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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습사전 / 소설(ㄱ~ )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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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 김동인 단편 소설

싸움, 간통, 살인, 도둑,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사농공상의 제2위에 드는) 농민이었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 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영감이라는 편이 적당할까)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 년이나 위로서,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서, 마지막에 복녀를 산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었다. (발단부)

* 감상 : 한 여성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운명이 변하는가를 ‘환경결정론’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자 연주의 소설이다.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 내고 인간의 존엄성의 상실을 보여 주고 있다.

 

* 줄거리 : 농부의 딸인 복녀는 돈에 팔려 나이가 저보다 스무 살이나 더 되는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 생활은 말이 아닌데다 남편은 게을러서, 기어코 평양 교외의 빈민굴로 밀려나와 구걸로 써 목숨을 이어 가게 되었다. 마침, 그 때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뒤끓어 평양부에서는 그 퇴 치에 나섰다. 복녀도 그 인부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복녀는 열심히 송충이를 잡았다. 어떤 날 그녀는 몇몇 아낙네들이 감독과 더불어 웃고 놀며 소일하면서, 품삯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되지 않아 복녀도 감독에게 몸을 더럽히게 되었으며, 그 날부터 다른 아낙네처럼 놀아날 수가 있게 되었고, 정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가을이 닥쳐왔을 때 복녀는 빈민굴 아낙네 들을 본받아, 이번에는 중국인 감자밭에 감자를 도둑질하기 위해 드 나들기 시작했다. 어떤 밤이었다. 그녀는 감자한 광주리를 훔쳐서 막 일어나려는 찰나 중국인 왕 서방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복녀는 중국인을 따라가서 몸을 허락하고 얼마간의 돈을 얻어 돌아왔다. 그 후부터 그녀의 집에까지 왕 서방은 드나들게 되었다. 그들 부부의 생활에는 약 간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복녀의 집에 왕 서방이 오면 복녀의 남편은 복녀가 마 음놓고 몸을 팔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인 왕 서방이 장 가를 들게 되었다. 새로 색시를 사온 것이다. 복녀는 타오르는 질투를 참지 못해서 결혼식날 왕 서방을 찾아가서 저의 집으로 가기를 청했다. 이 때에 결혼식장은 수라장으로 변해 갔다. 복녀는 손에 낫을 쥐고 대항하다가 피를 뿜고 죽어 갔다. 이 날 밤 왕 서방은 복녀의 남편과 의사에게 각각 30원과 20원씩을 주었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 묘지로 실려 갔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 주제 : 환경으로 인한 한 여인의 비극적 종말

* 출전 : [조선문단] (1925)

---  나도향 소설<물레방아>


●강 : 서정인(徐廷仁) 단편 소설

 

“눈이 내리는군요.”

버스 안. 창쪽으로 앉은 사나이는 얼굴빛이 창백하다. 실팍한 검중 외투 속에 고개를 웅크리고 있다. 긴 머리칼은 귀 뒤로 고개 위로 덩굴 줄기처럼 달라붙었는데 가마 부근에는 몇 낱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섰다.

“예, 진눈깨빈데요.”

그의 머리칼 위에 얹힌 큼직큼직한 비듬들을 바라보고 있던 옆엣사람이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목소리가 굵다. 그는 멋내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하얀 목도리가 밤색 잠바 속으로 그의 목을 감까 넣어 주고 있다. 귀 앞 머리 끝에는 면도 자국이 신선하다. 그는 눈발 빗발 섞여 내리는 창밖에 차츰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버스는 이미 떠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태연하기만 하다. (발단부) (중략)

김씨는 네 다리를 이불 밑에 쑤셔 넣은 채 새우처럼 등을 굽히고 옆으로 누워 곤히 자고 있다. 여자는 그 얼굴을 들여다 본다. 낮에 본 사람이 분명하다. 대학생 ! 그녀는 살포시 김씨의 어깨를 밀어서 바로 눕힌다. 넥타이가 목에 켕기는지 턱을 좌우로 흔든다. 츳, 츳, 옷두 벗지 않구. 가엾어라. 그녀는 누나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넥타이를 풀고, 이불을 젖혀서 바지를 벗기고, 와이셔츠를 벗기고, 요를 바로 펴고 ······. 김씨가 꿈틀하더니 일어날 듯하다가 다시 요 밑으로 파고든다. 여자는 화가난다. 그의 팔다리를 요 밑에서 빼어내고 그를 안아서 간신히 요 위에 눕힌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다가 덮어준다. 베개를 바로 베 주고 그대로 엎드려서 그 얼굴을 들여다 본다. 대학생 !

남폿불이 피시식 소리를 낸다. 그녀는 일어나서 방바닥에 널려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벽에다 건다. 남포는 호야가 시커멓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위에서부터 남포 호야 속으로 살며시 바람을 불어 넣는다.

밖에서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그녀가 남겨 논 발자국을 하얗게 지우면서. (결말부)

* 감상 : 눈 내리는 날, 혼삿집에 가는 세 사내와 그들이 우연히 만난 한 여자가 엮어내는 서정적 분위기의 단편. 전직교사 박씨, 세무서 주사 이씨, 늙은 대학생 김씨는 혼삿집에 가는 버스 안 에서 친해진 여자와 같은 곳에 내린다. 김씨는 총명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의 초라한 모습을 슬퍼한다. 술집 작부인 그 여자는 자기의 꿈이었던 신부의 감정이 되어 곤히 잠든 김 씨를 감싸준다.

 

* 배경 : 눈 내리는 겨울 시골 군하리(60년대)

* 시점 : 전지적 작가

* 문체 : 배경의 객관적 묘사와 짤막한 대화 - 간결체

* 어조 :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비감(悲感)어린 어조

* 등장인물

· 박씨 : 전직 국민학교 교원. 김씨, 이씨의 하숙집 주인. 세상을 자기식으로 살아간다고 자부 하나 행동이 연민의 정을 가진다. 군대기피자였음

· 이씨 : 세무서 주사. 농담을 즐기며 멋을 잘 부임. 속물근성을 가짐

· 김씨 : 늙은 대학생. 가난 때문에 좌절을 맛본 이상주의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우울한 패배주의자

· 여자 : 술집 작부(酌婦). 세 사내를 만나 신부(新婦)의 꿈을 꿈

* 주제 : 소외 당한 소시민의 슬픔

* 출전 : 196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

 

󰏐 [그때 그작품] 서정인 소설 `강'

서정인의 단편소설 [강]에는 강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작품에등장하는 것은 60년대 중후반 시골 소읍의 스산하고 후줄근한 풍경이다. 흑백의 단색 화면같은 그 풍경 속에서 낙오한 인생들의 별다를것 없는 하루가 펼쳐진다.

이제는 한국 소설문학의 고전적 명편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소설 [강]이 발표된지도 어언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지금 다시 이 작품을 읽어보는 내 마음은 어떤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설렌다. [화랑담배]라든지 [누런 석탄 연기를 뿜어내는 기차] 혹은 [퉁소를 불며 밤거리를 거니는 장님 안마사] 같은 지난 연대의 일상적 기호들이 불러 일으키는 처연함 때문일까. [약포] [공회당] [남포불] 등 지금은 낯설게 되어버린 단어들이 자아내는 아득한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소설의 주조음을 이루고 있는 체념과 달관의 정서가일으키는 강력한 전염력 때문일까. 어쨌든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게빛바랜 옛사진이 주는 향수 이상의 묵직한 감정적 동요를 선사한다.

소설은 크게 다음 두 개의 삽화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출발 시간이 한없이 지연되는 버스 안 풍경. 늙은 대학생, 세무서 직원, 전직교사 등 세 남자는 창밖에 내리는 진눈깨비를 통해 각기 다른 상념에젖는다. 군하리라는 마을에서 그들은 하차한다. 다음은 혼례 잔치가끝난 후 그들이 몰려간 술집 풍경. 두사람의 어지러운 술자리와 옆집여인숙에 쓰러져 자는 늙은 대학생이 대비적으로 그려진다. 밤이 깊어지자 그가 자는 방에 아까 버스를 타고 왔던 술집 작부가 찾아온다.

세 남자의 성이 김, 이, 박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술집 작부까지 더해 이처럼 삼남일녀로 구성된 등장인물의 하루 행적을 작가는 무심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담담하게 따라가고 있다. 작중인물의 대화와 지문에 종종 번득이는 유머와 기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일찍이 한 평론가가 [한국적 페시미즘]이라고 불렀던 애잔한 분위기와 상실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특히 소설 후반 여인숙에서 늙은 대학생이 만난 훈장을 단소년에 대한 묘사에서 두드러진다. 자기 반에서 일등이며 반장을 한다는 그 소년을 두고 늙은 대학생은 독백한다. 국민학교에선 천재가중학교에 가면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선 우등생, 대학에선 보통이다가 열등생이 되어 사회에 나온다고. 이 도저한 비관주의 밑에는 아마도 삶의 불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뿌리깊은 원한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한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엔 따스함이 감돌고 있다.

밤이 깊어져 세상이 눈에 덮이듯 대학생이라는 말에 매혹된 순박한술집 작부는 쓰러져 자는 늙은 대학생을 찾아가 누나나 어머니처럼포근히 감싸준다. [비굴하고 피곤하고 오만한 낙오자]에게 이만한 위로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스산하고 후줄근한 시절을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으랴.<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

 


●개척자(開拓者) : 이광수 장편 소설

 

* 감상 : 개척자는 과학에 의한 입국(立國)을 지향하려는 김성재와 오빠를 도우면서 사랑의 잉태 로 자유연애에 의한 삶의 성취를 지향하는 김성순의 인습과 세속으로 뒤얽힌 현실을 초극(超 克)하려는 삶의 현실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광수는 그 현실을 전지적 시점으로 분석하여 제 시하며, 감화적 체험보다는 인식(認識)에 의한 작중 현실(現實)을 제시하고 있다.

 

서두의 김성재의 실험(實驗)에 대한 서술에서부터 설화자의 개입은 시작되어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심리 등을 신(神)과 같은 전능(全能)의 시각에서 진행해 나간다. 여기에서 설화자의 개 입은 직접 인물을 논평(論評)하거나 사상이나 사실을 설교(說敎)하는 진술을 하게 된다.

 

결국 7년간의 실험은 실패하고 재산가 함사과(咸司果)에게 저당된 재산이 방매되고, 이로 인하 여 아버지 김참서는 죽는다. 성순은 오빠의 성공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데 실험을 계속하려 는 오빠가 부자인 변씨에게 허혼하자 사랑하는 민은식 선생의 품에 안겨 죽는다.

 

개척자는 과학발흥에 대한 집념, 조선주의의 신장, 자유연애 사상을 담은 작품이다.

 

* 주제 : 봉건적 인습의 타파와 자유 연애(자유와 민족을 위한 청년의 사명)

* 의의 : 계몽성을 띤 일종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소설

* 출전 : [매일신문] 연재 (1917)


 

●객주(客主) : 김주영 장편 소설

 

샛바람 사이를 긋던 빗방울이 멎자 금방 교교한 달빛이 계곡의 새밭으로 쏟아져 내렸다. 계곡에 널린 돌과 바위들이 차갑게 빛났다.

이경(二更)이나 되었을까, 신선봉의 협곡을 내려 쏟는 바람 사이에 간간이 여우 울음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계곡을 끼고 새재[鳥嶺]로 기어 오르는 에움길을 봉산 수숫대같이 키가 멀쩡한 불상놈 하나가 봉발(蓬髮)을 하고 열고나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행색의 초라함은 양주골 홀아비 꼴이었지만 행전(行纏) 하나는 단단히 쳐져 있었고, 어디서 잡았는지 어깨엔 토끼 한 마리가 밀치끈에 꽁꽁 묶여 매달려 있었다.

사내는 부지런히 길을 줄이다가 문든 개천으로 내려가는 자드락길로 바꾸어 잡았다. 개천에는 낡은 복찻다리가 가로 놓여 있었고, 복찻다리 건너 기슭에는 박달나무 숲이 무성했다.

멀리 들리던 여우 울음소리가 퍽 가까워졌는데도 봉발의 사내는 개의치 않는 듯 다리를 성큼성큼 건너가더니 어깨에 메었던 토끼를 내려 놓고 바윗등걸에 풀썩 걸터 앉았다.

북두갈고리 같은 손을 동저고리 속으로 집어 넣더니 수리치를 꺼내 부시를 치기 시작햇다. 곰방대를 피워 물고 사내는 달빛이 하얗게 내려앉는 돌밭으로 눈길을 주었다.

여우 울음 소리가 금방 사내가 건너왔던 계곡 건너편 여울목 어름에 와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곰방대를 털고 사내는 신들메를 고쳐 매었다.

박달나무숲을 헤치고 나가자 다시 잡목숲이 나타났다. 잡목 가지들이 사내의 발길에 휘어져 눕혔다간 다신 떨리며 일어났다. 산새가 놀라 밤하늘고 날아 올랐다.

잡목숲 저쪽엔 밤에 봐도 시커먼 큰 바위 하나가 산자락 옆으로 불거져 나와 있었고, 그 바윗등걸 뒤로부터 사람들의 말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두런두런 들려왔다. 낌새를 보았는지 바위틈 사이에서 패랭이를 쓴 사내가 일어서더니 금방 잡목숲을 헤치고 나오는 사내 앞으로 잘똑거리며 걸어 왔다.

“봉삼인가?”

“예”

“늦었네그랴.”

“예.”

둘은 잠시 동행이 되어 바윗등걸 뒤에 있는 숯막까지 걸었다.(제1장 숙초행로(宿草行露) 1. 발단부)

* 주요 주인공

· 길소개 : 45세. 근본이 없는 사람. 처음엔 젓갈장수였다가 조성준의 재물을 가로채고 그를 궁 지에 몰아 넣는다. 모사와 계략에 능하고 자신의 출세라면 불에라도 뛰어들 인물

· 조성준 : 50세. 쇠살주로 한때 송파의 우전(牛廛) 상권을 쥐고 있던 사람으로 송만치에게 아 내를 빼앗기고 김학준과 길소개에게 재물을 털린다. 한 번 작정한 일은 이루고야 마는 사람

· 매월이 : 30세. 들병이로 송만치의 외사촌 누이. 천봉삼에게 각별한 연정을 품고 있는 여인. 사내 이상으로 술수가 있음

· 천봉삼 : 25세. 송도 사람. 천소례의 동생이며 조성준을 행수로 모심. 정의감이 투철하고 의 협심이 강하다. 신석주의 첩실인 아름다운 조소사(22세)를 연모함

· 선돌이 : 27세. 황해도 황주 사람. 근본이 갯바닥 왈짜 출신이나 의리와 정의에 살며 팔방미 인. 언행이 일치. 천봉삼과 동업자.

 

󰏐 장편 역사소설 [객주(客主)]

“이 소설은 조선시대 말년을 살다간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걸치고, 어떤 집에서 자고, 무엇을 말하고 살다갔느냐 하는 평범한 문제들을 속속들이 점검하고 지금까지 씌어졌던 역사소설들에서 훼손되었던 부분을 상것(常民)들의 시각에서 조명해보려 했음이다. 역사의 행간에서 속절없이 배설되어 버렸던 그 숱한 상것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로 쓰고자 했던 것 뿐이다.”

 


 

●갯마을 : 오영수 단편 소설

 

배는 떠났다.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과 기대가 깃들어 있을망정 조그만 불안의 그림자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고기잡이로 떠난 갯마을에는 늙은이들이 어린 손자나 데리고 뱃그늘이나 바위 옆에 앉아 무연히 바다를 보고, 아낙네들이 썰물에 조개나 캘 뿐 한가하다.

사흘째 되던 날, 윤노인은 아무래도 수상해서 박노인을 찾아갔다. 박노인은 막 물가로 나오는 참이었다. 두 노인은 바위 옆 모래톱에 도사리고 앉았다. 윤노인이 먼저 입을 땠다.

“저 구름발 좀 보라니?”

“움!”

구름발은 동남간으로 해서 검은 불꽃처럼 서북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었다.

윤노인이 또,

“하하아 저 물빛 좀 봐!”

박노인은 보라기 전에 벌써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변의 징조였다.

파도는 이미 모래톱을 너머 돌각담을 삼키고 몇몇 집을 휩쓸었다. 마을 사람들은 뒤 언덕배기 당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러는 동안에 날이 샜다. 날이 새자부터 바람이 멎어 가고 파도도 낮아 갔다. 샌 날을 보는 마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날 밤 한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 윤노인이었다. 그의 며느리 말에 의하면 돌각담이 무너지고 파도가 축담 밑까지 들어 밀자 윤노인은 며느리와 손자를 먼저 가라고 하고 윤노인은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틀 뒤에 후리막 주인이 신문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출어한 많은 어선들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어 주었다. 마을은 다시 수라장이 되었다.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울음에도 지쳤다. 울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죽었을라고- 이런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아낙네들은 다시 바다로 갔다. 살아야 했다. 해순이는 성구가 돌아올 것을 누구보다도 믿었다. 그 동안 세 식구가 먹고살아야 했다. 해순이도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갔다.

이날 해순이는 몇 번이고 상수에게 소문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이틀이 못 가서 해순이와 상수는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시 고등어 철이 와도 칠성네 배는 소식조차 없었다. 아낙네들만이 불가에 모여들었다. 칠성네가 그의 시아버지(박노인-박노인은 그 뒤 이렇다 할 병도 없이 시름시름 앓아 누워 지금껏 자리를 뜨지 못한다.)가 시키는 말이라면서 작년 그날을 맞아 일제히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었다.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 H마을에 여덟 집 제사가 한꺼번에 드는 셈이다. 제사를 이틀 앞두고 해순이 시어머니는 해순이에게

“얘야, 성구 제사나 마치거든 개가하도록 해라!”

“……”

“새파란 청상이 어찌 혼자 늙겠노.”

해순이는 그저 머엉했다.

“가면 편할 자리가 있다, 그 새 여러 번 말이 있었으나, 성구 첫 제사난 치르고 보자 해 왔다. 너도 대강 짐작이 갈 게다.”

해순이는 낯이 자꾸 달아올랐다. 상수가 틀림없었다.

해순이마저 떠난 갯마을은 더욱 쓸쓸했다. 한 길 물 속에 미역밭을 두고도 철을 놓쳐버렸다. 해조로 끼니를 이어가는 집도 한두 집이 아니었다. 또 고등어 철이 왔다. 두 번째 맞는 제사를 사흘 앞두고 아낙네들은 불가에 모였다.

“이번 제사에는 고동 생복도 없겠다!”

“이밥은 못 차려도 바다를 베고서……”

“바닷귀신이 고동 생복 없이는 응감도 않을것!”

이렇게들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뒤에서 누가

“왁!”

해순이었다.

“이거 새댁이 앙이가?”

“제사라고 왔나?”

“너거 새서방은?”

“난 인자 안 갈테야, 성님들하고 여기서 살래!”

그리고는 훌쩍 일어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켰다. 오래간만에 맡는 그렇게도 그리던 갯냄새였다.

󰏐 줄거리

▲ 전반부 - 현재

① 초여름 밤 멸치 후리막에서 주인공 해순(海順)이를 포함한 남녀들이 모여 그물을 당긴다.

② 그물을 당기던 해순이가 어느 사내한테 손 잡히고 허리를 감싸 안기자 당황하여 집으로 돌 아 온다.

③ 집으로 돌아온 해순이는 사내 손길을 떠올리고 그 손길을 통해 첫남편 성구와 둘째 남편 상수의 손길을 생각한다.

 

▲ 후반부 - 과거

① 바닷가에서 태어나 성구와 혼인한 해순이는 얼굴 모르는 아비를 두었다.

② 원양출어 나간 성구와 마을 사내들은 폭풍우로 돌아 오지 않았다.

③ 상수의 침입으로 해순은 허락하게 되고 결국 뭍으로 가서 새 삶을 살게 된다.

④ 상수는 징용에 끌려 갔으며 해순이는 마침내 갯마을에 돌아 오게 된다. 그것도 성구의 제 삿날에 맞추어서.

⑤ 마을 아낙네들은 환대히 그녀를 맞이한다.

 

* 주제 : 대자연에 부딪히며 융화하는 삶 / 원시적 순박성(순수성) 부각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 영국의 작가 스위프트가 지은 풍자소설. 영국 여행가 걸리 버가 인도로 항해하는 도중, 난쟁이 나라 릴리펏(Lilliput)에 표착(漂着)하여 국왕에게 중용되고, 또 다시 인도로 가는 길에 키다리 나라 브로브딩내그로 표착하여 구경거리가 되고, 왕비의 총애를 받으며 다시 공중에 뜬 섬 러퓨터(Laputa), 말의 나라 후이넘 등지를 거쳐 여러 가지 기담(奇談)을 갖고 돌아온다는 줄거리인데, 당시 사회·정치를 풍자한 것임. 1726년 출간.

---  <풍자>

 


●겨울골짜기 : 김원일 장편 소설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거창, 글 최재봉)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은 높이 7백~9백m대의 산들로 옴팍하니 둘러싸인 분지형 지세를 이루고 있다. 남상면을 지나 거창읍으로 통하는 북쪽으로는 신원면의 상징과도 같은 감악산(951m)이 버티고 있고, 산청군 오부면 및 차황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쪽에는 보록산(800m)과 소룡산(779m)이, 그리고 동쪽과 서쪽으로는 각기 월여산(863m)과 갈전산(764m)이 절집의 사천왕처럼 신원면을 지키고 있다. 분지 너머로 시야를 뻗으면 남서쪽의 지리산과 북동쪽의 가야산, 그리고 북서쪽의 덕유산에 이를 테지만, 신원의 사천왕들은 그같은 시야의 확장을 가로막고 나선다. 사천왕들이가로막는 것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향하는 시야만은 아니어서, 신원면 밖에서 보면 높직한 산과 깊숙한 골짜구니가 눈에 들어올 뿐 그 안에 아기자기한 마을과 논밭들로 이루어진 분지가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예로부터 천분과 소여에 만족하지 못하는 중생들은 감악산을 끼고 도는 숭더미재나 소룡산을 빗겨 나가는 밀치재를 통해 분지 너머로의 출타를 도모해왔다.

 

그러한 사왕의 위요와 영검으로써도 이념의 차이로 인한 인간의 광기와 맹목은 물리칠 수 없었음인가. 1951년 2월11일 신원면의 분지 안에서는 총성과 비명, 초연과 선혈이 뒤섞이고 교차하면서 아수라의 지옥을 연출한다.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들이 신원면 대현․중유․와룡리 주민 6백여명을 집단학살한 것이다. 군인들이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이 포함된 비무장 양민을 `청소'한 까닭은 그들이 빨치산과 내통한 통비분자라는 것이었다. 국군의 주장은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1950년 12월5일 4백~5백명의 빨치산이 신원면 양지리의 분주소를 습격, 점령한 이후 다음해 2월7일 국군이 신원면에 진주하기까지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국군이 다시 들어올 무렵 빨치산에 적극 협력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군쪽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이었다.

 

전시의 혼란과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건은 당분간 물 밑에 잠겨 있다가 한 달 뒤부터야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다. 국회의 진상조사반은 4월7일 현장을 확인하고자 숭더미재를 넘던 길에 빨치산으로 위장한 국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해 말 군법회의에서 연대장과 대대장 등 관련자들은 3년에서 무기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1년 뒤 모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난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 극도로 숨 죽이며 살아온 희생자의 유족들과 신원면 주민들은 4․19 이후 유족회를 구성하고 위령비를 세웠으나,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그 위령비를 무너뜨려 매장해버렸다. 그 뒤로 30여년 이어져온 군인 대통령 시절에 희생자들의 명예는 위령비와 함께 땅 밑 어둠 속에 묻혀져왔다.

 

김원일(54)씨의 장편 <겨울 골짜기>는 빨치산의 신원면 점령 직전 시점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거창양민학살사건'으로 알려지게 된 비극의 연원과 전개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유혈비극의 와중에 세상 빛을 본 한 아기의 가족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모를 담고는 있지만, 사건의 뼈대를 제외하고는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허구에 의존했다. 소설은 `산'과 `마을'의 시점을 오가면서 서술되는데, 양쪽의 중심인물은 천우신조로 살아난 아기의 아버지 문한돌과 그의 동생이자 빨치산인 한득이다.

 

군인 출신 대통령 전두환씨의 서슬이 시퍼렇던 85년부터 현지답사를 거쳐 87년 초까지 몇몇 잡지에 나누어 발표한 뒤 단행본으로 펴낸 이 소설은 당시까지만 해도 금기의 사슬에 단단히 묶여 있던 빨치산들의 생활을 비교적 객관적․사실적으로 그려 관심을 모았다. 김원일씨가 소설에서 그린 빨치산은 그 전까지 공비(共匪)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잔인하고 맹목적인 이념의 노예와는 달리 나름의 역사․철학적 신념을 순수한 인간애와 결합시킨 더운 피의 소유자들이다. <겨울 골짜기>에서 또하나 인상적인 모습은 산과 마을에 관계 없이 당시 사람들을 괴롭혔던 극도의 굶주림이다. `들피지다'라는 표현에 실려 전해지는 전쟁통 기아의 참상은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소설은 그러나 신원면을 점령하여 국군 토벌대의 보복적 학살에 빌미를 주었던 빨치산의 움직임에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고 정작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은 결말 부분에서 간략하게 처리하고 넘어감으로써 학살의 무분별과 잔혹성을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한 아쉬움을 준다. 거창에서 총을 난사한 부대가 그 사흘 전에는 이웃 산청군 금서면의 8개 마을에서 주민 5백여명을 집단학살했으며, 경북 문경과 전북 순창․고창 등에서도 수백명에서 1천여명에 이르는 양민들이 군경에 의해 떼죽음을 당했다. 게다가 거창사건의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3월에는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국민방위군들의 식량과 의약품, 부식비를 사령관 등 간부들이 착복함으로써 1천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사건이 밝혀지는 등 전쟁기 군의 부패와 행악은 극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거창읍을 거쳐 신원면에 이르는 길은 곳곳이 꽃사태였다. 이미 한철 지난 느낌의 벚꽃과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길 양옆에 펼쳐진 과수원의 복숭아․배․사과꽃, 마을의 살구꽃과 길섶의 싸리꽃, 민들레, 할미꽃, 그리고 크기와 색깔과 모양은 달라도 제각기 아름다운 이름 모를 들꽃들, 거기다가 꽃보다 덜 예쁠 것도 없는 버드나무와 포플러, 미루나무, 히말라야시다 따위의 연록색 새 잎들…. 첩첩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 그리고 옥계천의 맑은 물을 지나는 길은 흡사 강원도의 어느 산악지대를 달리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깨끗한 포장도로를 타고 면소재지인 양지리와 학살 전날 주민들을 집결시켰던 신원초등학교가 있는 과정리를 지나 이르른 오후의 대현리는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외롭게 논을 가는 두어명의 농부와 그들이 부리는 소의 아령과 경운기의 엔진 소리가 새소리에 섞여 들릴 뿐 인적조차 뜸하다.

 

대현리와 학살 장소인 탄량골 사이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무덤이 있다. 수백명의 주검이 겨우 두개의 커다란 무덤에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묻혀있다. 학살 뒤 3년이 지나 주인을 알아볼 수 없게 된 뼈를 수습하도록 허락되자 큰 뼈는 남자, 작은 뼈는 여자, 더 작은 뼈는 아이 식으로 분류를 해 3기의 묘를 꾸몄지만, 그나마 아이들 묘는 아예 군과 당국이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4․19의 자유 공간에 세웠던 위령비 역시 5․16과 함께 무너뜨려졌다. 그 뒤로도 요원할 것만 같았던 신원의 신원(伸寃)은 사건 발생 45년 만인 지난해 말에야 특볍법이 통과돼 비로소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쓰러진 위령비와 스프레이 구호 따위로 어수선한 묘지에서 만난 마을 주민 박종권(52)씨는󰡒위령탑을 세우고 묘지도 확장, 정비해 학생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쓰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고향 : 현진건 단편 소설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의 친구들이 산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름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 곳에 주접(住接)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 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 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가?”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구 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위기)

* 감상 : 사실주의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 폭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일제의 수탈로 찌그러진 두 남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실적인 조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마지막 결 미의 노래에서 민족의 고뇌를 함축하고 있는 풍자를 볼 수 있다. 1인칭 서술로 일제 강점기 인 1920년대 중반의 일제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의 실상을 역력히 보여 준다. 또 작품의 구성 에서는 액자 소설적 형태를 보여 준다. 일제에 대해 철저히 저항적이었던 지은이의 저항 정신 의 표출인 이 작품은 입체적 구성을 지니고 있으나 실제 이야기하고 있는 시간과 사건이 일어 난 시간은 달리 짜여 있는, 3단 구성의 유형을 지니고 있다. 즉 현재의 차중 묘사가 먼저 나오 고, 그로부터 듣는, 고향을 떠나 유랑하던 이야기, 그리고 다시 현재의 취흥과 노래를 통한 사 회상의 3 단 구성이라는 이야기이다. 비참한 유랑 생활을 한 그는 일제 치하의 식민 한국인의 전형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의 눈물은 곧 일제에게 짓밟힌 고국, 즉 조선의 얼굴로 요약 상징 된다.

 

* 배경 : 일제 강점기, 농촌

* 시점 : 1인칭 관찰자

* 문체 : 강렬하고 저항적인 문체

* 구성 : 액자소설

▲ 외부(1인칭 나의 이야기) - 내부(3인칭 그의 이야기)

󰆲 이야기 나누는 기차 안의 모습(대구 󰠜󰠜󰋼서울)

·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보게 되는 그의 기이한 옷차림새

· 일본인, 중국인, 나의 등장

󰆳 그의 과거 이야기

· 대구 근교의 한 농촌에서 동양 척식회사에 농토를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가 파란 많던 유랑 생활을 함

· 구주 탄광을 전전함

· 황폐한 고향을 찾았을 때 이야기(무덤과 해골을 연상시키는 고향)

· 혼담이 오갔던 한 여인이 유곽으로 팔려갔다가 늙고 병들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불 행한 이야기

󰆴 지금의 취흥(醉興)과 민요(民謠)부르기

그는 취흥에 겨워서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로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遊廓)으로 가고요---

 

* 등장인물

· 그 : 현실 순응적인 태도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저항성이 나타남

· 그녀 : 농촌의 황폐화로 20원에 창녀촌(유곽)에 팔려간 여성

· 나 : 현실을 한 때 외면하려 했으나 ‘그’의 한탄을 듣고 조선의 현실을 재인식

 

* 주제 : 일제 하의 한민족의 빼앗긴 고향과 그로 인한 비참한 생활 고발

* 출전 : 1926년 [조선일보] <그의 얼굴>로 발표(1월 4일자), 그 후 단편집 [조선의 얼굴](글벗집 출간)에 수록되면서 <고향>으로 제목을 고침


 

●관촌수필(冠村隨筆) : 이문구 연작(連作, 1972~1977)소설, 단편 소설

 

1. 일락서산(日落西山)

 

시골엔 다녀오되 성묘를 볼 일로 한 고향길이긴 근년으로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양력 정초에 몸소 그런 예모(禮貌)를 가려 스스로 치름은 낳고 첫겪음이기도 했다. 물론 귀성열차를 끊어 앉고부터 ‘숭헌, 뉘라 양력 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歲曆)을 아는 벱여······.’ 세모가 되면 한두 군데서 들오던 세찬을 놓고 으레 꾸중이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자주 되살아나 마음 한 켠이 결리지 않은 바도 아니었지만, 시절이 이런 시절이매 신정 연휴를 빌미할 수밖에 없음을 달리 어쩌랴하며 견딜 거였다. 그러나 할아버지한테 결례(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나 자신에게까지 속일 순 없었다. 아주 어려서 입때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있은, 우리 가문을 지킨 모든 선인 조상들의 이미지는 오로지 단 한 분, 할아버지 그분의 인상밖엔 없었기 때문이었다. 좀 야한 말로 다시 말하면, 내가 그리워해 온 선대인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동기간들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이조인(李朝人)이었던 할아버지, 오직 그 한 분만이 진실로 육친이요, 조상의 얼이란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는 거였고, 또 앞으로도 길래 그럴 것만 같이 여겨진다는 이야기다. 받은 사랑이며, 가는 정으로야 어찌 어머니 위에 다시 있다 감히 장담할 수 있으랴만, 함에도 삼가 할아버지 한 분만으로 조상의 넋을 가늠하되, 당시로 받은 가르침이며 후제에 이르러 깨달음을 진실로 받들고 싶도록 값지게 여겨지는 바엔, 거듭 할아버지의 존재와 그 추억의 편린(片鱗)들을 가재(家財)의 으뜸으로 다룰 수밖에 없으리라 싶은 것이다. 초사흗날, 그중 붐비잖을 듯싶던 열차로 가려 탄 게 불찰이라 하게 피곤하고도 고달픈 고향길이었다. 한내읍에 닿았을 땐 이미 세시도 겨워, 머잖아 해거름을 만나게 될 그런 어름이었다. (발단부)

* 감상 : 화자가 직접 자신의 성장과정을 말하고 있는 수필 같은 소설이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 와 1인칭 독백체의 문체는 작품 전체를 훈훈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소 외, 갈등, 농촌의 어려움 그리고 그 해체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 아보게 하는 동시에 삶의 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 배경 : 6.25직후 충청도 관촌(갈머리) 마을

* 시점 : 1인칭 주인공

* 성격 : 자전적, 회고적, 순수 소설

* 전체 내용 : 8편의 연작 소설 형태

① 일락서산(日落西山) : 나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할아버지와 옛날 어린 시절 고향 풍경을 향수조로 엮음

② 화무십일(花無十日) : 6·25전쟁을 통한 윤영감 일가의 수난사, 비극적 관계를 회상

③ 행운유수(行雲流水) : 성장기에 함께 했던 옹점이의 결혼 생활, 인생유전을 가슴 아프게 그 림

④ 녹수청산(綠水靑山) : 대복이와 그 가족에 얽힌 이웃 이야기 그리고 그 삶이 퇴색되어 가는 과정을 그림

⑤ 공산토월(空山吐月) : 왕조 체제의 억압적 구조 속에 신음하면서도 서로 돕던 백성의 전형 을 석공(石工)을 통해 보여 줌

⑥ 관산추정(關山芻丁) : 포근하던 한내(大川)가 도시에서 밀려들어온 소비문화와 퇴폐의 하수 구로 전락한 실상을 그림

⑦ 여요주서(與謠註序) :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잡은 꿩 때문에 자연보호를 위배했다는 이유 로 공권력의 횡포를 당함

⑧ 월곡후야(月谷後夜) : 벽촌에서 소녀를 겁탈한 사건을 둘러싸고 동네 청년들이 범인에게 사 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이야기

* 의의 : 농촌 문제를 비교적 사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여유있고 걸쭉한 입담과 해학으로 접 근한 농민소설의 전범

* 주제 : 따뜻한 공동체적 삶의 파괴, 농촌의 어려움

* 출전 : [현대문학](1972~1977)

  70년대 소설 : 고도 산업화 정책과 그로 인한 노동자 집단의 빈곤, 농촌의 피폐

---  황석영 <객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이문구의 <관촌수필>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 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고, 뒷산 등성이 솔수펑 속에서는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쇄쇗 쇄쇗…. 머리 위에서는 이따금 기러기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컸으며, 낄룩― 하는 기러기 울음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이문구(55)씨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은 우리네 마음자리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한국적 유토피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것은 사실 유토피아니 무릉도원이니 하는 외국에서 들어온 언어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한민족의 정서로써만 표현과 이해가 가능한 정복(淨福)의 두레공동체일 터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어른의 코골음과 부엉이의 울음과 강아지의 꿈꾸기가 서로 넘나들며 뒤섞인다.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고 어우러지는 원융과 합일의 시공간이 그곳이다.

<관촌수필>이 추억하는 풍요와 화평의 세계는 작가의 토속적인 문체에 얹혀 광휘와 윤기를 더한다. 멸종 위기의 동식물을 보호하고 번식시키는 환경운동가처럼 작가는 겨레의 말글살이에서 잊히고 묻히게 된 순우리말과 한자어를 적극 살려내고 있다. 게다가 토종 된장국과 같은 능청과 해학, 그리고 씀바귀나물처럼 싸름한 비애와 아픔은 한국적 감성의 현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관촌수필>이 그리고 있는 한국적 유토피아의 원형은 그러나 6․25라는 미증유의 비극으로 처참하게 찢긴다. 특히 작가의 분신인 <민구> 일가는 아마도 전쟁의 발톱에 가장 혹독하게 할퀴인 집안일 것이다. 남로당 충남 보령군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인근 청양과 서천의 지하당을 조직, 관할하던 민구의 아버지는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며, 겹의 참척을 본 조부마저 자식들의 뒤를 따르자 집안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작가는 그러나 사태난 죽음들의 구체적 사연을 시시콜콜 주워섬기지는 않는다. 소설의 초점은 그것들을 보듬고 흐르는 일상에 맞추어져 있다.

 

󰡒숭헌… 뉘라 양력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歲歷)을 아는 벱여….󰡓 혀를 끌끌 차는 마지막 이조인(李朝人) 할아버지에게서 아침마다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우고, 낮이면 펄밭을 뒤져 꽃게를 잡고 고둥을 주우며, 아이다운 장난기와 심술로 장에 온 촌사람들을 놀려 먹기도 하고, 밤이면 개펄 위를 몰려다니는 도깨비불에 마음 졸이다가도, 잠결에 어렴풋이 들리는 여우울음에 홀린 듯 어슴새벽 바닷가로 나가 보는 것이 그 일상이었거니와, 전쟁은 그 가난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근본부터 뒤흔들어놓고 만다.

 

가령, 읍내 여관의 종업원으로 취직한 월남 피난민 솔이엄마는 장돌뱅이 서울 사내와 눈이 맞아 핏덩이를 데리고 밤도망을 놓는다. 그 충격으로 솔이아버지가 목 매달아 자살하고, 두 노인네는 며느리보다는 집안의 대를 이을 손주를 찾을 겸하여 떠돌이 장수로 나선 것은 전쟁이 부린 도깨비 심술의 전형적인 사례로 된다.

 

전쟁이 바꾸어버린 팔자의 주인으로 민구네 집 부엌데기 <옹점이>를 빼놓을 수 없다. 덜렁대기는 하지만 당차고 속이 깊은 데다 인정 많고 쾌활했던 옹점이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에 나간 남편이 죽자 시집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장터의 약장수 패거리를 따라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신세로 영락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결혼하기 전 아궁이 앞에 주저앉아 부지깽이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부를 때 옹점이는 자신의 운명이 노랫말이 가리키는 길을 따르게 되리라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내 살과 뼈가 여문 마을이었건만, 옛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옛모습으로 남아난 것이 저토록 귀할 수 있을까.󰡓

 

1972년에서 77년까지 발표된 <관촌수필> 연작의 첫편인 `일락서산(日落西山)'의 한 대목에서 작가는 이렇게 탄식한다. 소설의 배경인 작가의 유년기에서 20년이 지나서의 일이다. 거기서 다시 20여 성상이 흘러가버린 90년대 중반의 관촌마을은 앞서의 탄식조차도 사치가 아니면 엄살로 들릴 정도로 변화의 거센 바람에 하릴없이 노출된 모습이다.

 

95년부터 보령군과 합쳐져 보령시로 불리는 옛 대천시 중심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관촌부락은 이름마저 대관동으로 바뀌어 있다. 작가의 생가 터에는 오래 전에 2층 양옥이 올라갔고, 주변의 논과 밭 자리에도 다닥다닥 집들이 들어서 있다. 돌과 흙을 이겨 쌓은 생가 터의 축담 일부, 그 너머의 낮게 휘어진 소나무와 문전옥답 옆의 은행나무가 유년기의 기억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북두칠성을 닮았다 해서 이름붙은 집 뒤의 칠성바위는 소설이 쓰여질 당시만 해도 󰡒한결같이 옛날 그대로 제자리들을 지키고 있었󰡓지만, 근처에 집들이 마구잡이로 지어지던 어느땐가 사라져 없어졌다. 작가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바위들은 고인돌이었던 듯하다󰡓며 󰡒아마도 깨뜨려져 건축 자재로 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무엇보다 안타까워하는 것은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았던 수령 4백년 된 팽나무가 베어진 것이다. 작가의 유년기에 동네 처녀들이 그네를 매달아 구르곤 했던 팽나무는 그 자리에 한창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에 밀려 쓰러졌다. 95년 가을 마을 입구에 세워진 <관촌수필> 안내비의󰡒서쪽 언덕 위의 마을 처녀들이 그네를 뛰던 팽나무는 아직 남아 있다󰡓는 명문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마을 뒷편의 부엉재와 그 아래의 솔수펑은 여전하지만, 마을과 바다 사이에 자리잡은 드넓은 개펄은 바둑판 모양의 농토로 바뀌었고 그중 일부는 다시 운전연습장이니 식당이니로 야금야금 변신하는 중이다.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70년대 초․중반에 남로당 아버지의 얘기를 소설로 쓴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세월은 변함없이 흘러 지난 93년에는 <관촌수필>이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 방송되기도 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 있는 대천․보령 지역에서 드라마가 일대 화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화제와 소란 속에서 작가 역시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 하나를 품어보았다. 소설 속 민구의 첫사랑이었던 옹점이가 드라마를 보고 혹 연락을 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숱한 방랑과 고생 끝에 일찍 죽은 거나 아닌지…󰡓라며 말끝을 흐리는 작가의 눈에 얼핏 물기가 서렸다.

 


●광염소나타(狂炎소나타) : 김동인 단편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사건 : 백성수는 약값을 구하기 위해 담배 가게에서 도둑질 하다가 잡혀 감옥으로 가고, 어머니 는 그 사이 죽는다. 출옥 후 담배 가게에 방화(放火)를 하고 나서 흥분한 상태에서 무의식 중 에 작곡을 한다. 그러다가 K씨를 만나 본격적인 작곡을 하나, 범죄적인 파괴적 행위에서만 악 상을 찾아낸다. 결국 파괴적 행위는 자신을 파멸시킨다.

* 등장인물

· 백성수 : 천재적 음악성을 지니고 있으나 작곡의 동기를 얻는 방법이 광기(狂氣)에서 비롯되 어 결국 파멸에 이르는 인물

· K씨 : 백성수의 후견인 노릇을 하는 음악 평론가. 백성수의 천재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은연 중 백성수를 사주(使嗾)한다.

· 사회교화자 모씨 : K씨의 대담 상대 역할. 윤리 도덕을 앞세우는 사람의 대표이다.

* 배경 :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 받지 않는 몇 십년 후의 지구상의 어느 곳.

* 주제 : 예술 창조의 욕구와 인간성의 희생

---  소설 <광화사(狂畵師)>

 


●광장(廣場) : 최인훈 중(장)편, 사회소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꼭히 들어찬 동 지나(支那)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

석방 포로 이명준(李明俊)은, 오른편에 곧장 갑판으로 통한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 배 뒷쪽 난간에 가서, 거기 기대어 선다.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댔으나바람에 이내 꺼지고 하여, ········· (발단부)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 가는 것. 그러나 과연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 갸륵하게져 ? 아무튼 잘난 멋을 가진 사람들 몫으로 그런 짜리도 셈에 넣는다 치더라도 누구든지는 것만은 떼어 놨다. 나는 영웅이 싫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좋다. 내 이름도 물리고 싶다. 수억 마리 사람 중의 이름없는 한 마리면 된다.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손에 딱딱한 물건이 잡힌다. 부채다. 문간에서 기척이 난다.

얼른 돌아다보았으나, 아무도 나타나지는 않는다. 되도록 천천히 다락에서 내려와, 마루에 내려선다. 무슨 할 일이 없는가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린다. 방 안에 새삼스레 그의 주의를 끌 만한 것은 없다. 발 끝으로 살살 밀어서 유리 조각을 한 곳으로 모으고, 꽉 밟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더 힘 있게 밟는다. 그만한 힘으로 발바닥을 올려 밀 뿐, 유리는 바스러질 대로 바스러진 모양인지, 꿈쩍도 않는다. 복도로 나선다. 복도에도 인기척은 없다. 선장실로 올라간다. 선장은 없다. 벽장문을 연다, 총이 제 자리에 세워져 있다. 벽장문을 닫는다. 서랍을 열고, 아까 선장이 들어오는 바람에 미처 돌려 놓지 못한 총알을 제 자리에 놓는다. 몹시 중요한 일을 마친 사람처럼, 홀가분해진다. 테이블로 가서 해도를 들여다본다. 이 배가 밟아 온 자국이 연필로 그려져 있다. 선장이하는 것처럼 컴퍼스를 손가락으로 꼬나잡고, 해도 위를 재 보는 시늉을 한다. 한참 장난을 하다가 컴퍼스를 던져 버린다. 그 때 여태까지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안다.

아까, 침대에서 손에 잡힌 대로, 들고 온 것이다. 의자에 걸터앉아서 부채를 쭉 편다.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머릿속으로 허허한 벌판이 끝없이 열리며, 희미한 모습이 해돋이처럼 차츰 떠올라 온다.

 

··········펼쳐진 부채가 있다.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철학과 학생 이명준이 걸어간다. 가을이다. 겨드랑이에 긴 대학 신문을 꺼내 들여다본다. 약간 자랑스러운 듯이. 여자를 깔보지는 않아도, 알 수 없는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책을 모으고, 미라를 구경하러 다닌다.

 

정치는 경멸하고 있다. 그 경멸이 실은 강한 관심과 아버지 일 때문에 그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인 줄은 모르고 있다. 다음에, 부채의 안쪽 좀더 좁은 너비에, 바다가 보이는 분지가 있다. 거기서 보면 갈매기가 날고 있다. 윤애에게 말하고 있다. 윤애 날 믿어 줘. 알몸으로 날 믿어 줘, 고기 썩는 냄내가 역한 배 안에서 물결에 흔들리다가 깜빡 잠든 사이에, 유토피아의 꿈을 꾸고 있는 그 자신이 있다, 조선인 콜호즈 숙소의 창에서 불타는 저녁놀의 힘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그도 있다. 구겨진 바바리 코트 속에 시래기처럼 바랜 심장을 안고 은혜가 기다리는 하숙으로 돌아가고 있는 9월의 어느 저녁이 있다. 도어에 뒤통수를 부딪치면서 악마도 되지 못한 자기를 언제까지나 웃고 있는 그가 있다. 그의 삶의 터는 부채꼴, 넓은 데서 점점 안으로 오므라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둘이 안고 뒹굴던 동굴이 그 부채꼴 위에 있다.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어디선가 그런 소리도 들렸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 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골라잡다니 ! 모든 일이 잘될 터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 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돌아서서 마스트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 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 상징적 의미

· 광장 : 사회 중심적인 세계. 개인적 존재 가치가 침해되기도 함

· 동굴 : 자기 중심적인 세계. 타인의 간섭을 안 받는 개인적 세계

* 주제 : 남북 분단의 이념적 갈등 속에서 이상과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 최인훈 <광장> 초판 서문 ---  <운명론> 중  <광장>

 

󰏐 사랑의 재확인 - [광장] 개작에 대하여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본다. 그것을 [새벽] 잡지에서 처음 읽었을 때의감동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장용학(張龍鶴)의 지나치게 고압적인 관념어들과 손창섭(孫昌涉)류의 밑바닥 삶, 그렇지 않으면 초기 김동리(金東里)의 토속적인 세계에 식상(食傷)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지적으로 충분히 세련된 문체로,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최인훈이라는 작가와 첫대면을 한 셈인데, 그 후에 읽게된 [가면고(假面考)], [구운몽(九雲夢)], [회색인(灰色人)] 등은 그를 전후 최대의 작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960년 10월 [새벽]에 발표된 광장은 원고 매수로 약 600장에 이르는 중편이었는데, 그것을 단행본으로 내면서, 거기에 약 200여장을 더 붙였고, 그것이 소위 [광장]의 원형을 이룬다. 그것은 또한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된 [현대한국문학전집]에 실릴 때 다시 섬세한 교정을 더하며, 또한 민음사에서 발행한 [광장]에서는 상당량 수정을 가한다. (중략)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최인훈의 <광장>

역사의 폐허 위로 비가 내린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쟁의 종결과 함께 용도폐기된, 그리하여 이제는 다만 아픈 기억의 처소로서만 남아 있는 이 시멘트 구조물의 잔해들은 5월의 비에 속절없이 젖고 있다. 비는 내려서, 지붕 없는 경비대장 막사의 채색 벽화를 적시고, 무도장의 시멘트 바닥을 흐르다가 틈새를 만나서는 슬쩍 스며들기도 하고, 채 스미지 못한 것들은 경비중대본부의 바닥에 처연히 고여 있기도 하다. 비는 내린다. 40년 저쪽의 먹빛 구름으로부터 막막한 세월의 허공을 가르며 내려와 시멘트로 굳어버린 기억의 땅을 두드린다. 비는 내린다. 땅은 젖는다. 풀은 자란다.

 

-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 중립국.󰡓(…)

-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 중립국.(…)

-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북한 생활과 포로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 중립국

 

전쟁은 끝났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서 밀고 내려온 인민군에 의해 시작된 한국전쟁은 북조선과 유엔 사이에 체결된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1953년 7월27일을 기해 무기한 휴지에 들어갔다. 그와 함께 남북 양쪽은 전쟁기간 동안 잡아두고 있던 포로들을 교환했다. 교환하되 포로들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남과 북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했다. 그러나 남이 아니면 북, 북이 아니면 남이라는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나라를 택한 이들이 있었다. 최인훈(60)씨의 소설 <광장>에서 인용한 위의 대목은 판문점에서 있었던 송환심사에 나간 주인공 이명준이 공산군 장교와 나눈, 그리고 국군 장교와 나누는 것으로 상상하는 대화의 일부이다.

 

이명준은 왜 중립국을 택했나? 그에게 중립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꿔 말해서 그에게 남과 북은 무엇이었나를 묻는 일이며, 문제적 소설 <광장>의 주제를 응축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해방된 조국의 남쪽에서 대학을 다니던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방송 시간에 나온 일로 해서 경찰서에 불려가 고문을 당한 뒤 떠밀리듯 월북을 감행한다. 그러나 (󰡒명준이 북녘에서 만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인민의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그곳에서 정작 인민들은 가슴 편 주인이기는커녕 주눅든 양떼에 지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와 인간적 존엄성을 짓밟는 남한과 인민대중에게서 역사의 주체 자리를 빼앗은 북조선. 20세기 중반 한반도의 남과 북에 나타난 이 못난이 형제들에 관한 작가의 비판적 사유는 밀실과 광장이라는 독특한 비유에 얹혀 전개된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은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광장을 찾아 월북했지만 그곳에서도 꿈꾸던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 명준은 대신 무용수 은혜를 만나 그 여자의 다리를 베고 눕는 것으로 절망과 허무를 이기고자 한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이 잔잔한 느낌만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이 다리를 위해서라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모든 소비에트를 팔기라도 하리라.󰡓

 

은혜가 모스크바 공연을 떠난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명준은 전세가 기울어가는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 스스로 명분을 찾지 못하는 전쟁에 회의하던 명준은 그곳에서 우연히 간호병으로 나온 은혜와 재회하며 두사람은 남들의 눈을 피해 절망적인 사랑을 불태운다.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라던 명준은, 그 은혜마저 뱃속에 새 생명을 품은 채 전사하고 말자 더이상 버틸 힘을 잃는다. 그가 인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남지나해의 검은 물 속으로 뛰어든 것은 그 때문이다. 명준이 탄 배를 좇아온 두 마리 갈매기에 촉발된 그 투신은 그러나 죽음에의 투항이 아니라 사랑에의 귀의로 승화된다.

 

-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 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 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4․19가 일어난 지 6개월 뒤인 1960년 10월에 발표된 <광장>은 4월혁명의 문학적 적자라 이를 만했다. 동리 류의 무시간적 토속성이 아니면 장용학의 관념과잉, 또는 손창섭의 자연주의적 현실비판의 지배 아래 있던 당시 소설 풍토에서 지적 깊이와 세련된 감각을 아울러 갖춘 <광장>의 출현은 문학에서의 4월혁명과도 같았다. 무엇보다도 북진통일론만을 인정하던 지배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 남과 북의 체제를 비교적 공정하고도 객관적으로 평가한 대목은 `혁명'이 열어놓은 자유의 숨구멍으로 해서 가능했었다. 물론, 작가가 밀실과 광장이라는 개념을 먼저 상정한 다음 남과 북의 현실을 그에 꿰어맞추었다는 식의 비판으로부터 무한정 자유롭지는 않지만, <광장>이 거둔 성과는 그같은 비판의 날을 한결 무디게 한다. 

 

전쟁이 끝난 지 43년. 거제도에는 포로들의 경비를 맡았던 국군과 미군의 경비막사와 보급창고, 탄약고 따위의 흔적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을 뿐 애초에 천막으로 지어졌던 수용소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주민들이 살던 집과 논밭을 징발해 수천 개의 천막을 세웠던 자리에는 전보다 더많은 주택과 건물이 논밭을 거느리고 들어서 있다.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의 경비막사 등 유적 옆에 지난 93년 콘센트로 세워진 `거제포로수용소유적관'이 당시의 유물과 사진 등을 보여주지만, 하루 평균 8백여명에 이른다는 관람객의 숫자를 생각하면 초라하기만 한 규모다. 자욱한 비안개에 감싸인 고현항을 부산행 쾌속선 엔젤호에 실려 떠나온다. 이명준의 천사는 말할 것도 없이 은혜와 그의 딸이었다. 두 마리의 갈매기로 환생한 그 천사들이 인도행 타고르호의 선상에서 명준의 몸뚱이를, 그의 파산한 관념을, 역사와 민족에 대한 가없는 절망을, 한반도적 실존의 버거움을 저 남지나해의 아득깜깜한 심연 속으로 끌어내렸으리라. 역사의 미아 이명준. 그는 그 깊은 바닷속에서 그가 꿈꾸던 세상을 발견했을까. 밀실을 허락하는 광장, 그리고 광장을 향해 열려 있는 밀실을 찾았을까. 아니, 그는 그렇다 치고 정작 뒤에 남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밀실인가 광장인가. 그것은 혹 성욕뿐의 밀실과 싸구려 쇼의 무대만도 못한 광장으로 양극화한 것은 아닐까.

 


●광화사(狂畵師) : 김동인 단편 소설

 

인왕(仁王)

바위 위에 잔솔이 서고 잔솔 아래는 이끼가 빛을 자랑한다.

굽어보니 바위 아래는 몇 포기 난초가 노란 꽃을 벌리고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잔바람에 너울거리는 난초잎.

여(余)는 허리를 굽히고 스틱으로 아래를 휘저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난초에는 4,5축의 거리가 있다. 눈을 옮기면 계곡.

전면이 소나무의 잎으로 덮인 계곡이다. 틈틈이는 철색(鐵色)의 바위로 보이기는 하나, 나무밑의 땅은 볼 길이 없다. 만약 여로서 그 자리에 한 번 넘어지면 소나무의 잎 위로 굴러서 저편 어디인지 모를 골짜기까지 떨어질 듯하다.

여의 등뒤에도 2,3장(丈)이 넘는 바위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무학(舞鶴)재로 통한 커다란 골짜기가 나타날 것이다. 여의 발아래도 장여(丈餘)의 바위다. 아래는 몇 포기 난초, 또 그 아래는 두세 그루의 잔솔, 바위 아래로부터는 가파른 계곡이다.

 

그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소나무 위로 비로소 경성시가의 한편 모퉁이가 보인다. 길에는 자동차의 왕래도 가맣게 보이기는 한다. 여전한 분요(紛擾)와 소란의 세계는 그곳에 역시 전개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지금 서 있는 곳은 심산이다. 심산이 가져야 할 온갖 조건을 구비하였다.

바람이 있고, 암굴이 있고, 산초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생물이 있고, 절벽이 있고, 난송(亂松)이 있고― 말하자면 심산이 가져야 할 유수미(幽邃味)를 다 구비하였다.

본시는 이 도회는 심산 중의 한 계곡이었다. 그것을 5백년간을 닦고, 갈고, 지어서 오늘날의 경성부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협곡에 국도(國都)를 창건한 이태조의 본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 산보객의 자리에서 보자면 서울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미도(美都)일 것이다.

도회에 거주하며 식후의 산보로서 푸대님 채로 이러한 유수(幽邃)한 심산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점으로 보아서 서울에 비길 도회가 세계에 어디 다시 있으랴.

회흑색(灰黑色)의 지붕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5백년의 도시를 눈아래 굽어보는 여의 사위에는 온갖 고산식물이 난성(亂盛)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눈아래 날아드는 기조(奇鳥)들은 완전히 여로 하여금 등산객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 배경 : 시간-조선 세종, 공간-한양의 백악(인왕산)

* 경향 : 유미주의적, 예술지상주의

* 형식 : 액자소설

▲ 외부이야기(1인칭주인공)-----여(余)-------현재---사실

“인왕산에 산보를 나온 여가 공상에 잠겨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 내부이야기(전지적작가)---화공의 이야기---과거---상상

 

① 화가 솔거의 외모(추함)

② 눈 먼 처녀를 신비로운 눈빛을 보고 미인도의 모델이라 생각함

③ 그림에서 눈동자만 남겨 놓은 채 그날 밤 부부의 인연을 맺음

④ 다음 날 완성하려고 했으나 다음 날 아침의 소경의 눈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⑤ 소경의 멱을 잡고 흔들다가 죽이게 되는데, 순간 먹물이 튀어 미인도의 눈동자가 완성 된다.

⑥ 그러나 미인도의 눈동자에는 원망의 빛이 서려 있었다.

⑦ 솔거는 미쳐서 미인도를 품고 다니다가 쓸쓸히 죽는다.

* 주제 : 한 화가의 일생을 통해 나타난 세속(현실)과 이상(예술)의 괴리.

* 출전 : [야담](1935) 발표작


 

●구운몽(九雲夢) :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소설

 

성진이 왕의 괴로이 권함을 벙으리왇지 못하여, 연하여 세 잔을 먹고 용왕께 하직하고 바람을 타고 연화봉으로 돌아올새, 뫼 아래 이르러서는 스스로 깨달으니, 술 기운이 올라 낯이 달호이거늘, 마음에 생각하되, ‘만일 낯이 붉으면 사뷔(師父ㅣ) 괴이히 여겨 책(責)치 아니하리요?’ 하고, 즉시 냇물에 나아가 낯을 씻더니, 홀연 기이한 내 코를 거스려 향로 기운도 아니요, 화초 향내도 아니로되, 사람의 골 속에 사무쳐 정신이 진탕(震盪)하여 가히 형언치 못할러라. 성진이 생각하되 ‘이 물 상류에 무슨 꽃이 피었관대 이런 이향(異香)이 물에 품겼는고?’

다시 의복을 정제히 하고 물을 좇아 올라 가더니, 이 때에 팔 선녜(八仙女ㅣ) 오히려 석교(石橋) 위에서 말하는지라. 정히 성진으로 더불어 서로 만나니, 성진이 석장(錫杖)을 놓고 예(禮)하여 가로되,

“여보살(女菩薩)아, 빈승(貧僧)은 연화도장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로서, 스승의 명을 받아 산하(山下)에 나갔다가 장차 절로 돌아가더니, 석교(石橋ㅣ) 심히 좁고 여보살이 교상(橋上-다리위)에 앉았으니, 사나이와 계집이 길을 분변(分辨)치 못하게 되니, 잠깐 연보(蓮步)를 움직여 길을 빌리고자 하나이다.’

팔선녜 답례하고 이르되,

“우리는 위부인 낭랑 시녜(侍女ㅣ)러니, 부인 명을 이어 대사께 문안하고 돌아가더니, 첩(妾) 등은 들으니 ‘도로의 남자는 왼녘으로 말미암고, 부녀는 오른편으로 행한다.’하니, 이 다리 심히 좁고 첩 등이 이미 바랐으니, 도인의 말미암음이 심히 마땅ㅎ지 아니니, 청ㅎ건대 다른 길로 행하소서.”

성진이 가로되 “냇물이 깊고 다른 다리 없으니, 빈승으로 하여금 어느 길로 좇으라 하시나뇨?”

선녜(仙女ㅣ) 가로되,

“옛 달마 존자(達磨尊者)는 갈잎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하니, 화상이 육관대사에게 도를 배웠으면 반드시 신통이 있을 것이니 이런 작은 냇물을 건너지 못하여 아녀자와 길을 다투시나뇨?”

성진이 웃고 대답하되,

“낭자의 뜻을 보니 행인에게 길 사는 돈을 받고자 하는 도다. 가난한 중에게 어이 금전이 있으리? 마침 명주(明珠) 여덟 낱이 있더니, 이제 낭자께 드려 길을 사고자 하나이다.”

손을 들어 도화(桃花) 한 가지를 꺾어 모든 선녀의 앞에 던지니, 여덟 봉오리 땅에 떨어져 화하여 명쥐(明珠ㅣ) 되거늘, 팔 인이 각각 주워 손에 쥐고 성진을 돌아보며 찬연(燦然)히 한 번 웃고 몸을 솟아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니 성진이 석교 위에 오래 있어 선녀의 가는 곳을 바라보더니, 구름 그림재 사라지고 향기로운 바람이 진정하거늘, 바야흐로 석교를 떠나 스승을 가 뵈니, 늦게야 옴을 묻거늘, 대답하되,

“용왕이 관대(款待-정성껏 대우함)하고 만류하니, 능히 떨치고 일어나지 못할러이다.”

대사, “물러가 쉬라.” 하거늘, 저 있던 선방(禪房)에 돌아오니 날이 이미 어두웠더라. 성진이 여덟 선녀를 본 후에 정신이 자못 황홀하여 마음에 생각하되 ‘남애(男兒ㅣ) 세상에 나 어려서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면 장쉬(將帥ㅣ) 되고 들면 정승이 되어 비단 옷을 입고 옥대(玉帶)를 띠고 옥궐(玉闕)에 조회(朝會)하고 눈에 고운 빛을 보고 귀에 좋은 소리를 듣고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미치고 공명(功名)이 후세에 드리움이 또한 대장부의 일이라. 우리 부처의 법문(法門)은 한 바리의 밥과 한 병의 물과 두어 권 경문(經文)과 일백 여덟 낱 염주 뿐이라. 도덕이 비록 높고 아름다우나 적막(寂寞)하기 심하도다.’ 생각을 이리하고 저리하여 밤이 이미 깊었더니, 문득 눈 앞에 팔 선녀 섰거늘, 놀라 고쳐 보니 이미 간 곳이 없더라. 성진이 마음에 뉘우쳐 생각하되, ‘부처 공부에 유로 뜻을 바르게 함이 으뜸 행실이라. 내 출가한 지 십 년에 일찍이 반점(半點) 어기고 구차(苟且)한 마음을 먹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이렇듯이 염려를 그릇하면 어찌 나의 전정(前程)에 해롭지 아니하리요.’ 향로에 전단(栴檀)을 다시 피우고 의연히 포단(蒲團)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어 염주를 고르며 일천 부처를 염하더라.

* 상징적 의미

· 석교(石橋)의 의미 : 성진과 팔 선녀가 길을 다투게 만듦으로써 서로간에 피치못할 수작(酬 酌)을 나누게 만드는 장치로서, 결국 이 일로 인해 인간 세상으로 추방 당하게 됨

· 명주(明珠, 맑은 구슬)의 의미 : 도화(桃花)로 만든 구슬은 팔 선녀가 지니고 돌아가 나중에 인간 세계에 구슬을 계기로 만나게 되는 복선(伏線)으로서 작용함

 

󰏐 [제16장] 양승상등고망원(楊丞相登高望遠) 진상인반본환원(眞上人返本還元)

 

승상(丞相)이 성은(聖恩)을 감격하여 고두사은(叩頭謝恩)하고 거가(擧家)하여 취미궁(翠媚宮)으로 옮아가니, 이 집이 종남산 가운데 있으되, 누대의 장려(壯麗)함과 경개(景槪)의 기절(奇絶)함이 완연(宛然)히 봉래 선경(仙境)이니, 왕 학사의 시에 가로되, “신선의 집이 별로 이에서 낫지 못할 것이니, 무슨 일 퉁소를 불고 푸른 하늘로 향하리오?”하니, 이 한 글귀로 가히 경개를 알리러라.

// 취미궁에서의 생활과 아름다운 경개

 

승상이 정전(正殿)을 비워 조서(詔書)와 어제(御製) 시문(詩文)을 봉안(奉安)하고 그 남은 누각대사(樓閣臺榭)에는 제 낭자가 나눠 들고 날마다 승상을 모셔 물을 임(臨)하며 매화(梅花)를 찾고 시를 지어 구름 끼인 바위에 쓰며, 거문고를 타 솔바람을 화답(和答)하니, 청한(淸閑)한 복(福)이 더욱 사람을 부뤄할 배러라.

// 승상과 제 낭자의 삶

 

승상이 한가한 곳에 나아간 지 또한 여러 해 지났더니, 팔월(八月) 염간(念間)은 승상 생일이라. 모든 자녀 다 모다 십 일을 연(連)하여 설연(設宴)하니 번화성만(繁華盛滿)함이 예도 듣지 못할러라. 잔치를 파(破)하고 제자(諸子)가 각각 흩어진 후 문득 구추가절(九秋佳節)이 다다르니 국화(菊花) 봉오리 누르고 수유 열매가 붉었으니 정히 등고(登高)할 때라. 취미궁 서녘에 높은 대(臺) 있으니, 그 위에 오르면, 팔백 리(里) 진천(秦川)을 손바닥 금 보듯이하여 가린 것이 없으니, 승상이 가장 자랑하는 땅이러라.

// 승상의 생일 잔치

이 날, 양 부인과 육 낭자를 데리고 대에 올라 머리에 국화를 꽂고 추경(秋景)을 희롱할 새 입에 팔진(八珍)이 염오(厭惡)하고 귀에 관현(管絃)이 슬민지라. 다만 춘운으로 하여금 과합(果盒)을 붙들고 섬월로 옥호(玉壺)를 이끌며 국화주를 가득 부어 처첩(妻妾)이 차례로 헌수(獻壽)하더니, 이윽고 비낀 날이 곤명지(昆明池)에 돌아지고 구름 그림자 진천(秦川)에 떨어지니, 눈을 들어 한 번 보니 가을빛이 창망(滄茫)하더라.

// 승상의 등고

 

승상이 스스로 옥소(玉簫)를 잡아 두어 소리를 부니 오오열열(嗚嗚咽咽)하여 원(怨)하는 듯하고, 우는 듯하고, 고할 듯하고, 형경(荊卿)이 역수(易水)를 건널 적 점리(漸離)를 이별하는 듯, 패왕(覇王)이 장중(帳中)에 우희(虞姬)를 돌아보는 듯하니, 모든 미인이 처연(凄然)하여 슬픈 빛이 많더라. 양 부인이 옷깃을 여미고 물러 가로되,

“승상이 공을 이미 이루고 부귀 극(極)하여 만인(萬人)이 부뤄하고 천고(千古)에 듣지 못한 배라. 가신(佳辰)을 당하여 풍경을 희롱(戱弄)하며 꽃다운 술은 잔에 가득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이 또한 인생(人生)의 즐거운 일이어늘, 퉁소소리 이러하니 오늘 퉁소는 옛날 퉁소가 아니로소이다.

// 승상의 구슬픈 퉁소 연주

 

승상이 옥소를 던지고 부인 낭자를 불러 난단(欄端)을 의지하고 손을 들어 두루 가리키며 가로되,

“북(北)으로 바라보니 평(平)한 들과 무너진 언덕에 석양이 쇠한 풀에 비치었는곳은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이요, 서(西)로 바라보니 슬픈 바람이 찬 수풀에 불고 저문 구름이 빈 뫼에 덮은 데는 한 무제의 무릉(茂陵)이요, 동(東)으로 바라보니 분칠(粉漆)한 성(城)이 청산(靑山)을 둘렀고 붉은 박공(牔栱)이반공(半空)에 숨었는데, 명월은 오락가락하되 옥난간을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현종 황제가 태진비(太眞妃)로 더불어 노시던 화청궁(華淸宮)이라. 이 세임금은 천고 영웅(英雄)이라.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억조(億兆)로 신첩(臣妾)을 삼아 호화 부귀 백 년을 짧게 여기더니 이제 다 어니 있나뇨?”

// 승상의 회의(懷疑), 갈등(葛藤)

 

소유는 본디 하남 땅 베옷 입은 선비라. 성천자(聖天子) 은혜를 입어 벼슬이 장상(將相)에 이르고, 제 낭자 서로 좇아 은정(恩情)이 백 년이 하루 같으니, 만일 전생 숙연(宿緣)으로 모두 인연(因緣)이 진(盡)하면 각각 돌아감은 천지에 떳떳한 일이라. 우리 백 년 후 높은 대 무너지고, 굽은 못이 이미 메이고, 가무(歌舞)하던 땅이 이미 변하여 거친 뫼와 쇠(衰)한 풀이 되었는데, 초부(樵夫)와 목동(牧童)이 오르내리며 탄식하여 가로되, “이것이 양 승상의 제 낭 자로 더불어 놀던 곳이라. 승상의 부귀 풍류와 제 낭자의 옥용화태(玉容花態) 이제 어디 갔나뇨.”하리니 어이 인생이 덧없지 아니리요?

// 인생무상을 느끼는 승상

 

내 생각하니 천하에 유도(儒道)와 선도(仙道)와 불도(佛道)가 유(類)에 높으니 이론 삼교라. 유도는 생전(生前) 사업과 신후유명(身後留名)할 뿐이요, 신선(神仙)은 예부터 구하여 얻은 자가 드무니, 진 시황, 한 무제, 현종제를 볼 것이라. 내 치사(致仕)한 후로부터 밤에 잠 곧 들면 매양 포단(蒲團) 위에서 참선하여 뵈니 이 필연 불가로 더불어 인연이 있는지라. 내 장차 장자방(張子房)의 적송자(赤松子) 좇음을 효칙(效則)하여 집을 버리고 스승을 구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觀音)을 찾고, 오대(五臺)에 올라 문수(文殊)께 예를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할 도를 얻어 진세(塵世)고락(苦樂)을 뛰어나려 하되 제낭자로 더불어 반생을 좇았다가 일조(一朝)에 이별하려 하니 슬픈 마음이 자연 곡조(曲調)에 나타남이로소이다.

// 승상의 출가(出家) 결심

 

제 낭자는 다 전생이 근본이 있는 사람이라. 또한 세속 인연이 지낼 때니 이 말을 듣고 자연 감동하여 이르되,

“부귀 번화 중 이렇듯 청정(淸淨)한 마음을 내시니 장자방을 어이 족히 이르리요? 첩 등 자매 팔 인이 당당히 심규(深閨) 중에서 분향(焚香) 예불하여상공 돌아오시기를 기다릴 것이니, 상공이 이번 행하시매 벅벅이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을 만나 큰 도를 얻으리니 득도(得道)한 후에 부디 첩 등을 먼저 제도(濟度)하소서.”

승상이 대희(大喜) 왈,

“우리 구 인이 뜻이 같으니 괘사(快事)라. 내 명일(明日)로 당당히 행할 것이니 금일(今日)은 제 낭자로 더불어 진취(盡醉)하리라.”하더라,

제 낭자 왈,

“첩 등이 각각이 일배를 받들어 상공을 전송하리이다.”

// 팔 낭자의 동의, 전송 ( 내적 갈 등의 해소 )

 

잔을 씻어 다시 부으려 하니 홀연(忽然) 석양(夕陽)에 막대 던지는 소리가 나거늘 고이히 여겨 생각하되 어떤 사람이 올라오는고 하더니, 한 호승(胡僧)이 눈썹이 길고 눈이 맑고 얼굴이 고이하더라. 엄연(儼然)히 좌상(座上)에 이르러 승상을 보고 예하여 왈,

“산야(山野) 사람이 대승상께 뵈나이다.”

승상이 이인(異人)인 줄 알고 황망(慌忙)히 답례 왈,

“사부(師父)는 어디로서 오신고?”

호승이 소왈(笑曰)

“평생 고인(故人)을 몰라 보시니 귀인(貴人)이 잊음 헐탄 말이 옳도소이다.”

승상이 다시 보니 과연 낯이 익은 듯하거늘, 홀연 깨쳐 능파 낭자를 돌아보며 왈,

“소유, 전일 토번을 정벌할 제 꿈에 동정 용궁에 가 잔치하고 돌아올 길에 남악에 가보니, 한 화상(和尙)이 법좌(法座)에 앉아서 경(經)을 강론(講論)하더니 노부가 노화상(老和尙)이냐?”

호승이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가로되,

“옳다, 옳다. 비록 옳으나 몽중(夢中)에 잠간 만나 본 일은 생각하고 십 년을 동처(同處)하던 일을 알지 못하니 뉘 양 장원을 총명타 하더뇨?”

// 호승의 출현

 

승상이 망연(茫然)하여 가로되,

“소유, 십오륙 세 전은 부모 좌하(座下)를 떠나지 아녔고, 십육에 급제하여 연하여 직명이 있으니, 동으로 연국(燕國)에 봉사하고 서로 토번을 정벌한 밖은 일찍 경사를 떠나지 아녔으니, 언제 사부로 더불어 십 년을 상종(相從)하였으리요?

// 호승과의 인연을 기억 못하는 승상

 

호승이 소왈,

“상공이 오히려 춘몽(春夢)을 깨지 못하였도소이다.”

승상 왈,

“사부, 어찌면 소유로 하여금 춘몽을 깨게 하리오?”

“이는 어렵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손 가운데 석장을 들어 석난간을 두어 번 두드리니, 홀연 네 녘 뫼골에서 구름이 일어나 대상에 끼이어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니, 승상이 정신이 아득하여 마치 취몽 중에 있는 듯하더니 오래게야 소리질러 가로되,

“사부가 어이 정도(正道)로 소유를 인도(引導)치 아니하고 환술(幻術)로 서로 희롱하나뇨?”

말을 맟지 못하여서 구름이 걷히니 호승이 간 곳이 없고, 좌우를 돌아보니 팔 낭자가 또한 간 곳이 없는지라 정히 경황(驚惶)하여 하더니, 그런 높은 대와 많은 집이 일시에 없어지고 제 몸이 한 작은 암자 중의 한 포단 위에 앉았으되, 향로(香爐)에 불이 이미 사라지고, 지는 달이 창에 이미 비치었더라.

// 성진이 꿈을 깸 ( 현실로 복귀 )

 

스스로 제 몸을 보니 일백여덟 낱 염주(念珠)가 손목에 걸렸고, 머리를 만지니 갓 깎은 머리털이 가칠가칠하였으니 완연히 소화상의 몸이요, 다시 대승상의 위의(威儀) 아니니, 정신이 황홀하여 오랜 후에 비로소 제 몸이 연화 도량(道場) 성진(性眞) 행자인 줄 알고 생각하니, 처음에 스승에게 수책(受責)하여 풍도(豊都)로 가고, 인세에 환도하여 양가의 아들되어 장원 급제 한림학사 하고, 출장입상(出將入相)하여 공명 신퇴(功名身退)하고, 양 공주와 육 낭자로 더불어 즐기던 것이 다 하룻밤 꿈이라. 마음에 이 필연(必然) 사부가 나의 염려(念慮)를 그릇함을 알고, 나로 하여금 이 꿈을 꾸어 인간 부귀(富貴)와 남녀 정욕(情欲)이 다 허사(虛事)인 줄 알게 함이로다.

// 성진의 현실 파악( 깨달음 )

 

급히 세수(洗手)하고 의관(衣冠)을 정제하며 방장(方丈)에 나아가니 다른 제자들이 이미 다 모였더라. 대사, 소리하여 묻되,

“성진아, 인간 부귀를 지내니 과연 어떠하더뇨?”

성진이 고두하며 눈물을 흘려 가로되,

“성진이 이미 깨달았나이다. 제자 불초(不肖)하여 염려를 그릇 먹어 죄를 지으니 마땅히 인세에 윤회(輪廻)할 것이어늘, 사부 자비하사 하룻밤 꿈으로 제자를 마음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혜를 천만 겁(劫)이라도 갚기 어렵도소이다.”

// 성진의 감사( 고두사은 )

 

“네, 승흥(乘興)하여 갔다가 흥진(興盡)하여 돌아왔으니 내 무슨 간예(干預)함이 있으리요? 네 또 이르되 인세에 윤회할 것을 꿈을 꾸다 하니, 이는 인세와 꿈을 다르다 함이니, 네 오히려 꿈을 채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가 장주 되니’ 어니 거짓 것이요, 어니 진짓 것인 줄분변치 못하나니, 어제 성진과 소유가 어니는 진짓 꿈이요 어니는 꿈이 아니뇨?”

// 대사의 진정한 깨우침

 

* 성진 - 꿈과 인생을 다른 것으로 봄

* 대사 - ( ‘호접몽(蝴蝶夢)’의 비유 - 큰 깨달음으로 유도 )

 

성진이 가로되,

“제자, 아득하여 꿈과 진짓 것을 알지 못하니, 사부는 설법하사 제자를 위하여 자비하사 깨닫게 하소서.”

대사 가로되,

“이제 금강경(金剛經) 큰 법을 일러 너의 마음을 깨닫게 하려니와, 당당히 새로 오는 제자 있을 것이니 잠깐 기다릴 것이라.”

하더니 문 지친 도인이 들어와,

“어제 왔던 위부인 좌하 선녀 팔 인이 또 와 사부께 뵈아지이다.”

// 성진의 설법 요청과 대사의 깨우침

 

대사, 들어오라 하니, 팔 선녀, 대사의 앞에 나아와 합장 고두하고 가로되,

“제자 등이 비록 위부인을 모셨으나 실로 배운 일이 없어 세속 정욕을 잊지 못하더니, 대사, 자비하심을 입어 하룻밤 꿈에 크게 깨달았으니, 제자 등이 이미 위부인께 하직하고 불문(佛門)에 돌아왔으니 사부는 나종내 가르침을 바라나이다.”

대사 왈,

“여선의 뜻이 비롯 아름다우나 불법이 깊고 머니, 큰 역량과 큰 발원(發願)이 아니면 능히 이르지 못하나니, 선녀는 모로미 스스로 헤아려 하라.”

// 팔 선녀의 설법 요청

 

팔 선녀가 물러가 낯 위에 연지분(臙脂粉)을 씻어 버리고 각각 소매로서 금전도(金剪刀)를 내어 흑운(黑雲) 같은 머리를 깎고 들어와 사뢰되,

“제자 등이 이미 얼굴을 변하였으니 맹서(盟誓)하여 사부 교령(敎令)을 태만(怠慢)치 아니하리이다.”

대사 가로되,

“선재, 선재(善哉)라. 너희 팔 인이 능히 이렇듯 하니 진실로 좋은 일이로 다.”

// 팔 선녀의 불가 입문과 대사의 허락

 

드디어 법좌에 올라 경문을 강론하니, 백호(白毫) 빛이 세계에 쏘이고 하늘 꽃이 비같이 내리더라.

설법함을 장차 마치매 네 귀 진언(眞言)을 송(誦)하여 가로되,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라 이르니, 성진과 여덟 이고(尼姑)가 일시에 깨달아 불생불멸(不生不滅)할정과(正果)를 얻으니, 대사 성진의 계행(戒行)이 높고 순숙(純熟)함을 보고 이에 대중을 모으고 가로되,

“내 본디 전도(傳道)함을 위하여 중국에 들어왔더니, 이제 정법을 전할 곳이 있으니 나는 돌아가노라.”

하고 염주와 바리와 정병(淨甁)과 석장과 금강경 일 권을 성진을 주고 서천(西天)으로 가니라.

// 대사의 설법

 

이후에 성진이 연화 도량 대중을 거느려 크게 교화(敎化)를 베푸니, 신선과 용신과 사람과 귀신이 한 가지로 존숭(尊崇)함을 육관대사와 같이하고 여덟 이고가 인하여 성진을 스승으로 섬겨 깊이 보살 대도를 얻어 아홉 사람이 한 가지로 극락(極樂)세계로 가니라.

// 성진의 중생 제도

* 갈래 : 국문소설, 한문소설, 염정(艶情)소설, 전기(傳奇)소설, 몽자류(夢字類) 소설, 양반소설, 적 강(謫降)소설, 영웅(英雄)소설, 편력(遍歷)소설

* 판본 : [한문본, 국문본]이 있음.

* 배경 : (시간) 당나라 때, (공간) 중국 남악 형산의 연화봉과 중국 일대(꿈)

* 시점 : 전지적 작가

* 동기

· 개인적 동기 : 노모(老母)를 위로하기 위해 창작.

· 문학적 동기 : 한국인은 한국어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국민문학론’을 내세운 그는 폭넓은 지 식을 바탕으로 창작에 임함

* 연대 : 숙종 15년(1689) 남해 유배시(당년 53세 작)

* 사상 : 유.불.선 사상이 혼합되었으나 불교사상이 주가 됨.

* 근원설화 : <조신몽>설화 ( [삼국유사] )

* 아류작 : <옥루몽(玉樓夢)>, <옥련몽(玉蓮夢)>

* 구성 : 이원적(二元的) 구성, 곧 액자소설(환몽세계 부분)

현실 세계

환몽 세계

현실 복귀

· 천상세계의 · 양소유와 · 미혹과 환몽을

수도자로서 삶 8부인 거쳐 큰 깨달음의

· 성진과 8선녀 · 유교적 생애 경지에 도달,

· 8선녀에 미혹, 세속적 욕망 불법 귀의

불도수행 회의 성취

(불교적) · 입신양명,

· 일부다처

 

* [구운몽]의 사상적 배경

① 유교적 바탕 - 입신양명, 부귀공명 (당시 양반 사회의 이상적 인생관)

② 도교적 바탕 - 작품의 비현실적 내용을 이루는 신선 사상

③ 불교적 바탕 - 핵심적 주제를 이루는 사상

* 주제 : 인생무상과 불법 귀의(불교 空사상 중심)

---  김만중 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 작품의 줄거리

 

❶ 중국 당나라 때, 남악 형산(衡山) 연화봉에 서역(西域)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참석한다. 육관대사는 제자 성진을 보내 용왕에게 사례하도록 했는데, 용왕의 술 대접을 받고 돌아오던 성진은 형산 선녀 위부인의 팔 선녀와 석교(石橋)에서 만나 서로 희롱한다. 선방(禪房)에 돌아온 성진은 팔 선녀의 미모에 도취되어 불문(佛門)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 영화를 원하다가 팔 선녀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추방된다.

 

❷ 회남 수주현 양 처사(梁處士)의 아들로 태어난 성진[양소유(楊少游)]은 “15세에 과거를 보러 가던 중 어사의 딸 ‘진채봉’을 만나 혼약하고, 난을 피해 있다가 과거를 보러 올라가던 중 낙양의 기생 ‘계섬월’과 인연을 맺고, 경사에 이르러 거문고를 타는 여자로 가장(假裝)하여 정 사도(鄭司徒)의 딸 ‘정경패’를 만난다. 과거에 급제한 양소유는 정경패의 시비(侍婢)인 ‘가춘운’과도 인연을 맺는다.

 

❸ 하북의 왕이 역모(逆謀)하려 하니 양소유는 절도사로 나가 이를 다스리고 돌아오는 길에 계섬월인 줄 알고 만난 여자가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었다. 상경하여 예부 상서가 된 양소유는 황제의 누이인 ‘난양 공주’의 퉁소소리에 화답한 인연으로 부마(駙馬)로 간택(揀擇)이 되는데, 양소유는 정경패와의 혼약을 이유로 이를 물리치다가 옥에 갇힌다.

 

❹ 토번(吐蕃)왕이 쳐들어오자 대원수가 되어 출전한 양소유는, 토번왕이 보낸 여자 자객(刺客) ‘심요연’과 인연을 맺고, 백룡담에서는 용왕의 딸인 ‘백능파’를 도와 주어 인연을 맺는다. 그 동안에 난양 공주는 양소유와의 혼약을 이루지 못하여 실심한 정경패를 만나 보고, 그 인물에 감복하여 그녀를 제 1공주인 ‘영양 공주’로 삼는다.

 

❺ 토번왕을 물리치고 돌아온 양소유는 위국공의 벼슬에 오르고, 영양 공주, 난양 공주 2처와 진채봉, 계섬월, 가춘운,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의 6첩을 거느리게 된다.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아홉이란 숫자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상징한다.

[내용정리]

 

❶ 현실세계 줄거리 : 성진의 인간세상으로의 추방

❷ - ❺ 꿈의 세계 줄거리 : 양소유의 부귀영화

 

󰏐 주인공의 이름에 반영된 주제 의식

성진(性眞)과 대(對)가 되는 소유(少游, 혹은 少遊)라는 이름 - 이 속에 이미 인간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 세상은 유명진여(有明眞如;우주 만물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의 세계에 대해 무명고해(無明苦海)의 세계요, 이 세상에 던져진 삶은 이 망망한 대해에서 수유(須臾;매우 짧은 시간) 동안 헤엄치다가(혹은 노닐다가) 가는 것이라고 하는 작자의 인식이 <소유>라는 작중인물의 이름 속에 깔려 있음을 본다.

 

󰏐 구운몽의 아홉 등장인물 : 9(九)는 ‘성진 + 8선녀’의 숫자

① 양소유, ② 정경패 : 정사도의 딸, 소유의 제1부인(영양공주), ③ 이소화 : 황제의 여동생. 소유의 제2부인(난양공주), ④ 진채봉 : 진어사(秦御使)의 딸. 소유의 제3부인, ⑤ 가춘운 : 정경패의 몸종, 소유의 제4부인, ⑥ 계섬월 : 낙양의 명기(名妓). 소유의 제5부인, ⑦ 적경홍 : 낙양의 명기. 소유의 제6부인, ⑧ 심요연 : 토번의 자객(刺客), 소유의 제7부인, ⑨ 백능파 : 동정 용왕의 막내딸. 소유의 제8부인

 

󰏐 <구운몽>의 사상에 대한 설(說)

 

① 3교 사상교합설

(1) Elspet K. Robertson Scott

Gale박사의 <구운몽>(영역본)인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Confucian, Buddhist, and Taoist ideas are mingled throughout the story."

(2) 천태산인(天台山人) [조선소설사] p. 117-118

“(전략) 그러나 소위 인간의 향악(享樂)은 가현(假現)이요, 환몽(幻夢)이라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衡山 연화봉에서 성진과 팔선녀가 결연한 것이라든지, 토번정벌을 향하다가 용왕의 향연(饗宴)에 참여한 것 같은 지구상에 존재한 천국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유·불·선 삼교가 혼합한 상태도 민간신앙이 되어 있는 증거이다.

(3) 周王山의 [조선고대소설사]에서 沈𨫃(심자)의 [송천수필(松泉隨筆)]의 인간의 부귀영화와 공명이 일장춘몽에 歸한다는 주제설을 전제로 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동양의 대표적인 종교 -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이 교묘히 배합되어 유교의 중심을 내세운 현실주의와 불교의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부정하는 은둔사상과 도교의 향락주의가 혼연(渾然)히 일치된 소설이다.”

(4) 박성의 [한국고대소설사]에서 일부다처주의의 교묘한 합리화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유·불·선 삼교의 혼합을 강조했다.

 

② 불교사상설

(1) 최초의 언급은 숙종 때의 陶庵(도암) 이자(李鋅)로서 그의 [삼관기(三官記)]이다. “大旨以功名富貴歸之於一場春夢”(큰 주제는 공명과 부귀가 일장춘몽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蓋以釋迦寓言 而中多楚騷遺意云”은 불교사상면에 대한 언급이다.

(2) 이가원 교수 <九雲夢評攷>(구운몽교주본) pp. 16~17

 

󰏐 <구운몽>의 주제와 공감 요소

‘구운몽’은 주제를 둘러싸고도 많은 논란이 있는 작품이다. 유.불.도 3교에서 온 요소가 두루 들어 있지만,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남악 연화봉에서 세속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가 욕망 추구가 허망한 줄 깨달았다는 몽유소설로서의 기본 설정은 전편이 불교적인 의미를 가졌음을 말해 준다. 육관대사가 언제나 ‘금강경(金剛經)’으로 가르침을 삼았다는 점까지 보태서 작품의 주제가 금강경의 공(空)사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성진은 꿈 속에서 양소유로 태어나, 시골 출신이 서울 가서 장원급제를 하고, 나아가면 장수가 되고 들어가면 정승이 되어 온갖 부귀를 누리면서, 연화봉에서 만났던 팔 선녀를 두 아내와 여섯 첩으로 맞이하는 과정을 자상하고도 묘미있게 다루었다. 세 속의 욕망이 허망하는 것은 작품 결말에서나 강조되어 있을 따름이고, 부귀를 획득하고 애정을 성취하는 데 더욱 절실한 관심을 보였다. 성진의 길과 양소유의 길 가운데에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진퇴의 문제를 주제로 삼고, 독자도 각각의 성향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게 했다 하겠는데,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으레 자기를 성진 또는 팔 선녀 가운데에서 누구와 동일시(同一視)해 공감(共感)을 얻었을 것이다.

 

󰏐 성진(性眞)의 성격

성진은 육관 대사의 제자로서 결국 크게 깨달라 불도를 이루었다. 대승 불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하나의 부처가 된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크게 깨달을 수 있는 이상적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꿈 속에서 새 삶으로 태어난 이래, 그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는 당연히 세간에서 최상의 부귀 공명을 누리면서 오직 사랑의 복종,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 그에게는 악의에 찬 저항과 실질적인 가해(加害)가 없었으므로 그는 늘 즐겁고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와 백성, 가족과 그 아래의 모든 중생들에게 그의 전부를 자비로 베풀었으므로 다 함께 즐겁거 행복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이상적이고 전형적(典型的)인 존재이다.

 

󰏐구운몽의 각 장(전 16장)의 소제목

제1장 노존사 남악강묘법(老尊師南嶽講妙法) 소사미 석교봉선녀(小沙彌石橋逢仙女)

제2장 화음현 규녀통신(華陰顯閨女通信) 남전산 도인전금(藍田山道人傳琴)

제3장 양천리 주루탁계(楊千里酒樓擢桂) 계섬월 원피천현(桂蟾月鴛被薦賢)

제4장 초녀도 관정부지음(招女道冠鄭府知音) 노사도 금방택현서(老司徒金榜擇賢婿)

제5장 영화혜 투로회춘심(詠花鞋透露懷春心) 환산장 성취소성연(幻山庄成就小星緣)

제6장 가춘운 위선위귀(賈春雲爲仙爲鬼) 적경홍 사음사양(狄驚鴻司陰乍陽)

제7장 금난직 학사취옥소(金鸞直學士吹玉簫) 봉래전 궁아걸가구(蓬來殿宮娥乞佳句)

········

제15장 양승상 등고망원(梁丞相登高望遠) 진상인 반본환원(眞上人返本還元)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 박완서 장편 소설

 

󰏐 ‘평범한 여자의 행복한 꿈’

 

90년 초 베스트 셀러였던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 작품의 경향으로 돌아가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소설집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가자 꿈을 못버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 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 간의 운명이지요.”

 

이 말에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무너지는 꿈, 무너져도 되살아나는 꿈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70/80년대) 우리 소설은 산업 사회로 또는 정치 전환의 사회로 전개되면서, 노사문제나 분단의 문제, 운동권 학생문제 등 사회의 파행적(跛行的) 현상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르러 독서계는 이러한 대사회적 문제보다는 일상적인 삶에 관심을 보이는 의식의 전환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독자들은 당분단 진정한 삶이 무엇이며,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꿈을 좌초(坐礁)시키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관심 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차문경이라는 35세의 독신녀,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보통 여자가 가지고 있는 평범한 꿈(가정, 자식, 남편의 사랑 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나이의 독신 남자인 혁주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결혼하지 못한 채 파경에 이른다. 이런 차문경의 꿈에 대한 좌초는 자식을 통한 모성애로 극복되지만 자식을 뺏아가려는 혁주의 소송으로 꿈이 다시 깨진다.

 

이런 평범한 스토리가 가지는 가치의 하나는, 이 소설을 통해 90년대에 전개될 우리 소설의 한 방향을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또한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장점을 취하는 중간 소설이 독자들의 보이지 않는 요청에 의해 뚜렷해질 것이 라는 전망이다.

---  어휘 <여성해방문학>, < 박완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전혜린>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 1908년 안국선(安國善, 1854-1928)의 신소설 작품

 

‘나’는 옛날같지 않게 도덕 · 염치 · 의리 · 절개를 잃고 악 속으로 빠져 든 금수(禽獸)만도 못한 인간 세상을 한탄하다가 잠이 들게 되었는데, 그 꿈 속에서 ‘금수회의소’라는 곳에 이르게 된다. (발단부)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상의 특징 : 당대 사회·정치 현실 비판하여, 참여문학적 성격이 강함 (풍자)

* 구성 : 8가지 동물이 차례로 인간의 제반 문제점을 성토하는 회의 광경을 광경을 ‘나’가 관찰하 는 구성 (액자소설)

* 주제 : 인간 세계의 모순과 비리를 규탄.

 

※ 제일석(第一席) : 까마귀 - 반포지효(反哺之孝)(출전-[금경])

제이석(第二席) : 여우 - 호가호위(狐假虎威) (출전-[전국책])

제삼석(第三席) : 개구리 - 정와어해(井蛙語海)(출전-[장자])

제사석(第四席) : 벌 - 구밀복검(口蜜腹劍)(출전-[십팔사략])

제오석(第五席) : 게 - 무장공자(無腸公子):창자 없는 동물 (출전-[포박자])

제육석(第六席) : 파리 - 영영지극(營營之極):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모 습의 절정.(출전-[시전])

제칠석(第七席) : 호랑이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출전-[예기])

제팔석(第八席) : 원앙 - 쌍거쌍래(雙去雙來):함께 오고 가고 함.

①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③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을 모르고, ②여우보담도 간사한, ④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창자없는 것은 ⑤게보다 심하고, ⑥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⑦호랑이보담도 포악한, 부정한 행실은 ⑧원앙새가 부끄럽도다. --- 폐회선언 부분 참고 ---


●금시조(金翅鳥) : 이문열 소설 (198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사군자 중에서 석담이 특히 득의해하던 것은 대나무와 매화였다. 그런데 그 대나무와 매화가 한일합방을 경계로 이상한 변화를 일으켰다. 대원군도 신동(神童)의 그림으로 감탄했다는 석담의 대나무와 매화는 원래 잎과 꽃이 무성하고 힘차게 뻗은 것이었으나 그때부터 점차 시들고 메마르고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후년으로 갈수록 심해 노년의 것은 대 한 줄기에 잎파리 세 개, 매화 한 등걸에 꽃 다섯 송이가 넘지 않았다. 고죽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대나무의 잎을 따고 매화의 꽃을 훑어 버리십니까?"

이제는 고죽도 장년이 되어 석담선생이 전처럼 괴퍅을 부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고죽이 그렇게 물었다.

"망국(亡國)의 대나무가 무슨 흥으로 그 잎이 무성하며, 부끄럽게 살아남은 유신(遺臣)의 붓에서 무슨 힘이 남아 매화를 피우겠느냐?"

"정소남(所南=정사초)은 난의 노근(露根)을 드러내어 망송(亡宋)의 한을 그렸고, 조맹부는 훼절(毁節)하여 원(元)에 출사(出仕)했지만, 정소남의 난초만 홀로 향기롭고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가 비천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읍니다"

"서화는 심화(心畵)니라. 물(物)을 빌어 내 마음을 그리는 것인즉 반드시 물의 실상(實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글씨 쓰는 일이며 그림 그리는 일이 한낱 선비의 강개(慷慨)를 의탁하는 수단이라면, 그 얼마나 덧없는 일이겠읍니까? 또 그렇다면 장부로 태어나 일평생 먹이나 갈고 화선지나 더럽히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모르긴 하되 나라가 그토록 소중한 것일진대는, 그 흔한 창의(倡義)에라도 끼어들어 한 명의 적이라도 치고 죽는 것이 더욱 떳떳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서실에 앉아 대나무잎이나 떼어내고 매화나 훑는 것은 나를 속이고 물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 물에 충실하기로는 거리에 나앉은 화공이 훨씬 앞선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이 서푼에 팔려 나중에는 방바닥 뚫어진 것을 메우게 되는 것은 뜻이 얕고 천했기 때문이다. 너는 그림이며 글씨 그 자체에 어떤 귀함을 주려고 하지만, 만일 드높은 정신의 경지가 곁들여 있지 않으면 다만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예도(藝道) 논쟁이 있다. 역시 고죽이 장년이 된 후에 있었던 것으로 시작은 고죽의 이러한 물음이었다.

"선생님 서화는 예(藝)입니까, 법(法)입니까, 도(道)입니까?"

"도다"

이미 육순에 접어들어 늙음의 기색이 완연한 석담선생은 거기서 문득 밝은 얼굴이 되어 일생을 불안하게 여겨 오던 제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고죽은 끝내 그의 기대를 채워 주지 않았다.

"먼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제 예닐곱 살 난 학동들에게 붓을 쥐여 자획을 그리게 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만약 글씨에 도가 앞선다면 죽기 전에 붓을 잡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읍니까?"

"기예를 닦으면서 도가 아우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평생 기예에 머물러 있으면 예능(藝能)이 되고, 도로 한 발짝 나가게 되면 예술이 되고, 혼연히 합일되면 예도가 된다"

"그것은 예가 먼저고 도가 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도를 앞세워 예기(藝氣)를 억압하는 것은 수레를 소 앞에다 묶는 격이 아니겠읍니까?"

그것은 석담 문하에 든 직후부터 반생에 이르는 고죽의 항변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석담선생의 반응도 날카로웠다. 그를 받아들일 때부터의 불안이 결국 적중하고 만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이놈, 네 부족한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을 애써 채우려들지는 않고 도리어 요망스런 말로 얼버무리려 하느냐? 학문은 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런데 너는 경서(經書)에도 뜻이 없었고, 사장(詞章)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붓끝과 손목만 연마하여 선인(先人)들의 오묘한 경지를 자못 여실하게 시늉하고 있으니 어찌 천예(賤藝)와 다름이 있겠는가? 그래 놓고도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사람의 드높은 정신의 경지를 평하려들다니 뻔뻔스러운 놈"

그러다가 급기야 그들 두 불행한 사제가 돌아서는 날이 왔다. 고죽이 서른 여섯 나던 해였다.그 무렵 고죽은 여러 면에서 몹시 지쳐 있었다. 다시 석담의 문하로 돌아간 그 팔년 동안 그의 고련(苦練)은 열성스럽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었다. 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서화에 열중하는 바람에 여름이면 엉덩이께가 견디기 힘들 만큼 진물렀고, 겨울에는 관절이 굳어 일어나 상받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석담선생의 말없는 꾸짖음을 외면한 채 서화가 관련이 없으면 어떤 것도 보지 않았고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이미 그 전에 십 년 가까이 석담 문하에서 갈고 닦았지만, 후년에 이르기까지도 고죽은 그 팔 년을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부분으로 술회하곤 했다. 그 전의 십 년이 오직 석담의 경지에 오르고자 노력한 십 년이라면, 그 팔 년은 석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팔 년이었다.

 

 

* 감상 :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읜 서예가 '고죽'은 석담 선생에게 맡겨진다. 석담은 '예(藝)'보다 '도(道)'를 더 우선시 하는데 '도(道)보다 '예(藝)'가 더 센 고둑의 작품 세계를 못마땅해 한다. 고죽은 스승과는 달리 보편적 원리로서의 도를 인정하지 않고, 한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서 예 역시 독특하게 추구되어야 할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서예가 다른 무엇을 드러 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독자적 세계를 추구해 간다.

중년의 나이에 스승과 대립하기도 했던 고죽은 스승이 죽은 후에 스승이 자기를 총애했음을 알게 되고, 죽음에 임박하여 고죽은 자신의 작품을 회수하여 불태운다. 그 불꽃은 자기 부정의 예술혼인 금시조를 확인하며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에서의 갈등은 예술에서의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논쟁과 관련된다.)

 

* 인물

-고죽 : 작품의 주인공. 숙부에 의해 자란 고죽은 서예가 석담 선생에게 맡겨진다. 그 후 스승 에 대한 애증으로 일관한다.

- 석담 : 구한말 서예가. '예(藝)'보다 '도(道)'를 더 우선시 하는 인물. 제자인 고죽을 사랑함

* 주제 : 한 예술가의 자기 부정의 예술혼

 


●금 따는 콩밭 : 김유정 단편 소설

 

영식이는 기쁨보다 먼저 기가 탁 막혔다. 웃어야 옳을지 울어야 옳을지. 다만 입을 반쯤 벌린 채 수재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본다.

“이리 와 봐. 이게 금이래.”

이윽고 남편은 아내를 부른다. 내 뭐랬어, 그렇게 해보라고 그랬지 하고 설면설면 덤벼오는 아내가 한결 어여뻤다.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아내의 눈물을 지워 주고 그리고 나서 껑충거리며 구덩이로 덜어 간다.

“그 흙 속에 금이 있지요?”

영식의 처가 너무 기뻐서 코다리에 고래등 같은 집까지 연상할 제, 수재는 시원스러이

“네, 한 포대에 오십 원씩 나와유.”

하고 대답하고, 오늘 밤 정녕코 꼭 달아나리라. 거짓말이란 오래 못 간다, 봉이 나서 뼊다귀도 못 추리기 전에 훨훨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라고 생각했다.

* 감상 : 수재의 꾀임으로 인해 무지하고 가난한 농민 ‘영식’이 자신의 콩밭에서 금줄을 찾으려다 가 한 해 농사를 망친다는 이야기이다. 성실하게 살고자 했던 인간이 어리석게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당시 농촌사 회의 열악한 구조적 모순도 곁들여 제시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김 유정의 현실 인식과 해학성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

 

---  김유정 소설 <만무방> ‘현실 비판 인식이 다른 작품에 비해 강함’

* 배경 : 1930년대 강원도 산골

* 경향 : 사실주의

* 주제 : 절망적 현실에서 허황된 꿈과 욕망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인간형 제시

* 출전 : 1935년 [개벽] 3월호 발표

 


●금오신화(金鰲神話) : 김시습 전기(傳奇) 소설 단편집. 최초의 한문소설 . 현전하는 작품은 5편

 

①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②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③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④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 각 항목

󰏐 사상의 고찰

 

❶ 유교사상

5편 중 <이생규장전>은 유교적 성격이 강하다.

·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 슬하에 있는 몸은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가는 곳을 알려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집을 나온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었습니다. 부 모님께서는 반드시 마을 입구에 나와서 기다릴 것이다, 어찌 자식의 도리라 하겠습니까?” (이생의 말)

· “이런 일이 만일 탄로나면 사람들은 모두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책망할 것이요, 또 그 처녀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반드시 네 행동 때문에 그의 가문이 누를 입게 될 것이니, ····”(이생의 부친의 말)

· “혼기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시경]의 주남편에도 나오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역경]에 경계되어 있습니다.”(최랑의 말)

· “옛 사람의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예절로써 장사지내야 한다 했는데, 이런 일을 모두 부인이 실천하셨소.”(이생의 말)

· “예를 들면 부자의 사이에는 사랑을 다해야 함을 이름이요, 군신 사이에는 의리를 다해야 함을 이름이요, 부부와 장유 사이에는 각각 당연히 해야 할 길이 있음을 이름이니, 이것이 이른바 도(道)이다.” (박생의 말)

· “사람이 세상에 날 적에 하늘은 어진 성품을 주셨고, 땅은 곡식으로써 길러 주셨습니다. 임금은 법령으로써 다스렸고, 스승은 도의로써 가르치셨고, 부모는 은애로써 길러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오륜(五倫)이 차례가 있게 되고, 삼강(三綱)이 문란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염왕의 말)

 

❷ 불교사상

김시습은 불교의 계율을 지키려고 고집한 승려이기보다는 불교의 이치를 추구한 ‘사상가’로서 이해해야 옳다.

<만복사저포기>에서 부처 앞에서 발원하는 장면에서 양생은,

· “제가 오늘 부처님을 모시고 저포놀이를 할까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불공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꼐서 지시거든 아름다운 배필을 구해서 저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양생의 말)

또 마지막 부분에서 여인이 양생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윤회사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 “저는 낭군의 은덕을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 낭군께서도 이제 착한 업을 닦으시어 저와 함께 속세의 누를 벗어나게 하십시오.” (여인의 말)

· 스님에게 다시 물어보았으나, 결정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죄와 복은 지은데 따라 응보(應報)가 있다는 설로 대답했다.

또, 불교적 효를 말한 부분이 있는데,

· “인간 세상에서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지 49일이 되면 계급의 고하를 가릴 것 없이, 초상·장사의 예절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절에 가서 재(齋)를 올리는 것을 일삼고 있습니다.” (박생의 말)

❸ 도교사상

<이생규장전>에서 원귀가 이생에게 하는 말 중, ‘하느님’이란 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도교적 용어이다.

<취유부벽정기>는 도교적 소설인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 “속세의 선비가 어찌 선계의 단술이나 용고기 포를 먹어 보았겠소?”(기자왕의 딸)

· “그분은 마침내 나를 이끌고 당신이 살고 계시는 곳으로 가서 별당을 지어주셨고, 또 나에게 삼신산의 불사약을 내리셨소. 그 약을 먹은 지 몇 달이 지나자 문득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건강해지더니 날개가 나서 신선이 되는 듯했고, 그 후로는 공중에 높이 떠서 ···· ” (기자왕의 딸)

· 여인은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버렸는데 ····

· 그의 시체를 빈소에 안치한 지 3, 4일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다.

한편, <용궁부연록>에서 ‘용궁’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도 이 사상의 반영이다.

 

❹ 기타

㉠ 정치관

· “정직하고 사심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염왕의 말)

·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백성들이 두려워서 복종하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엔 반역할 의사를 품고 있습니다. ····· 덕망없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 (염왕)

· 간신이 벌떼처럼 일어나 큰 어지러움이 자주 생기는 데도 임금은 백성들을 위협하고서 그것을 잘한 일로 생각하고 명예를 구한다면 어찌 나라가 편안할 수 있습니까?“ (박생)

㉡ 자유연애관 : 엄격한 유교사회에서는 자유연애를 허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생규장전>에서는 남녀간의 자유연애를 그려놓고 있다. 이것을 부모들이 허락하는 것도 놀랍다.

 

- 작품 속의 주인공과 김시습

· 양생(만복사저포기) : 일찍 부모를 여읨. 시 읊기를 좋아함. 불가의 의탁함

· 이생(이생규장전) : 어린 나이에 재주가 뛰어남. 자유연애를 갈구함. 한시짓기

· 홍생(취유부벽정기) : 도가적 경향. 시문에 능함. 친구와 친분이 두터움

· 박생(남염부주지) : 과거에 합격 못한 불만 많은 유학자. 뜻과 기상이 고상하여 세력에 굴복 하지 않음. 교제할 때는 성실하고 순박함. 철학적 입장, 정치이념을 대변하고 있다.

· 한생(용궁부연록) : 선비로서 글을 잘해 조정에 이름이 있었고, 평판이 좋음. 글짓기를 부탁 받음

⇨ (객관적인) 김시습 : 양생·이생·홍생·박생·한생

① 자기의 뜻을 쉽게 이루지 못함

② 하는 일에는 수난이 따르고 번민이 많음

③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적극적이지 못함

④ 비현실적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세계를 확장

⇨ 김시습


●김강사(金講師)와 T교수(敎授) : 유진오 단편. 사회소설

 

김만필을 태운 택시는 웃고 떠들고 하며 기운 좋게 교문을 들어가는 학생들 옆을 지나 교정을 가로질러 기운차게 큰 거브를 그려 육중한 본관 현관 앞에 우뚝 섰다. 그의 가슴은 벌써 아까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그가 일 년 반 동안의 룸펜(실업자) 생활을 겨우 벗어나서 이 관립(官立) 전문 학교의 독일어 교사로 득의의 취임식에 나가는 날인 것이다. 어른이 다 된 학생들의 모양을 보기만 해도 젊은 김 강사의 가슴은 두근두근한다. 저렇게 큰 학생들을 앞에 놓고 내일부터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근심과 기쁨이 뒤섞여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물 내온 모닝의 옷깃을 가다듬고 넥타이를 바로잡아 위의(威儀)를 갖춘 후에 그는 자동차에서 내렸다. 초가을 교외의 아침 신선한 공기와 함께 그윽한 나프탈렌의 값싼 냄새가 코밑에 끼친다. (어떠한 기운이 덮치는 듯이 확 밀려든다.) 그는 운전사에게 준 돈을 거스를 필요 없다는 의미로 손짓을 하고 무거운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부(수위실)에서 교장실 문을 묻고 복도를 오른편으로 꺾어 둘째 번 도어 앞에 섰다. (발단부)

 

문학사 김만필(金萬弼)은 동경 제국 대학 독일 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 시대는 한때 ‘문화 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 년 반 동안이나 실업자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 왔지만 아직도 ‘도령님’ 또는 ‘책상물림’의 티가 뚝뚝 떴는 그러한 한 지식 청년이었다. (주인공 소개 부분)

* 줄거리 : 김만필은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다. 그러나 그는 취 직난이 심한 때에 졸업을 한 탓으로 오랫동안 실업자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에 와 있 는 관리 H과장의 주선으로 일본인 S전문학교에 시간강사로 나가게 된다. 그는 남에게 알려지 면 별로 좋지 않은 학생 때의 전력이 있다. 학생 때 그는 좌익 학생운동 단체인 문화비판회에 관계한 적이 있다. 사상 운동의 전력이 있는 자는 당시 사회에 잘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가 부임한 S전문학교는 분위기가 상당히 딱딱했다. 거기에다 새로 근무를 하게 되었기 때문 에 김만필은 아주 서먹서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친절하게 접근해 오면서 대하 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T교수였다. 그는 김만필에게 이 학교의 학생들은 매우 질이 좋지 않으니까 주의하라는 둥, 그 가운데서 스즈끼, 야마다, 가도란 자가 특히 문제라는 둥, 여러 가 지 충고를 해준다. 김만필은 그가 매우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 김만필은 취직에 힘을 써 준 H과장을 집으로 찿아간다. 그런데 그 대문 앞에서 T교 수와 마주쳤다. 그는 보퉁이를 들고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하녀와 이야기하고 나왔고 김만필 은 그런 그의 행동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H과장 집에서 나오게 되자 T교수는 김만필에 게 차 한 잔 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세르팡’이라는 찻집에서 마주앉자 그는 김강사가 작 년 어느 신문에 원고료를 탈목적으로 쓴 ‘독일 신흥작가군상’이라는 논문을 아주 좋은 글이었 다고 칭찬을 한다. 김만필은 그의 그런 말에 아주 기분이 나쁘다. 그 글의 내용은 독일의 좌익 작가를 다룬 것이었다. 따라서 그로서는 학교가 그걸 알아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T교수는 그의 집 주소까지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김만필은 그를 싫어하게 된다. 그는 또한 같은 독일어 선생인 C를 주의하라고 일러준다. 김강사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느 일요일 스 즈끼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학생들이 패기가 없고 안일주의에 빠져 있다고 분개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문화비판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강사는 적지 않게 그 를 경계하면서 그런 말의 출처를 알아본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것이 T교수의 입에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 스즈끼는 김강사에게 독일문학연구회 모임을 조직하였으니 지도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강사는 그에게 불안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가자 김강사는 차츰 학교 내의 사정을 짐 작하게 된다. 학교는 교장과 T교수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여 물리 학의 S교수, 독일어의 C강사 등이 한패를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가운데 ‘세모 대매출’ 의 깃발이 휘날리는 연말이 다가왔다. T교수가 과자 상자나 사 가지고 교장을 찾아가라고 김 강사에게 일러준다. 그말에 김강사의 심경은 더욱 착잡해진다. 그는 일단 과자 상자를 사들기 는 했다. 그러나 끝내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것을 어떤 일가 아주머니에게 주어 버린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학교에 나가게 되자 김강사는 더욱 피곤을 느낀다. 그에 반해서 T교수는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하게 흐르고 아주 신수가 좋아진다. 겨울 이후로 그는 한국 민속을 연구 한다고 ‘젊은 무당과 양금, 가야금 뜯는 기생‘ 들을 뻔질나게 물고 다닌다. 그 속은 아무도 집 작하지 못한다.어느 날 그가 H과장이 만나잔다고 전한다. 김강사는 무슨 이유일까를 생각하면 서 그를 찾는다. 그런데 H과장은 평소의 온후하던 모양을 일변시키며 독살스러운 눈으로 자기 를 속였다 고 야단을 친다. 김강사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그때 이읏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언제 보아도 봄 물결이 넘 실거리듯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T교수였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 등장인물

· 김만필 :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 전문학교 시간 강사.

- 주인공의 양면성 : T교수의 충고를 무시하는 김강사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지 만, 한편 한 학생이 찾아와 자신의 문학비평회 활동을 입에 올렸을 때 모처럼 얻은 자신의 지위를 잃는 것이 두려워 양심을 속임

· T 교수 : 김만필의 선임자. 반동적 인물로 교활한 성격

* 주제

· 일제하 조선 지식인들의 현실 적응 실패

· 일제 문화 정책의 허상

· 이중적인 사회 구조의 개혁에 실패하는 비판 세력

* 출전 : [신동아](1935. 1월)

---  어휘 <지식인의 모습>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

 

한실댁은 자손 귀한 집에 와서 아들 못 낳는 것을 철천지한(徹天之恨)으로 삼고 있었다. 남편 보기 부끄럽고 남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는 작은 댁이라도 얻어서 자손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은근히 영감에게 비춰 봤으나 김약국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한실댁은 그 많은 딸들을 하늘만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딸을 기를 때 큰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고 했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英敏)하고 훤칠하여 뉘 집 아들자식과 바꿀까 보냐 싶었다. 셋째 딸 용란은 옷고름 한짝 달아 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레 남들이 다 시중들 것이요,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리라 생각하였다. 넷째 딸 용옥은 딸 중에서 제일 인물이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이 적고 심정이 고와서 없는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 나갈 것이니 걱정없다고 했다. 막내둥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을 못 잔다. 그러나 연한 배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워 어느 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호강을 할 거라는 것이다. 용숙이 과부됨으로써 한실댁의 첫꿈은 부서졌다.

* 배경 : 1864년부터 -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 경남 통영

* 경향 : 사실주의 소설로 가족사 소설

* 배경사상 : 샤머니즘, 운명론, 신비사상

* 시점 : 전지적 작가

* 등장인물

· 김봉제 : 선비 성품의 소유자. 김약국 경영. 사냥터에서 독사에게 물려 사망한 뒤 성수가 약 국을 이어받는다.

· 김봉룡 : 김봉제의 동생 : 충동적이고 격정적 성격의 소유자, 아내(숙정)이 시집 오기전 그녀 를 사모했던 송욱이 찾아오자 극단적으로 시기하여 그를 죽인다. 그후 숙정의 집안 식구의 보 복을 피해 탈가하여 자취를 감춘다.

· 봉룡의 처(숙정) : 남편의 송욱 살인을 계기로 간부를 두었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 살한다.

· 김성수(김약국) : 봉룡이 떠나면서 삼촌 봉제에게 맡겨진 성수는 봉제 아내(송씨)에 의해 성 장하지만 죽은 동서에게 항상 열등감을 지녔던 송씨는 그 화살을 성수에게 돌려 심리적으로 괴롭힘으로써 그는 불행하게 성장한다. 이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현실에 대한 집착도, 저항 도 않는 정적인 인물로 변한다. 김약국을 이어받고 난 뒤 딸 다섯을 두지만 전혀 지식이 없는 어장사업에 손을 댐으로써 가산이 조금씩 기운다. 계속되는 딸들의 불행과 집안의 몰락으로 인한 충격과 위암으로 죽는다.

· 한실댁 : 김성수의 처

· 장녀(김용숙) :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아들 동훈을 치료하던 의사와 불륜 관계로 사회적 지 탄을 받는다. 바다에서 죽는다.

· 차녀(김용빈) : 교육을 받아 교원이 되나 애인(홍섭)으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비교적 집안의 비극적 결말과 거리가 멀다.

· 삼녀(김용란) : 관능적 미모를 갖추었으나 지적인 헤아림이 부족해 머슴과 놀아나는 바람에 지탄을 받는다. 후에 다시 나타난 머슴의 아들(한돌)과 함께 있다가 남편(연학)에게 발견되어 한돌과 어머니 한실댁이 연학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에 용란은 정신이상자가 된다.

· 사녀(김용옥) : 애정이 없는 남편 기두와 별거하다가 뱃길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 막내(김용혜) : 아버지의 죽음 후 용빈과 함께 통영을 떠나면서 작품은 끝이난다.

* 주제 : 한 집안의 욕망(慾望)과 운명(運命)에 의한 비극적 몰락

* 출전 : 1962년 을유문화사 단행본 발간, 1993년 재간행

 

󰃚 [97 수능시험]

 

35. ㉠~㉤중 중구 영감의 성격이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은? ❷ (1.6점)

① ㉠ 마누라가 밥을 지으면 영감은 장작을 패고, 생선 한 마리라도 맛나게 보글보글 지져서 머리 맞대고 의좋게 먹는다.

❷ ㉡ 그러나 아들 형제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아무리 밤잠을 못 자고 일을 하여도 역시 김약 국이 알게 모르게 주는 도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③ ㉢ 중구 영감은 이를테면 예술가 기질 혹은 명장(明匠)의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었다.

④ ㉣ 거기다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⑤ ㉤ 부탁하는 사람이 이래저래 해 달라고 요구를 하는 일이 있지만 그 말에 따라 일하는 법 도 없고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하기 마련이다.

36. ⓐ‘의장(意匠)’의 뜻으로 바른 것은? ❷ (1.8점)

① 공예품에 깃든 장인(匠人) 정신

❷ 공예품의 외적 모양이나 색채

③ 공예품에 달린 장식

④ 공예품을 만드는 솜씨

⑤ 공예품의 예술성

37.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에 나타난 중구 영감의 진의(眞意)는? ❹ (1.8점)

① 일을 빠른 시일 내에 해 낼 수 없다.

② 김 약국에 대해 관심을 나타낸다.

③ 김 약국의 근황이 궁금하다.

❹ 용숙의 부탁을 무시한다.

⑤ 용숙을 믿을 수 없다.

38. 윗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해 낸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❸ (2점)

① 외가에서 도움을 받을 때 중구 영감이 불편해 하는 모습

② 정윤이 대구 의전을 다닐 때 김 약국이 도움을 주는 장면

❸ 중구 영감이 자개장을 시장에 가지고 나가 흥정하는 모습

④ 중구 영감이 일방에서 성실하고 꼼꼼하게 소목일을 하는 모습

⑤ 중구 영감이 소목일을 배우기로 작정하고 목수를 찾아가는 장면

39. 윗글에 대한 감상을 심화 발전시킨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❶ (2점)

❶ “나는 중구 영감과 정국주 마누라 사이의 갈등이 빈부 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 회의 경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더 연구해 보겠다.”

② “나는 한실댁을 통해 여성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낡은 관습으로 인해 여성 이 받는 불이익은 없을까 하는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 보겠다.”

③ “나는 특히 대화 부분을 읽으면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 작품에서 방언을 사용하 는 효과가 무엇일까 하는 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겠다.”

④ “나는 중구 영감이 지닌 전문성과 자부심에 주목했다.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을 더 생각해 보겠다.”

⑤ “나는 선비의 자손들이 소목일을 남 몰래 했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신분 질서가 붕괴되고 체면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생활 방식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확인해 보겠다.”

 


●까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러시아)의 미완성 장편

 

1878-1880년 작품, 웅장한 구상, 복잡하고 세밀한 구성, 뛰어난 상징성으로 주목받는 걸작임

 


●까치소리 : 김동리 단편, 액자소설

 

“사실 자네가 전사를 했다기에 그렇게 된 걸세. 지나간 일 가지고 자꾸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게, 자네가 이렇게 살아 올 줄 알았으면 ······. 다 팔자라고 생각해 주게.”

 

이 때 까치가 울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하는,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뜨리기 마련인 그 저녁 까치 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 나의 팔다리와 가슴 속과 머리끝까지 새로운 전류(電流) 같은 것이 흘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그것은 그대로 나의 가슴 속에서 울려 오는 소리였다. 나는 실신한 것같이 누워있는 영숙이를 안아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그녀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하여 다움 순간 내 손은 그녀의 가느단 목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말부)

* 배경 : 6.25무렵 시골 어느 마을

* 성격 : 토속적, 샤머니즘적, 신비·원형적

* 형식 : 액자소설

 

▲ 외부 이야기

단골 서점에서 신간을 뒤적이다 `나의 생명을 물려다오‘ 하는 얄팍한 책자에 눈길이 멎었다, `살인자의 수기’ 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생명을 물려준다.이것이 무슨 뜻일까, 나는 무심 코 그 책자를 집어들어 첫장을 펼쳐 보았다. `책머리에‘ 라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을 몇줄 읽 다가 `나도 어릴 때는 위대한 작가를 꿈꾸었지만 전쟁은 나에게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어 주었 다’ 라는 말에 웬지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 내부 이야기 두 부분

- 전쟁에서 돌아온 ‘나’를 중심으로 내가 전쟁터에서 가족(특히 사랑하는 정순)을 찾아 귀향하 는 부분 (까치소리 ‘길조(吉兆)’)

- 내가 전쟁터에서 돌아와 절망적인 상황에 마주치다 살인까지 이르는 부분(까치소리 ‘흉조(凶 兆)’)

---  속담 <아침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난다.>

* 등장인물

· 봉수(나) : 내부 이야기 주인공. 정순을 그리워하며 자해(自害)를 해 불구로 제대. 정순의 결 혼으로 분노, 절망 끝에 살인하게 됨

· 정순 : 봉수와 혼인을 언약한 여자. 봉수가 전사했다는 상호의 속임수에 빠져 결혼.

· 옥란 : 봉수의 여동생

· 어머니 : 까치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천식 환자. 절망 속에 죽음을 재촉하 는 인물

· 상호 : 봉수 친구. 징병을 기피하고 봉수가 죽었다는 거짓말로 정순과 정혼

· 영숙 : 상호의 여동생. 봉수를 사모함. 오빠의 죄의식을 느끼고 봉수와 고통을 위로하다 몸을 허락 (이때 까치소리가 들림. 봉수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트릴 때 울던 까치소리가 들 리자 이때 봉수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며 영숙을 죽인다.)

* 주제 : 전쟁의 참상에 눌린 인간의 운명적(運命的) 삶과 그로 인한 비극(悲劇)

* 출전 : 1966년 [현대문학] 발표

 


●꺼삐딴 리 : 전광용 단편 풍자 소설

 

1.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 박사는 응접실 소파에 파묻히듯이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백금 무테 안경을 벗어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골에 축축이 밴 땀이 잦아들어 감에 따라 피로가 스며 왔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執刀). 위장 속의 균종(菌腫) 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수술을 끝낸 찰나 스쳐가는 육감, 그것은 성공 여부의 적중률을 암시하는 계시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뒷맛이 꺼림칙하다.

그는 항생질 의약품이 그다지 발달되지 않았던 일제 시대부터 개복(開腹) 수술에 최단 시간의 기록을 세웠던 것을 회상해 본다.

맹장염이나 포경(包莖)수술, 그 정도의 것은 약과다. 젊은 의사들에게 맡겨도 대개 원장의 직접 집도를 조건부로 입원시킨다. 그는 그것을 자랑으로 삼아 왔고, 스스로 집도하는 쾌감마저 느꼈었다.

그의 병원 부근은 거의 한 집 건너 병원이랄 수 있을 정도로 밀집한 지대다. 이름 없는 신설병원 같은 것은 숫제 비장날 시골 전방처럼 한산한 속에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인국 박사는 일류 대학병원에서까지 손을 쓰지 못하여 밀려오는 급환자들 틈에 끼여 환자의 감별에는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것은 마치 여관 보이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손님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그 급에 맞는 방을 순간적으로 결정하거나 즉석에서 서슴지 않고 거절하는 경우와 흡사한 것이라고나 할까.

이인국 박사의 병원은 두 가지의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병원 안이 먼지 하나도 없이 정결하다는 것과 치료비가 여느 병원의 갑절이나 비싸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환자의 초진에서는 병에 앞서 우선 그 부담 능력을 감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신통치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무슨 핑계를 대든 그것도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간호원더러 따돌리게 하는 것이다. (중략)

 

2.

이인국 박사는 양복 조끼 호주머니에서 십팔금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두 시 사십 분!

미국 대사관 브라운 씨와의 약속 시간은 이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계에도 몇 가닥의 유서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인국 박사는 시계를 볼 때마다 참말 ‘기적’임에 틀림없었던 사태를 연상하게 된다.

왕진 가방과 함께 38선을 넘어온 피란 유물의 하나인 시계. 가방은 미군 의사에게서 얻은 새것으로 갈아매어 흔적도 없게 된 지금, 시계는 목숨을 걸고 삶의 도피행을 같이한 유일품이요, 어찌 보면 인생의 반려(伴侶)이기도 한 것이다.

밤에 잘 때에도 그는 시계를 머리맡에 풀어 놓거나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버려두지 않는다. 반드시 풀어서 등기 서류, 저금 통장 등이 들어 있는 비상용 캐비넷 속에 넣고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또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이 시계는 제국 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영예로운 수상품이다. 뒤쪽에는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발단부)

· 미국 혼반(婚班) ~ : 혼반 - 서로 결혼할 수 있는 지체

· 다다미방 : 일본식 돗자리를 깐 방

· 훈도시 : 일본식 남자 속옷

· 유까다 : 목욕을 한 뒤 또는 여름에 입는 무명 홑옷

· 당꾸 : 탱크

· 독또오루 : 닥터(doctor)의 러시아 발음

· 로스케 : 러시아인

· 노서아 : 러시아

· 다찌기리 : 스크랩

· 보국대 :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갔던 노무대

· 닥싸귀 : 도꼬마리 혹은 까치발, 도깨비바늘

* 감상 : 일제 시대 이인국은 자식들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어 일본어만 쓰게 하여 철저한 친일분 자로 지나다가, 광복이 되어 북쪽을 소련군이 점령하게 되자 러시아어와 자신의 의술로 소련 군 장교에게 환심을 사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낸다. 또한 월남해서는 미 대사관에 붙어 아부하고 친미주의자가 된다. 작가는 이인국 박사의 이러한 인물됨을 ‘직접적 제시’와 ‘간접적 제시’ 방법을 적절히 섞어 잘 보여 주고 있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1940~50년대, 북한과 남한

* 구성 : 이 작품의 구성은 이인국 박사가 브라운씨를 만나러 가는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 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쓴 소설임. 10개의 장절 중 첫째와 마지막이 현재이며 가운데 8개 장절 중 7개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며 5번째 장절에 현재가 잠시 나타난다. 따라서 <타임 몽타쥬 (time montage)>형식을 취한 구성

( 사건 구성 : 일제 시대 󰠜󰠜󰋼 소련군 진주 시대 󰠜󰠜󰋼 월남 이후의 시대 )

- ‘회중시계’의 의미

: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평면적 전개 방식 대신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더 과거로, 과 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역행적 전개를 하는데 동원된 도구이다.

 

* 등장인물

· 이인국 : 상업적인 외과 의사로서, 인술(仁術)보다는 권력에 기생하고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하 는 이기주의자이며,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 가는 변신술에 능한 (카멜레온을 닮은) 기 회주의자(機會主義者)로서 전형적 인물

· 다른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의 생애를 그려내는 데 필요한 소도구 역할만 한다. 즉, 철저하게 한 사람의 인생 역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나미(일본식-나미꼬) : 미국에 가 있는 딸. 영문학 전공.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와 결혼하려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냄

- 아내(혜숙) : 간호원 경력이 있는 후처. 거제도 수용소에 있을 때 죽었음

- 아들(원식) : 광복 후 스텐코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소 련 유학을 갔으나 생사를 알 수 없음

- 혜숙 : 서울에서 만나 후처로 들어온 여인. 20년의 연령 차가 있음. 사이에 돌 지난 어린 것이 있음

- 스텐코프 : 이인국이 왼쪽 뺨에 있는 혹을 제거해준 소련군 장교

- 브라운 : 미 대사관에 근무하며 이인국을 돕는 자

* 주제 : 시류와 타협하면서 자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인간형에 대한 비판

* 출전 : [사상계](1962), 동인문학상 수상작(1962년)

 1) 이인국 박사의 사람 됨됨이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은?

 환자를 돈으로 계산하는 태도와 먼지 하나 허락하지 않는 결벽성은 자신의 부도덕성에 대한 <반작용>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2) 이 작품에는 심각한 갈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심각한 갈등은 없다. 시류와 타협하는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 단편 소설로 보여준 한국 근·현대사 비판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 단편 [프로할징]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적인 가치에서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어떤 모양으로 - 마음과 몸 - 사람은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가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내용과 주제는 다르지만 전광용의 이 작품이 남기는 여운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주인공 이인국을 생각하면 ‘잘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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