.

 

[참조] 누란지위(累卵之危). [출전]《史記》〈范雎列傳〉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으로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ㅗ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ㅗ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먼 곳에 있는 것은 급할 때 도움이 안된다.

遠:멀 원. 水:물 수. 不:아니 불. 救:구원할 구. 近:가까울 근. 火:불 화. [출전]《韓非子》〈說林篇〉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는 뜻으로, 먼 데 있으면 급할 때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로《한비자(韓非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목공(穆公)은 아들들에게도 진(晉)나라와 형(荊)나라를 섬기게 했다. 그 무렵 노나라는 이웃 나라인 강국 제(齊)나라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위급할 때 진나라와 형나라 같은 강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에서였다. 목공의 그런 속셈을 이서(梨?)가 간했다. "사람이 물에 빠진 경우, 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청해다가 구하려 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사오며, 또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渤海)와 같이 먼바다에서 물을 끌어다가 끄려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때는 역시 늦사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遠水不救近火]'고 했듯이 노나라가 이웃 제나라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먼 진나라와 형나라가 강국이긴 해도 노나라의 위난은 구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원앙지계(鴛鴦之契) 금슬(琴瑟)이 좋은 부부사이

원입골수(怨入骨髓)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마음 속 깊이 맺혀 잊을 수 없다는 말. 怨:원망할 원. 入:들 입. 骨:뼈 골. 髓:골수 수.

[원말] 원입어골수(怨入於骨髓). [동의어] 원철골수(怨徹骨髓), 한입골수(恨入骨髓). [출전]《史記》〈秦本紀〉 춘추시대 오패(五?)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중신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장군에게 정(鄭)나라를 치라고 명했다. 진나라 군사가 주(周)나라의 북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곳에 소를 팔러 온 정나라의 소장수인 현고(弦高)는 진나라 장군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정나라 주상(主上)께서는 장병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소생에게 소 12마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 세 장군은 공격 목표를 바꾸어 진(晉)나라의 속령(屬領)인 활(滑)로 쳐들어갔다. 당시 진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어 국상(國喪)중에 있었으나 태자[太子:후의 양공(襄公)]는 즉시 용장(勇將)을 파견하여 침략군을 섬멸했다. 포로가 된 세 장군은 태자 앞에 끌려 나왔다. 그러자 목공의 딸인 태자의 모후(母后)는 그들의 구명을 청원했다. "저들을 죽이면 강국인 진나라 목공은 '원한이 뼈에 사무쳐[怨入骨髓]' 반드시 이 나라를 칠 것이오. 그러나 저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소." 태자는 모후의 말을 옳게 여겨 세 장군을 모두 풀어 주었다.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원화소복(遠禍召福)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임.

월단평(月旦評) '매달 첫날의 평'이란 뜻으로, 인물에 대한 비평을 일컫는 말.

月:달 월. 旦:아침 단. 評:평론할 평. [준말] 월단(月旦). [동의어] 월조평(月朝評). [출전]《後漢書》〈許?專〉 후한(後漢) 말, 12대 황제인 영제(靈帝:167∼189) 17년(184)에 일어난 '황건(黃巾)의 난(亂)' 때 큰 공을 세운 조조(曹操)가 아직 두각을 나타내기 전 일이다. 그 무렵, 여남(汝南:호북성 내) 땅에 허소(許?)와 그의 사촌 형 허정(許靖)이라는 두 명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매달 첫날[月旦]'이면 허소의 집에서 향당(鄕黨:향-1만 2500집, 당-500집)의 인물을 뽑아 비평했는데 그 비평이 매우 적절함으로 해서 평판이 높았다. 그래서 당시 '여남의 비평'으로 불리던 이 비평을 들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조조가 허소를 찾아와서 비평해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난폭자로 소문난 조조의 청인지라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다. 조조가 재촉하자 허소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대는 태평한 세상에서는 유능한 관리이되,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웅(姦雄)이 될 인물이오." 이 말을 듣고 조조는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황건적(黃巾賊)을 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고 한다.

월영즉식(月盈則食)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 한번 흥하면 한번은 망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 고향을 그리워함.

월하노인(月下老人) 혼인을 중매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월하빙인(月下氷人) 월하노(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말로, '결혼 중 매인'을 일컬음.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람

《出典》'續幽怪錄' / '晉書' 索眈篇 ⑴《續幽怪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 때, 위고(韋固)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송성(宋城 : 河南省 所在)에 갔을 때,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이 손에 빨간 끈[赤繩]을 든 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위고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묻자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세상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빨간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네." "그럼, 지금 제 아내감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이 송성(宋城)에 있구먼, 성 북쪽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진(陳)이란 여인네의 어린아이야." 위고는 약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 상주(尙州 : 하남성)에서 벼슬길에 나아간 위고는 그곳 태수(太守)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날 밤 위고가 아내에게 신상(身上)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실은 태수님의 양녀입니다. 친아버지는 송성에서 벼슬을 사시다가 돌아가셨지요. 그 때 저는 젖먹이였는데 마음씨 착한 유모가 성 북쪽 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하면서 저를 길러 주었답니다." ⑵《晉書》'索眈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晉)나라에 색탐(索眈)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다. 어느날 영고책(令孤策)이라는 사람이 몽 점(夢占)을 치러 왔다. "꿈 속에서 나는 얼음 위에 서서 얼음 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색탐(索眈)은 이렇게 해몽(解夢)했다."얼음 위는 곧 양(陽)이요, 얼음 밑은 음(陰)인데 양과 음이 이야기 했다는 것은 '얼음 위에 선 사람[氷上人]'인 그대가 결혼 중매를 서게 될 조짐이오. 성사(成事) 시기는 얼음이 녹는 봄철이고…." 그 후 얼마 안되어 과연 영고책은 태수의 부탁을 받고 태수의 아들과 장(張)씨의 딸을 중매 서서 이듬해 봄에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동의어】월하노(月下老), 빙상인(氷上人), 빙인(氷人) 【유사어】적승(赤繩)

우직지계(迂直之計) 곧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줄도 아는 계략.

위기일발(危機一髮) 위급함이 매우 절박한 순간.

위군난위신불이(爲軍難爲臣不易) 임금 노릇하기도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

위급존망지추(危急存亡之秋)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

위수강운(渭樹江雲) 위수(渭水)에 있는 나무와 위수를 지나와 강수(江水) 위에 떠있는 구름. 떨어져 있는 두 곳의 거리가 먼 것을 이르는 말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벗이 서로 그리워하는 말로 쓰인다.

위여누란(危如累卵) 위태로움이 계란을 포개놓은 것과 같다.

위여조로(危如朝露) 아침 이슬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듯이 위기가 임박해 있음을 말함.

위이불맹(威而不猛) 위엄(威嚴)은 있으나 결코 난폭하지 않음.

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증자(曾子)가 행한 일일삼성(一日三省) 중 한 가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도모하는 데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가?

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여러 번 읽어 그 책을 매었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온 말로, 책을 많이 읽음을 비유함. 한 권의 책을 몇십 번이나 되풀이 해서 읽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出典》'史記' 孔子世家 현대식으로 말하면, 한 권의 책을 몇십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어서 책을 철(綴)한 곳이 닳아 흩어진 것을 다시 고쳐 매어서 애독(愛讀)을 계속하는 것을 '韋編三絶'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책이 소위 몇십 장의 죽간(竹簡)을 끈으로 철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그 끈이 몇 번이나 끊어지도록 책을 계속하여 읽는 것을 '韋編三絶'이라고 한다. '三絶'이란 딱 세 번에 한정된 수가 아니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끊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알려진 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史記》가운데 孔子傳, 즉 孔子世家에 실려 있는 말로, 공자가 만년에 역경(易經)을 애독하여 韋編三絶에 이른 데서 나왔다고 한다. 孔子가 晩年에 易經을 좋아하여, 단(彖) 계(繫) 상(象) 설괘(說卦) 문언(文言)을 서(序)하고, 易經을 읽어 韋編三絶하였다. 말하기를, '내가 몇 해를 빌어 이와같이 하면, 나는 易經에 있어서 곧 빛나게 될 것이다.' 孔子晩而喜易 徐彖繫象說卦文言 獨易韋編三絶 曰 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유교무류(유교무류) 교육에는 차별을 두는 일이 없다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음.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제압한다.

유록화홍(柳綠花紅)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자연에 조금도 인공을 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유만부동(類萬不同) 여러 가지가 많다 하여도 서로 달라 같지 않음. 비슷한 것들은 수만 가지가 있어도 같지는 않다. 모든 것이 서로 같지 아니함을 뜻하는 말이다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름만 있고 실지 내용은 없음.

유방백세(流芳百世)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유비무환(有備無患) 어떤일에 미리 대비함이 있어야 근심이 없음.

《出典》'書經' 說命 '열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이란 어진 재상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에 대한 의견과 그 의견을 실천하게 하는 내용을 기록한 글인데, 이 '有備無患'이란 말은 부열이 고종 임금에게 한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能)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功)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處善以動 動有厥時 矜其能 喪厥功 惟事事 及其有備 有備無患. 또,《春秋左氏傳》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나라 도승이 정나라에서 보낸 값진 보물과 가희(佳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오자 이것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그러자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하여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 居安思危 思危 則有備 有備則無患.

유속불식(有粟不食) 곡식이 익어도 먹지를 못한다.

유수불부(流水不腐)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항상 움직이는 것은 못쓰게 되지 않는다는 비유로 쓰인다.

유시무종(有始無終) 시작만 있고 끝이 없음.

유신(維新) 모든 것을 고쳐 새롭게 하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세상에 자기 혼자 잘났다 뽐내는 태도.

유야무야(有耶無耶)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희미함

유약무실약허(有若無實若虛) 꽉 차 있어도 텅빈것같이 보인다.

유언비어(流言蜚語) 근거없는 좋지 못한 말

유언자불필유덕(有言者不必有德)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그만큼 수양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같은 패끼리는 서로 따르고 쫓으며 왕래하여 사귐.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유일불원(유佚不怨) 세상이 나를 돌아 보지않고 버려두어도 원망하지 않는다.

유주망국(有酒亡國) 술로 인해 망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유필유방(遊必有方) 자식은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는 그 슬하에서 모셔야 하며 비록 유학(遊學)을 할지라도 부모가 알 수 있도록 반드시 일정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

육도풍월(肉跳風月) 글자의 뜻을 잘못 써서 알아보기 어렵고 가치 없는 한시.

육사자책(六事自責) 여섯 가지로 자책하다.

윤회전생(輪廻轉生) 수레바퀴가 돌아 끊임이 없듯이 중생이 사집·유견·번뇌·업등으로 인하여 삼계육도에 죽어서는

다시 나고 또다시 죽으며 생사를 끝없이 반복해 감을 이름.

융절용안(隆절龍顔) 코와 이마가 높아 남자답게 잘 생기다.

은감불원(殷鑑不遠) 이전의 실패를 자신의 거우로 삼아 경계하다. 멸망의 선례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出典》'詩經' 大雅篇 고대 중국 하(夏)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殷王朝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북방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己)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妖女毒婦)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國庫)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폭락(飮酒暴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다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烙之刑)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주왕(紂王)의 포학(暴虐)을 간(諫)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의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 당하고 서백(西伯)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 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殷王朝)의 시조인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 당한 하왕조(夏王朝)의 걸왕(桀王)을 거울 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고 충간(忠諫)하다가 화(禍)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詩經》'大雅篇'의 '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先例)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네. 殷鑑不遠 在夏后之世. 삼공(三公)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末路)를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怨聲)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離叛) 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원 말】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의어】상감불원(商鑑不遠) 【유사어】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은거방언(隱居放言) 세상에서 숨어 살면서 말을 기탄없이 한다.

은인자중(隱忍自重) 괴로움을 감추어 참고 몸가짐을 신중히 함.

음덕양보(陰德陽報) 남모르게 쌓은 덕은 후일 버젓하게 복을 받게 마련임.

음마투전(飮馬投錢) 말에게 물을 먹일 때 먼저 돈을 물 속에 던져서 물값을 지불할 정도로 결백한 행실을 비유하는 말.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을 읊조리고 밝은 달을 보며,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함.=음풍농월(吟風弄月).

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공정한 법 운용을 위하여 사사로운 인정을 버리는 것을 비유.

《出典》'三國志' 蜀志 諸葛亮篇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韓中의 東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 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 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은 전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응접불가(膺接不暇) 아름다운 경치가 계속되어 인사할 겨를도 없다.

의려지망(倚閭之望) 자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

의관장세(倚官仗勢) 관리가 직권을 남용하여 민폐를 끼침

의금경의(衣錦 衣) 비단 옷을 입고 그 위에 안을 대지 않은 홑옷을 또 입는다. 군자가 미덕을 갖추고 있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衣錦絅衣로도 쓴다)

의금야행(衣錦夜行) 비단 옷 입고 밤길 가기란 뜻.

의마심원(意馬心猿) 뜻은 말처럼 날뛰어 다루기 어렵고 마음은 원숭이처럼 이 흉내 저 흉내 다 내어 걷잡을 수 없다. 사람의 번뇌와 욕심은 동요하기 쉽고 억누르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의문지망(倚門之望) 멀리 가 있는 아들을 매일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을 일컫는 말이다. 줄여서 의문(倚門)이라고도 한다.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는 뜻.

 

疑:의심할 의. 心:마음 심. 暗:어두울 암. 鬼:귀신 귀. [원말]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유사어] 절부지의(竊斧之疑), 배중사영(杯中蛇影). [출전]《列子》〈說符篇〉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는 듯이 느껴진다는 뜻. 곧 ①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짐. ② 선입관은 판단을 빗나가게 함. ① 어떤 사람이 소중히 아끼던 도끼를 잃어버렸다. 도둑 맞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이웃집 아이가 수상쩍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슬금슬금 도망갈 듯한 자세였고 안색이나 말투도 어색하기만 했다. '내 도끼를 훔쳐 간 놈은 틀림없이 그 놈이야.' 이렇게 믿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저번에 나무하러 갔다가 도끼를 놓고 온 일이 생각났다. 당장 달려가 보니 도끼는 산에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웃집 아이를 보자 이번에는 그 아이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별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② 마당에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본 이웃 사람이 주인에게 말했다. "집안에 말라죽은 오동나무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네." 주인이 막 오동나무를 베어 버리자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땔감이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다. 주인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이제 보니 땔감이 필요해서 날 속였군. 이웃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엉큼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인물사사인물의(疑人勿使使人勿疑) 사람을 의심하면 그 사람을 부리지 말고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을 의심하지 말아라.

이군삭거(離群索居) 동문의 벗들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 것을 말함.

이덕보원(以德報怨)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두 개의 복숭아로 세 무사를 죽이다.

이란투석(以卵投石)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

이목지신(移木之信) 위성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 곧 ① 남을 속이지 아니한 것을 밝힘. ② 약속을 실행함.

[동의어] 사목지신(徙木之信). [반의어] 식언(食言). [출전]《史記》〈商君列專〉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 상앙(商椽:?∼B.C. 338)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으로 법률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펴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했다. 한 번은 상앙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 줄지 그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앙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三丈:약 9m)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주] 상앙 : 전국 시대, 진나라의 명재상. 제자 백가(諸子白家)의 한 사람. 별명은 공손앙(公孫椽). 상군(商君).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 일찍이 형명학(刑名學)을 공부하고 진나라 효공(孝公)을 섬김. 법치주의(法治主義)에 입각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단행하여 진나라의 국세(國勢)를 신장시킴. 효공이 죽자 그간 반감이 쌓인 귀족들의 참소(讒訴)로 사형 당함. (?∼B.C. 338).

이불해해지(以不解解之) 글의 뜻을 푸는 데 풀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풀어낸다. 즉,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해석하면 곡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이사구(二寺拘) 두절의 개. 이사위한(以死爲限)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하여 나감.

이서기지심서인(以恕己之心恕人)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이순(耳順) 나이 예순 살 된 때를 이름.

이실직고(以實直告) 사실 그대로 고함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이 통해 서로 뜻이 맞음. 심심상인(心心相印).

 

《出典》'五燈會元' / '傳燈錄' 無門關 / '六祖壇經' 송(宋)나라의 중 도언(道彦)이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를 기록한《전등록(傳燈錄)》에 보면,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나 글이 아니라 '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송나라의 중 보제(普濟)의《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느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靈山)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拈華]'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그러나 가섭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微笑]' 그제야 석가는 가섭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전해 주마." 世尊在靈上會上 拈華示衆 是時衆皆寂然 惟迦葉尊者破顔微笑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 付囑磨訶迦葉. 【동의어】염화미소(拈華微笑) 【유사어】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이양역우(以羊易牛) 양을 가지고 소와 바꿈.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에 대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여반장(易如反掌) 쉽기가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은 열로 다스림. 힘은 힘으로 물리침.

이율배반(二律背反)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명제가 동등한 권리로 주장되는 뜻.

이인동심기리단금 (二人同心其利斷金)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으로 쇠도 자를 수 있다. 마음을 합하면 강해진다는 말.

이지측해(以指測海)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 양(量)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책인지심책기(以責人之心責己)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어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로 쓰인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음에 비유하는 말.

익자삼우(益者三友) 사귀어 이롭고 보탬이 되는 세 벗으로 정직한 사람, 신의있는 사람, 학식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 목슴은 하늘에 매어 있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 사람이 멀리까지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금방 근심이 생긴다.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인비목석(人非木石) 사람은 생명과 감정을 지닌 동물로 나무나 돌과는 다르다.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김.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인생은 아침 해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존재이다.

人:사람 인. 生:날ㅗ살 생. 朝:아침 조. 露:이슬 로. [원말]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유사어] 인생초로(人生草露). [참조] 안서(雁書), 구우일모(九牛一毛). [출전]《漢書》〈蘇武專〉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다는 말. 전한 무제(武帝) 때(B.C.100)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는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들의 내란에 말려 잡히고 말았다.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는 한사코 항복을 거부하는 소무를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을 허락하겠다'며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했다. 소무가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어느 날, 고국의 친구인 이릉(李陵) 장군이 찾아왔다. 이릉은 소무가 고국을 떠난 그 이듬해 5000여의 보병으로 5만이 넘는 훙노의 기병과 혈전을 벌이다가 중과 부적(衆寡不敵)으로 참패한 뒤 부상, 혼절(昏絶)중에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릉은 선우의 빈객으로 후대를 받았으나 항장(降將)이 된 것이 부끄러워 감히 소무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선우의 특청으로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릉은 주연을 베풀어 소무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우는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알고, 꼭 데려오라며 나를 보냈네. 그러니 자네도 이제 고생 그만하고 나와 함께 가도록 하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人生如朝露]'고 하지 않는가." 이릉은 끝내 소무의 절조를 꺾지 못하고 혼자 돌아갔다. 그러나 소무는 그 후(B.C.81) 소제(昭帝:무제의 아들)가 파견한 특사의 기지(機智)로 풀려나 19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인순고식(因循고息) 구습을 고치지 아니하고 눈앞의 편안함을 취함.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므로 적이 없음.

인지장사기언야선(人之將死其言也善) 새는 죽을 때가 되면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착하다.

일가지언(一家之言)

學者들 가운데는 누가 보아도 깜짝 놀랄 정도로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이룬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一家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말은《史記》의 太史公自序(저자인 史馬遷이 쓴 序文)에 나온다. '略以拾遺補藝 成一家之言'(빠진 것을 모으고 보충해 간략하게 만들어 일가의 학설을 이루었다). 宮刑을 당한 치욕을 참고 空前의 傑作인《史記》를 남긴 그로서는 당연한 自負心이다. 역시 유명한 史書인《漢書》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고금의 변화에 통달해 일가를 이루었다). 따지고 보면 著者가 한 사람인 책을 읽는 것은 모두 '一家之言'을 따르는 셈이다. 각자가 一家를 이루는 一家見을 갖도록 열심히 노력하되 학문적 맹종(盲從)은 '學說의 對立'을 가져온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일각천금(一刻千金)

극히 짧은 시각도 천금처럼 아깝고 귀중함. 刻은 시간의 단위이다. 요즘의 15분에 해당되지만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千金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니 '一刻千金'(일각은 천금의 가치가 있다)은 '시간을 아껴쓰라'는 말이다. 宋나라때 大文豪 蘇東坡의 <춘소(春宵;봄밤)>라는 詩에 나온다. '春宵一刻値千金'(봄밤의 일각은 처금에 해당한다). 朱子는 젊은이들에게 시간을 아껴 공부할 것을 이렇게 강조했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소년은 곧 노인이 되지만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田園詩人 陶淵明도 비슷한 詩를 남겼다. '盛年不重來……歲月不待人'(한창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니……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歲月如流'(세월은 흐르는 물 같다)도 시간을 중히 여기라는 말이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사소한 데 이르기 까지의 하나하나의 동작.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가지 일을 하여 두가지의 이득을 봄.

《出典》'春秋後語' 戰國策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때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史馬金昔)는 어전에서 '중원으로의 진출이야말로 조명시리(朝名市利)에 부합하는 패업(覇業)'이라며 중원으로의 출병을 주장하는 재상 장의(張儀)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신이 듣기로는 부국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국토를 넓히는 데 힘써야 하고, 강병(强兵)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백성의 부(富)에 힘써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원하는 군주는 먼저 덕을 쌓는 데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패업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하오나, 지금 진나라는 국토도 협소하고 백성들은 빈곤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먼저 막강한 진나라의 군사로 촉(蜀)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는 길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면 국토는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은 쌓일 것입니다.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한(韓)나라를 침범하면, 한나라는 제(齊)나라에 구원을 청할 게 분명하며, 더우기 주나라의 구정(九鼎)은 초나라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땐 진나라가 공연히 천자를 위협한다는 악명(惡名)만 얻을 뿐입니다." 이에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먼저 국토를 넓혔다. 【동의어】일거양획(一擧兩獲), 일전쌍조(一箭雙鳥), 일석이조(一石二鳥) 【반의어】일거양실(一擧兩失) [주] 구정 : 우왕(禹王) 때에 당시 전 중국 대륙인 아홉 고을[九州]에서 바친 금(金, 일설에는 구리)으로 만든 솔. 하(夏) 은(殷) 이래 천자(天子)에게 전해 오는 상징적 보물이었으나 주왕조(周王朝) 때에 없어졌다고 함.

일견패형백견패성(一犬吠形百犬吠聲) 한 마리의 개가 짖는 시늉을 하면 백 마리의 개가 소리내어 짖는다. 한 사람이 거짓으로 한 말이 퍼지고 퍼지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와전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일기당천(一騎當千)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당해 냄.

일기지욕(一己之慾) 제 한 몸의 욕심.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한주먹 도시락 밥과 표주박 한 바가지 물. 변변치 못한 음식. 매우 가난한 살림을 의미한다.

일도양단(一刀兩斷) 한 칼에 둘로 나누듯이 일이나 행동을 선뜻 결정함을 가리킨다.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히 처리함'을 이르는 말.

일망타진(一網打盡) 한꺼번에 모조리 잡아들임.

《出典》'宋史' 仁宗紀 東軒筆錄 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遼]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 : 베트남)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인종은 연약한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내치(內治)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治績)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문치(文治)를 폄으로써 이른바 '경력(慶曆)의 치(治)'로 불리는 군주 정치의 모범적 성세(聖世)를 이룩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 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도(正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되돌려보내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는 짓이라 하여 조야(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때 공교롭게도 관직에 있는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유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자 평소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어사(御史) 왕공진(王拱辰)은 쾌재를 부르고 소순흠을 엄히 문초했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몰아 잡아 가둔 뒤 재상 두연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범인들은 '일망타진(一網打盡)'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유명한 두연도 재임 70일만에 재상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주] 안남 : 인도차이나 동쪽의 한 지방, 당나라의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에서 유래한 명칭이어서 베트남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함.

일맥상통(一脈相通) 생각·처지·상태 등이 한 줄기 서로 통함.

일명경인(一鳴驚人) 한 번 일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성과를 올림.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이 저물고 길이 멀다.

일목요연(一目瞭然) 한눈에도 똑똑하게 알 수 있음.

일벌백계(一罰百戒) 다른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본보기로 중한 처벌을 하는 일.

일사불란(一絲不亂) 질서나 체계가 정연하여 조금도 어지러운 데가 없음.

일사천리(一瀉千里) 문장이나 변론이 거침없이 명쾌하게 진행됨.

일수백확(一樹百穫)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백 개의 열매를 수확한다. 인물을 양성하는 보람을 말함. 인재 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사회에는 막대한 이익을 준다는 뜻이다.

일시동인(一視同仁)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한다,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와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매일을 새롭게 하라.

일어탁수(一漁濁水) 물고기 한 마리가 큰 물을 흐리게 한다. 한 사람의 악행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그 해를 받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수어혼수(數魚混水).

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 한 마리 물고기가 온 시냇물을 흐려 놓는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물을 흐린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한 마디 말로 전쳬의 뜻을 뜻함.

일언지하(一言之下)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함.

일엽지추(一葉知秋) 하나의 낙엽이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해준다. 한 가지 일을 보고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안다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쇠망의 조짐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일엽편주(一葉片舟) 한 조각 작은 배

일의대수(一衣帶水) 한 줄기의 띠와 같은 좁은 냇물이나 바닷물.

一:한 일. 衣:옷 의. 帶:띠 대. 水:물 수. [유사어] 일우명지(一牛鳴地), 일우후지(一牛吼地), 지호지간(指呼之間). [출전]《南史》〈陳後主紀〉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이나 바닷물이라는 뜻. 곧 ① 간격이 매우 좁음. ② 강이나 해협을 격한 대안(對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 서진(西晉:265∼317)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져 이른바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다. 북방에서는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일컫는 흉노(匈奴)ㅗ갈(厘)ㅗ선비(鮮卑)ㅗ강(羌)ㅗ저(?)등 5개 이민족이 세운 열 세 나라와 세 한족국(漢族國)이 흥망을 되풀이했고, 남방에서는 송(宋)ㅗ제(齊)ㅗ양(梁)ㅗ진(陳:557∼589) 등 네 나라가 교체되었다. 북방의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577∼580)를 물려받아 수(隋:581∼618)나라를 세운 문제(文帝:581∼604)는 마침내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왕(陳王)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도다. 이제 짐(朕)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一衣帶水]' 따위를 겁내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으랴." 양자강은 예로부터 천연의 요해(要害)로서 삼국 시대의 오(吳)나라 이후 남안(南岸)의 건강(建康:南京)에 역대 남조의 도읍이 있었다. 문제의 명에 따라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단숨에 양자강을 건너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서 모든일을 꿰뚤다.

《出典》'論語' 里仁篇

孔子께서 曾子에게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參乎吾道一以貫之)" 曾子는 알아듣고 "네"하고 대답했다. 孔子께서 나가시자 문인(門人)들이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자, 曾子는 "선생임의 말씀은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論語》'衛靈公篇'에도 孔子께서 子貢에게 "나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었느니라.(子一以貫之)"라고 말씀하신 것이 나온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子貢이 대답해 말했다.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를 가지고 관철하고 있는 것이다."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일인불과이인지(一人不過二人智)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제 아무리 잘난 사람도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만은 못하니 협동하고 협력하라는 가르침이다.

위의 글을 직역하면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過] 못한다' 이다. 不過는 어느 정도에 이를지 못했을 때 쓴다. '不過五百名'은 5백명이 안되다는 뜻이다.(겨우 5백명이라는 뉘앙스도 있다). 不過의 반대는 過多이다. 大入試처럼 경쟁이 치열한 것을 過多競爭이라고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及] 않는 것은 不過不及이다. '一人之能過千人之能'(한 사람의 능력이 천 사람의 능력을 넘는다)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一當千의 사람을 過人이라고 한다. 自古로 胎敎를 잘 해서 나은 아이는 過人이 된다고 한다.

일일삼추(一日三秋) 몹시 지루하거나 기다리는 때의 형용.

일자사(一字師) 한 글자를 가르쳐 준 선생님

 

鄭谷은 唐나라때 시인이다. 어느날 '제기(齊己)'라는 스님이 여러 편의 詩稿를 가져 왔다. 그 중 <조매(早梅)>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前村深雪裏 昨夜數枝開……'(앞마을이 깊은 눈 속에 파묻혀 있는데, 어제 밤에 몇 가지에 매화가 피었네). 이를 본 鄭谷이 말했다. "數枝(몇 가지)는 早梅(일찍 핀 매화)라는 詩題에 맞지 않으니 一枝(한 가지)가 좋은 것 같소." 그렇게 바꾸어 놓고 보니 과연 詩 전체의 느낌이 달라졌다. 이에 스님은 鄭谷에게 큰 절로 감사를 表했고, 사람들은 鄭谷을 가리켜 '一字師'(한 글자를 가르쳐 준 선생님)라고 했다. 自古로 공부하는 사람은 한 글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또 훌륭한 스승은 간단해 보이지만 핵심을 짚어 준다고 했다.

일자천금(一字千金) 글자 한 자를 빼거나 넣으면 천금을 준다.

 

《出典》《史記》〈呂不韋列傳〉戰國時代 末期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 수천 명,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은 각 3000여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며 저마다 유능한 식객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편 이들에게 질세라 식객을 모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일개 상인 출신으로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상국(相國:宰相)이 되어, 어린(13세) 왕 정(政:훗날의 시황제)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B.C.235, 정의 친아버지라는 설도 있음)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기화 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오늘날의 영화를 거둔 여불위였다. 그는 막대한 사제(私財)를 풀어 3000여 명의 식객을 모아들였다. 당시 列國들 사이에는 著述사업이 유행이었다. 呂不韋는 食客들을 동원해 古今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역사 등을 모두 網羅한 백과사전格인 책을 완성해 마치 자기가 편찬한 양 '呂氏春秋'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수도인 咸陽 성문에 걸어놓고 "누구든지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뺀다면 천금을 주겠다.(有能增省一字者予千金)"고 豪言했다.《史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呂不韋는 자기 誇示겸 우수인사 誘致 목적으로 이 말을 했지만, 지금 '一字千金'은 '심금을 울리는 아주 빼어난 글'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脈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유사어】일자백금(一字百金).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 한 장수가 공을 세우면 만 명의 군사가 죽는다.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의 영화(榮華)는 한바탕의 봄날의 꿈과 같이 헛됨을 비유하는 말.

일조일석(一朝一夕) 짧은 시간의 비유.

일진일퇴(一進一退) 한 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뒤로 물러섰다 함. 좋아졌다 나빠졌다 함.

일촉즉발(一觸卽發) 사소한 것으로도 그것이 동기가 되어 크게 터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혈세.

일취월장(日就月將) 계속 발전해 감. 나날이 발전하고 다달이 진보함

일침견혈(一針見血) '針 한 방에 피를 본다'는 '一針見血'은 '간단한 요령으로 본질을 잡아낸다'는 비유이다. 針은 침(鍼)과 같다. 針은 치(治 ;다스리다)의 뜻으로도 쓴다. 예를들면 '逍遙以針勞 談笑以藥倦'(산책은 피로를 풀어주고 담소는 고달픔을 낫게하는 약이다).

일파만파(一波萬波) 한 사건이 그 사건이 그치지 않고 잇달아 많은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비유.

일패도지(一敗塗地) 한 번 여지없이 패하여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됨. 싸움에 한 번 패하여 간(肝)과 뇌(腦)가 땅바닥에 으깨어진다는 뜻으로, 여지 없이 패하여 재기불능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

일필휘지(一筆揮之) 한 숨에 흥취 있고 줄기차게 글씨를 써 내려 감.

일하무혜경(日下無蹊徑) 해가 비치고 있는 곳에는 눈을 피해 갈 수 있는 좁은 지름길이 없다. 나쁜 일이 행해지지 아니한 것을 탄미한 말.

일확천금(一攫千金) 힘 안 들이고 한꺼번에 많은 재물을 얻음.

임갈굴정(臨渴掘井) 미리 준비하여 두지 않고 있다가 일일 급해서 허둥지둥 서두름, 목말라서 샘을 판다.

임기응변(臨機應變)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변통성 있게 그 자리에서 처결함.

임농탈경(臨農奪耕) 땅을 다 다듬고 이제 농사를 지으려 하니까 농사지을 땅을 빼앗아 간다. 오랫동안 애써 준비한 일을 못하게 빼앗는다는 말이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터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음.

임중불매신(林中不賣薪) 산 속에는 땔나무가 충분히 있어서 살 사람도 없으니 땔 나무를 팔지 않는다. 물건은 그 쓰임이 유용한 곳에서 써야 함을 말한다.

임중지중조불여수중지일조(林中之衆鳥不如手中之一鳥) 숲 속의 많은 새들이 손 안에 한 마리 새보다 못하다.

임현물이(任賢勿貳) 어진 사람에게 일을 맡겼으면 끝까지 밀어주라.

입산기호(入山忌虎) 정작 목적한 바를 당하면 꽁무니를 뺀다는 말.

입신양명(立身揚名) 입신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림.

입추지지(立錐之地) 사람이 많이 모여 조금도 빈 틈이 없음을 가리킴.

입향순속(入鄕循俗)  그 고장에 가서는 그 고장? 풍속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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