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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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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허무감, ()의 허무감을 느껴 보는 기분, 이건 하나의 생활감정이기도 하다. 적당하게 생활을 물들여 단풍진 나뭇잎같이 생활을 아름답게도 할 수 있는 감정 이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모든 가치를 근본에서부터 의심해 보는 태도, 철저히 탐구하고 진지하게 사색하는 감정과 이, 이것은 학문적 허무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앞에 말한 허무나, 지금 말한 허무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허무다. 이 허무사상을 조절하고 기름으로써 보다 충실한 생활, 보다 훌륭한 가치에 이를 수도 있는 건가. 그런데 여기 일체의 희망을 버려야 하는 허무가 있다. 일체의 가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감정사상, 이건 불모(不毛)의 사상, 키에르케고르의 말 따라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 좌익이 덤비는 꼴, 그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거기 희망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날 뛰고 있는 우익에 기대를 걸 수도 없고, 3의 길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없고, 자라나는 세대는 스스로의 보류된 신분이란 특권을 이용하기는커녕, 어른들의 추잡한 혼란을 그들의 규모로서 모방한 채 혼란하고 있고, 유일한 길은 도피인데 도피가 길일 수 있을까. 도피해서 장사를 해선 내 속의 돼지를 키우는 것이 보람 있는 생활이 될 수 있을까. 딜레탕트로서 마스터베이션(自慰)하는 것이 생활일 수 있을까.

 

예술에로의 도피? 도피한 예술이 예술이 되자면 천재가 있어야 하는데, 천재 없는 예술은 치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불모의 허무지.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사상을 강철의 사상이라고 하고 그 사상으로 무장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이 불모의 허무주의만은 뚫을 수가 없을게다. 지금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이 허무주의에 대해서다.

나는 앞으로 1년 동안은 이 허무주의에 이겨 나갈 작정이다. 그 목적은?

 

지금 내가 맡고 있는 학급 학생 전원을 누구의 손에도 넘겨주지 않고 어떤 사고에도 다치게 하지 않고, 한 사람도 병들어 낙오하지 않게 해서 무사히 졸업시키는 일이다. - 이병주, ‘관부연락선

 

 


관부연락선 : 2차 세계대전 종료시까지 부산(釜山)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 사이를 운항하던 연락선.

 

관부연락선 : 이병주의 역사소설로 동경 유학생 시절에 유태림이 관부연락선에 대한 조사를 벌이면서 직접 작성한 기록과, 해방공간에서 교사생활을 함께 한 해설자 이선생이 유태림의 삶을 관찰한 기록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기록이 교차하며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의 장이 이선생인 의 기록이면 다음 장은 유태림인 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유태림의 조사를 통해 관부연락선의 상징적 의미는 물론 중세 이래 한일 양국의 관계가 드러나기도 하고, 이선생의 회고를 통해 유태림의 가계와 고향에서의 교직생활을 포함하여 만주에서 학병생활을 하던 지점에까지 관찰이 확장되기도 한다.

 

작가가 시종일관 이 소설을 통해 추구한 중심적인 메시지는, 그 자신이 소설의 본문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당시의 답답한 정세 속에서 가능한 한 양심적이며 학구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 진지한 한국청년의 모습󰡓이다. 능력과 의욕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 하기로는 유태림이나 우익의 이광열, 좌익의 박창학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일제시대를 지나 해방공간의 좌우익 갈등 속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옳았으며, 신탁통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으며, 좌우익 양쪽 모두의 권력에서 적대시될 때 어떻게 처신해야 옳았겠는가를 작가가 질문하는 셈인데, 거기에 이론 없이 적절한 답변은 주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다만 이를 당대 젊은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삶의 마감 - 유태림의 실종 및 다른 인물들의 죽음을 통해 제시하고, ‘당시 답답한 정세 속에서 가능한 한 양심적이며 학구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진지한 한국 청년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

 

딜레탕트 :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딜레타레(dilettare:즐기다)이다. 딜레탕트(dilettante)󰡐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원래 딜레탕트란 예술이나 학문(특히 음악) 중에 하나 또는 모두에 대한 열렬한 애호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현재는 예술이나 학문을 자기의 천직으로서가 아니라 도락(道樂)으로 즐기는 사람을 의미하며, 또한 예술이나 학문에서 하나의 정립된 입장을 취하지 않고 다만 이것저것을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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