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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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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김경일

 

가끔씩 있는 외식은 아주 즐겁다. 그러나 매일 사먹는 것은 지겹다. 독설도 그렇다. 상습적인 독설은 아주 곤혹스럽고 신경을 피곤하게 하지만, 가끔 듣는 독설을 색다르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공자가 죽어야....'도 그런 독설이었다. 학술서의 딱딱함을 날려버리는 그런 산뜻한 느낌표.

 

그의 눈엔 우리 사회 내면을 흐르는 유교 전통은 '바이러스'일 뿐이다. 모든 사회적 부조리 밑에는 충효, 정절과 같은 유교 규범이 깔려 있고 결국 그것은 사회를 무너뜨린다. 3-4 쪽 정도의 짧은 글들로 300페이지를 메울 정도로 다양한 각도에서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공격의 대상은 일관되며 명확하다. 유교는 이제 유효기간이 끝난 이념이라는 것.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없으며 유교를 버릴 때만 비로소 사회를 바르게 설 수 있다는 것.

 

()는 부모 공경이라는 미명하에 노인 복지라는 사회 문제를 개인의 과제로 바꾸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과중한 의무에 허덕이게 할뿐더러 사회적 해결 방안 모색도 어렵게 한다.

 

()에서 확충된 충()은 혈연 우선 주의와 무조건적인 복종의 문화를 낳았다. 상명 하달은 당연하고 대등한 입장에서의 대화는 곧 버릇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런 문화에서 아랫사람은 끊임없이 불평하며 윗사람은 전반적인 사태에 무지(無知)하다. 문제를 발견했다 해도 대화의 문화가 없기에 윗사람이 해결책을 모색할 때까지 사회조직은 제 기능을 못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라는 것도 과거의 이상적인 모습 속에서 모색될 뿐이다. 과거의 권위에 눌려 창의성이 꽃필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유교 사회는 일부 엘리트 계층이 이루어 질 수 없는 도덕적 이상을 앞세우며 사회를 이끌고, 이루어 질 수 없기에 실패하고 대화가 없는 권위를 앞세우기에 부패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도덕적 이상을 앞세우는 끊임없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김경일은 강한 어조로 말한다. 공자가 죽어야만 비로소 나라가 살 수 있다고.

그러면 그는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가? 여러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으나 공자를 비판할 때처럼 명료하지는 않다. 그러나 간추려 보면 이런 것일 듯 싶다.

 

첫째, 수직적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로의 전환. 나이와 연륜이 곧 권위인 사회에서 합리성과 능력이 대접받는 사회로의 전환. 옛 것에 대한 암기보다는 창의성이 우선하는 사회 건설.

 

둘째, 더불어 사는 사회, 같이 사는 사회 건설. 혈연지연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냉혹한 경쟁 문화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로의 전환.

 

셋째, 거창한 명분보다는 구체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자그마한 변화를 더 중시하는 사회로의 전환.

 

넷째, 국수적(國粹的) 민족주의에서 세계적 문화시민으로의 전환. 아울러 일본에 대한 선입견과 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리고 공존 공생한다는 의식을 기를 것.

 

 

이런 그의 주장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자를 과연 '죽여야만' 위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지, 오히려 공자를 '통해서만' 이것을 이룰 수 있는지, 사회 각층은 서로 다양한 의견을 쏟아 놓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그의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찌 보면 '팍스 아메리카'의 간접적 옹호로 들린다. 물론 그는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국익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해도 제 집이 편한 법이다. 합리성에 바탕한 경쟁과 집중의 원리가 반드시 우리의 경제를 튼튼하게 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세계 금융 자본에 맞선 말레지이아의 독자 경제 노선에서 우리는 이 점을 배워야 한다.

 

둘째, 사상이 모든 문제의 단초라는 인문학자적 발상이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도 싱가포르같은 국가는 부패의 정도가 낮다. 이 것이 꼭 그 국가가 '탈 유교화'되었기 때문일까? 싱가포르 인들이 충과 효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 근원이 '유교'에 있다고는 단정하기 힘들다. 자기 전공의 관점이 세계적 관점이라고 보는 학자적 오류. 학자의 속성 상 어쩔 수 없을 듯하지만 왠지 측은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의 주장이 '독설'처럼 들리는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고.

 

그럼에도,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는 세기 말 한국사회에서 매우 비중 있는 책이다. 적어도 전통의 근간을 이루던 유교적 가치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 그리고 후기 산업화 시대의 유교가 과연 적합한 이데올로기일 수 있는지를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책의 의의는 저자의 주장보다는 이런 문제를 비로소 논의해야 할 화두로 우리 사회에 제기하였다는 데에 있다.

 

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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