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소크라테스를 이젠 풀어주자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소크라테스를 이젠 풀어주자 / 신기섭

 

언론에 󰡐테러󰡑라는 용어가 서슴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용어는 먼 외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칭하는 데 거의 한정되어 쓰였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야당 대표가 당한 폭력에 붙여질 때 그 무게나 느낌은 질적으로 다르다. 테러를 딱 규정하긴 어렵지만,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이나 민간 시설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 끔찍한 짓을 한 지아무개씨가 정치적 목적을 지녔다면 테러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테러가 아니라고 용서되는 건 아니다.

 

우리 상황을 볼 때, 이번 일이 󰡐테러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공포를 부추기려는 세력은 언제나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불법, 폭력, 법 질서 교란󰡑에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는 날로 거세질 게 뻔하다. 눈앞의 표적은 아마 평택 대추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기득권 세력 일부는 지금까지도 󰡒다 잡아넣으라󰡓고 절규하다시피 했다.

 

불법이라는 판정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우리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옥죄는 󰡐소크라테스의 망령󰡑 탓이 크다. 세계 4대 성인이라는 그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는데, 그 권위에 감히 누가 도전할 수 있겠는가? 󰡒대추리 주민들을 몰아내고 미군기지 확장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더 큰 폭력에 맞서는 정당한 저항권󰡓이라는 항변은 그저 󰡐불법에 대한 변명󰡑으로 치부된다. 이해해줄 마음이 있는 사람들조차 󰡐그래도 이제 불법은 곤란하지󰡑라는 게 솔직한 심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아예 없다. 그의 사상을 󰡐법이 문제가 있더라도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에 대한 왜곡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법이 악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잘못된 판결이 내려졌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려고 망명이나 탈옥 대신 독배를 선택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게 사형 판결을 존중해서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 말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밝혀낸 글들은 널려 있다.(권창은 전 고려대 교수의 논문 󰡐소크라테스와 악법󰡑, 강정인 서강대 교수의 책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이정호 방송대 교수의 논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철학박사 김주일의 책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등이 있다)

 

김주일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악법도 법이다󰡓고 말한 이는 서기 2세기께 로마의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엉뚱하게 알려졌을까? 그 첫번째 책임은 1930년대 경성제국대 교수를 지내면서 국내 법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 학자 오다카 도모오에게 있다. 그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악법도 법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한 이후 이 해석이 계속 이어지고 강화돼 우리 도덕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여기엔 민중의 저항을 차단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독재 정권의 공작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왜곡된 소크라테스󰡑는 폐기되어야 한다. 대신 󰡒국가가 나에게 철학을 포기하라고 명령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추리를 지키자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을 수 없다.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다음 문제다. 주장의 옳고 그름은 제쳐놓고 󰡐불법󰡑󰡐법질서 교란󰡑 딱지붙이기에 열중하는 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