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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정신병을 고친다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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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정신병을 고친다

한재수

최씨가 병동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는 동료와 교류도 접촉도 하지 않는다.

그가 병동에 들어온 지는 달포가 넘는다. 그의 눈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깊이 응시하고 있다. 응시한다기보다는 의식 속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것에 사로 잡혀 있다고 보겠다. 침묵과 공허와 무행동이 그의 행동의 전부이다.

우리는 용케 그를 유도하여 병원의 소강당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를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자극을 주어 그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거나 감정을 지나치게 폭발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연극을 진행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보조 자아'노릇을 하는 배씨와 먼저 의논하였다. 보조 자아 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심리극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아주 기초적인 일을 맡는 사람 또는 물체를 말한다. 이를테면 환자와 같이 지내던 부모, 형제, 동료 또는 환각이나 환청 속에서 보이거나 들리는 인물이나 소리, 미래의 희망 속에 나타나는 자기의 상징이나 꿈이나 동물이나 물체를 말한다. 이 보조 자아가 주역인 환자로 하여금 세계를 현실답게 구체적으로 보거나 느끼게 한다.

보조 자아와 의논하는 동안에 최씨는 기타를 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에게 기타를 주고 즐겨 부르는 노래를 읊조리게 했다. 노래가 끝나자 보조 자아와 연출자가 무대에 올라가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자기를 가장 즐겁게 한 날을 기억해 보자고 했다. 최씨는 비오는 날을 머리에 떠올렸다. 순희라는 아가씨가 찾아 왔다는 날이었다. 보조 자아는 빗소리가 들리냐고 물었다. 그리고 우산을 펴고 빗속을 걷는 시늉을 했다. 최씨는 서서히 극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왔다.

이리하여 이 환자에게는 워밍업이 조금 이루어진 셈이다. '워밍업'은 심리극에서 참으로 중요한 과정이다. 이것은 자동차가 발동을 걸고나서야 출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 가지이다. 말하자면 잠에서 깬 뒤에 우리가 여러 가지 행동이나 심리 과정을 겪고 나서야 집을 나설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워밍업을 거치지 않고는 최씨와 같이 마음이 크게 아픈 사람으로서는 자발성이 이루어질 수 없다.

마음속에서 극에 참여할 자발성이 없는 어떤 환자도 우리는 심리극 속에 이끌고 들어갈 수 없다. 심리극은 자발성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워밍업이 제일 중요하다.

자기의 기분에 말려든 최씨는 더듬거리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떤 낭만에 사로잡힌 어린아이처럼 눈이 빛나며, 표현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 청년은 본디 시를 쓰고 싶어했고 감정이 유달리 예민했다. 그는 늘 자기의 시를 발표하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 나는 텅빈 구멍을 보고 있어요, 어쩌면 이것이 그다지도 을씨년스러웠던 우리 집일 지도 몰라요. 누가 아까부터 나를 자꾸만 불러요. 온종일 이 소리 때문에 나는 옴짝을 못 하겠어요, 이 소리만 내 귓전에서 사라진다면 살 것 같은데.....순희가 나를 찾아왔어요. 우 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했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라요. 그러다가 갑자기 순희가 제 손목을 꼭 쥐었어요.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나는 겁이 났어요. 나 는 여자와 말하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얼른 손을 뿌리쳤죠. 그러자 순희는 나를 사라한다고 말하고 사라져 버렸어요. 그게 아마 사오 년 전인가 봐요."

최씨에게는 늘 환청이 들려 왔다. 순희가 "난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소리였다. 웅크리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 가운데 남자 한 사람을 그의 학교 시절의 동창으로, 간호원을 순희로 삼아 극을 진행시켰다. 환자인 동료가 "남자는 많은 여자와 사귈 수 있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 좀더 넓은 뜻의 여성관을 지닐 수 있다."고 유도하였다.

그리고 간호원인 여자는 남자 쪽에서 진실을 고백해 오기를 바란다고 유도하였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극이 진행되더라도, 의사나 연출자는 그가 던진 문제와 극의 내용이 서로 멀어지지 않도록 극의 흐름을 지켜보아야 한다.

뒤에 안 일이지만, 순희가 그의 손목을 만진 일은 있었어도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자기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거꾸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났다. 그는 많이 좋아져 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고,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좀더 아픈 사람으로서, 제 주장을 할 권리와 자유를 업었다.

경과가 좋아서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게 된 최씨는 우리는 다시 무대로 이끌었다. 극의 장면은 기차 정거장이었다.

보조 자아가 무대 위의 최씨에게 다가섰다. 보조 자아는 몹시 사랑하는 여자를 막 더나보낸 사람 노릇을 맡았다. 보조 자아는 옷깃을 여미며 "춥지요?" 하고 물었다. 그러고는 최씨의 곁에 앉았다. 그는 헤어져야 할 애인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잘 진행시켰다. 여지껏 환자였던 최씨가 그를 오히려 위로했다. 최씨는 한 인간으로서의 여러 가지 처신을 분명히 설명했고 주체성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했다.

그는 전에는 여러 가지의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의식 속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겠는데 마치 혈액 순환이 중지된 듯 무엇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에 극이 그를 이끌어 주었다고 했다. 이 심리극은 침체된. 진행이 중단된, 또는 후퇴한 인간 의식을 이끌어 주었다. 외로울 때에 말벗이 되고 추우면 이불을 덮어 주는 상대가 필요했는데, 심리극이 자기를 그런 뜻에서 구해 줬다고 고백했다.

"혼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소?"

"글쎄요."

"그럼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한참 생각해 보다,

"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을 환자에게 되풀이시킨다. 너무 곧이 곧 대로인 충고나 상담 형식이 아니면서, 자발성과 창의력이 섞인 극으로 엮어서 현실에 구체적으로 부딪치게 하고 미래를 실천할 용기를 준다. 이 일은 환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인에게도 알맞다.

대인 관계에 실패하고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절한 인간을 심리극의 역할 기법으로써 돕고 발전시킨다. 이를테면 아버지면 아버지, 아나운서면 아나운서, 고장 기술자면 기술자다운 구실을 능히 해낼 수 있는 힘을 심리극이 키워 준다. 이것은 생활 기법이나 사회 기법과 직결 되는 일이다.

심리극은 1920년대에 빈에서 야콤 엘 모레노의 손으로 시작되었다. 모레노는 프로이트에게서 심리 분석을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심리극은 프로이트처럼 개인 환자를 고립시키지 않고 집단으로 치료하는 데 큰 계기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말로 치료하던 것을 행동으로 치료하게 됐다.

실지로 환자는 병원에 오면 조금은 저항을 느낄 수 있다. 병원이라는 현실적인 장소와 자기를 정신병 환자로 보는 눈초리가 거북살스럽고 짜증나고 화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환자들은 자기는 환자가 아닌데 공연히 환자 대접을 한다고 아우성친다. 오히려 의사나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고 우기기가 쉽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다. 얼마나 평화스러우냐?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조물주의 뜻에 따라서 살 수 있다."고 우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버스를 타거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도 돈을 안 낸다. 조물주의 뜻대로 살려고 그렇게 한다고 한다. 돈이야말로 가장 더러운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극적인 분위기에 빠지거나 자기 표현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면, 보조 자아나 여러 사람의 참여의 도움으로 그 고집스럽던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자기의 모든 결함과 괴로움을 고백한다. 의사에게나 친구에게나 부모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던 일이 스스럼없이 극의 분위기 때문에 터져 나온다.

1914년에 빈에서는 정신 분석학에 두 갈래의 반대 운동이 나타났다. 하나는 집단 정신 치료였고, 하나는 심리극이었다. 이때에 모레 노는 『자발성 극장』이라는 책을 냈다.

그 책에서 그가 주장한 바를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받아들였다.

모레 노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들은 예수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심리극의 개척자로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보다는 세간의 각성 자로서 모레 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시대의 유행을 따른 궤변가들에게 문답형식으로써 그들의 무지함을 일깨운 소크라테스가 모레 노의 마음에 들었다. 문답 형식을 통해 자기가 오히려 무진한 사람 쪽에 서고 상대방을 선생의 처지에 추켜세워 대화를 진행시킨 것이 지금의 심리극의 역할 전환과 마찬가지였다.

심리극의 한 방법으로서 우리는 역할 전환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상대편이 되어 서로의 구실을 바꾸어 극을 진행하는 일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병원에 많이 들어온다. 보조 자아에게 술주정뱅이 구실을 시키고 술중독 때문에 들어온 환자에게 파출소 주임의 구실을 시키면 진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환자는 파출소 주임으로서 술주정뱅이를 설득하고 인간의 윤리와 에절을 설교하면서도 조서를 꾸며 달라는 보조 자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환자 가운데에는 괜히 들에서 소를 훔쳐서 파출소 앞까지 끌고 와서는 죄를 지었으니 잡아넣어 달라고 행패를 부리다가 병원에 끌려온이도 있다. 그래서 보조 자아를 소를 도둑질한 환자로 삼고 실제의 환자를 파출소 순경으로 삼아 극을 진행시켰다. 하나의 역할 전환이었다.

소를 도적질하였으니 무조건 잡아넣어 달라고 외치는 보조 자아에게 아주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던 순경인 환자가 "당신은 용기도 없고 쓸모도 없는 사람이오. 당신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과감히 해내야 할 게 아닙니까?" 하더니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심리극에서는 시간의 문제가 정신 분석학 에서와 다르다. 프로이트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서 사건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는 발생학적인 심리학이나 생리학에 더욱 치중하였다. 그러나 모레 노는 그런 깊은 과거의 충격이나 장애나 그 밖의 원인보다 현재의 시간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현재의 시간이 지닌 구실을 더욱 중요하게 보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장에 무슨 행동이든지 해야 하고 부딪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때문에 움츠리고 겁을 집어먹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부딪쳐야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한다. 어떤 뜻에서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중요한 것이 된다. 우리는 사회에 나가서 지지 않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차 일어나게 될 어떤 운명이나 사건에 부딪치고,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병이나 실직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리는 수가 있다. 직업을 얻기도 불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업을 가지고도 상관이나 사장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심리극은 이런 때에 장차 일어날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는 지를 연습시킨다. 실생활에서 여러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극은 반드시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 노동자나 육체 노동자의 능력 저하나 의기 소침에도 효험이 있다. 아울러 재수생 같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그것은 결혼에 실패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심리극에서는, 정신 분석학의 추상적인 장소가 아닌, 생활의 여러 측면을 종합할 수 있는 행동이 으뜸이 되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심리극의 무대이다. 그곳에서 지평선도 있고 여러 가지 물체와 구실 속에서 현실과 꿈을 실천력 있게 펼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늘 가혹한 현실이 있다. 그것은 생활 그 자체이다. 가정을 이끌고 사람과 만나고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의 생활이나 아이들, 아내 또는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며 생존해야 한다. 상관의 태도에 화가 난 가장이 혼자 독립하려 해도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다. 더구나 주위의 몰이해가 겹치면 의기 소침해서 현실 도피나 죽음의 망상 따위를 갖는다.

이런 때에 심리극은 어떤 꾸며진 상황을 그에게 주고 삶의 새로운 기술을 개척하게 돕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꾸며진 상황을 그에게 주고 삶의 새로운 기술을 개척하게 돕는 다. 그 꾸면 낸 상황은 연극에서 "만일에 네가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꾸며진 상황이 환자의 상황과 크게 빗나가면 문제가 일어난다. 남편이나 가정에서 따돌려진 가정 주부는 여러 현실 문제와 극이 동떨어지면 새로운 환멸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문제와 남편의 문제를 잘 살펴서 연극을 진행해야 한다. 워밍업을 거쳐서 자발성이 우러나오고 창의력이 곁들어지면 그녀를 무대에 올려 세우고 그녀가 일상에서 겪는 인물이나 사건과 부딪치게 한다.

여기에 좋은 보기로서 <졸업>이라는 영화를 살펴보자

대학을 졸업한 한 청년에게 갑자기 어떤 공간과 시간이 펼쳐진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현실이 막연히 불안하게 다가온다. 파티가 벌어진 날 밤에 어떤 신사가 다가와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날 밤에 그 청년은 어떤 중년 부인의 유혹에 말려든다.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려들고 만다. 부딪쳐 올 현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청년을 함정으로 빠뜨린다. 심리극에서는 이 부딪침을 중요하게 본다. 서로 만나고, 합치고 보고, 느끼고, 만져보는 따위들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청년은 모든 불안을 없애려고 중년 부인의 육체 속으로 파고든다. 그 청년은 아직 사랑에 서툴고 삶에 덜 익은 상태에 있다. 사랑에 서투르며 또 유치한 사랑의 유희밖에 모르는 청년에게 준 중년 부인의 성놀이가 청년을 치료하는 데에 참으로 값진 보조 자아가 된 셈이었다.

정신의 공허와 불안에 싸여 있던 청년은 자기의 인간으로서의 구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한다. 이리하여 구실에 대한 의식이 점점 뚜렷해진다. 자기의 구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패배자가 되기 때문에 싸움을 결심한다. 그것이 중년 부인의 딸과의 사랑의 싸움이다.

구실은 심리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문제의 하나이다. 구실은 개인의 면과 집단의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모두 생산적이라야 한다. 따라서 과거의 기억보다는 자발성이 강조된다.

구실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저 주어진 구실을 고지식하게 있는 그대로 하는 '구실 맡기'이고, 둘째는 주어진 구실에 조금의 자유가 있어서 감정이나 태도를 좀 바꿀 수 있는'구실하기'이다. 셋째는 스스로 나서서 역을 하고 개혁하는'역의 창조'이다.

다시 영화 <졸업>의 청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청년은 사랑의 체험을 겪으려고 씩씩하게 행동에 나선다. 그러나 그는 그러는 사이에 여러 가지 곤욕을 겪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사랑의 과정에서 엿보인다. 그것은 그릇된 사랑에 빠졌던 청년이 죄의식이 공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흔히 정신과 병원에는 자기를 무조건 죄인으로 부르는 사람이 이다. 이것은 어떤 인간이나 지닌 죄의식이다. 이런 죄의식을 없애고 주체성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 말하자면 두 발로 딛고 설 당을 발견케 하는 일이다.

나중에 청년은 애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고 결혼식장을 찾아 헤맨다. 자동차를 버리고 거리를 마구 가로질러서 뛰어간다. 그는 문이 닫힌 교회 안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든다. 그러고는 신부를 이끌고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온다. 그러고 그는 교회의 문을 밖에서 잠가버린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있어 온 미국의 의식을 교회 안에다 가두어 놓고 저 나름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 이 행동이 심리극의 역할 창조와 맞먹는다.

이 과정이 심리극의 진행 과정과 비슷하다. 그러나 심리극에서는 여러 가지 법칙과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가 환자이기 때문이다. 가령 주체성의 문제에서도 환자가 느끼고 감지하는 진실을 표현시켜야 한다든가 또는 그러한 것을 만족스러울 만큼 충족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따른다. 다시 말해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세계까지 환자를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나 암 자발성이 없는 환자와 부딪치든지 그의 몸에 손을 대는 일은 경우에 따라 삼가야 한다. 더구나 환자가 선택하고 만족하는 시간과 장소를 연출자나 의사나 보조 장가 따라가야 하고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의 제약을 주어야 할 때가 있고, 상황에 따라 중단시켜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다룸을 잊으면 환자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결국 심리극은 어떤 면에서는 받아들여 주는 처지에 서야 한다. 부모나 사회가 받아 주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은 병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리극은 환자에게 자기 해석과 자기 통찰을 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행동을 통한 자기 통찰, 자기 이해, 정신의 배설이 중요하다. 우리는 거의 즉흥에 따라 자발성 극장을 해왔지만, 이 밖에는 여러 가지 연출 기법과 법칙이 있다.

심리극은 주인공의 구실을 맡는 환자에게 자기 발견의 길을 열어 주고 현실이나 닥쳐 올 일들과 싸울 힘이나 꿈을 키워 준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심리극이 반드시 환자를 고쳐 주는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고, 다만 심리극다운 방법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훌륭한 방편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재수/ 연극 연출가이며, 저서로는 '신배우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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