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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인 성차와 사회적인 성차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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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인 성차와 사회적인 성차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해 왔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남녀의 차이에 대한 설명들은 대부분 남성이 주도해 왔고, 여성의 열등성을 공공연히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구 문화는 오랬동안 '인간'으로서의 남성과 '모자란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상정했다.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되는 많은 이들도 실제로 여성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매우 비하하는 말을 남겼다.

 

동양의 음양 (陰陽) 이론도 남녀를 상호 보완적으로 바라보는 듯하지만, 여전히 내용에서는 우열의 논리를 드러낸다. 이러한 설명들은 상식의 차원에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고, 전통의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남녀 사이의 성적인 차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남녀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일 것이다. 라쿠어에 따르면, 자연 과학이 남녀의 차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쯤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의 몸은 오직 한 종류만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생식기조차도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17세기까지의 인체 해부도를 보면 남자와 여자는 단지 돌출과 함몰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모양의 생식기를 갖고 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남녀를 동일한 몸으로 바라보는 생각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생물학적 차이를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난다.

 

오늘날에도 성적 차이를 낳는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탐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남녀의 모든 차이가 생물학적 조건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회 생물학자들은 남녀간의 차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 몸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도저히 변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의 위계질서에 저항하는 사회 운동에 대해서도, 그것은 진화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기원에 설명에는 많은 문제점이 숨겨져 있다. 그런 설명은 우선 생물학적 기원을 고정된 것으로 상정하면서 인간을 마치 초기에 설정된 프로그램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생물학적 원인으로부터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떤 차이가 유래한다고 인과 관계를 설정 할 때, 그 중간에 설명되지 않은 간극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이 '과학적 사실'임을 강변한다. 가장 큰 위험은 그것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다고 주장하는 경우, 너무나 쉽게 진리와 동일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실험 결과도 실험 주체의 해석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 될 수 있다고 본다면, 단순히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이를 '성차(性差)'라고 한다-를 강조하고 나아가 이를 근거로 여성이 열등한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비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의 예는, 남녀 차이의 생물학적기원을 탐구하는 과학적 활동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에 의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18세기 중반부터 나타난 두개골학은 두개골의 크기나 뇌의 질량으로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평균적으로 볼 때 여성의 뇌는 남성의 뇌보다 무게가 덜 나갔으며, 크기도 더 작았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치명적인 반격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코끼리 문제'이다. 만일 뇌의 절대적인 크기와 질량이 중요한 기준이라면, 사람보다 훨씬 큰 뇌를 갖고 있는 코끼리와 고래가 만물의 영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몇몇 학자들이 신장에 대한 뇌의 상대적인 크기(또는 체중에 대비한 뇌의 무게)를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 상대 수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높게 나오자 그 증거는 '틀린'증거로 간주되었고, '올바른'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즉시 기각되었다.

 

 

위의 예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뇌의 크기의 차이로 알아본다는 가설(전제)은 물론, 실험 결과의 의도적인 조작이나 폐기 모두가 비과학적이다. 만약 과학자들이 좀더 과학적이고 공평했다면 두개골학의 상대 수치에서 여성이 더 높게 나왔을 때 여성이 지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결론을 내리든지, 아니면 두개골의 수치에 따라 능력을 구분하는 전체 자체를 의심해 보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따라서, 두개골의 크기로 성차의 우열을 가늠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우리는 과연 그러한 생물학적 근거로 성차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부당한 불평등이 생물학적 근거를 빌려서 합리화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생물학적 성차가 강조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이미 그 배경에는 당시의 정치적인 지형 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18세기는 신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다양한 집단의 사회 운동을 중심으로 정치적 영역이 확장된 때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역설은 신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동시에 집단-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빈자와 부자, 식민지와 제국-간의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때부터 남녀뿐만 아니라 인종이나 민족의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때 발견되는 차이는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월과 열등이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현상적으로 남녀에게서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얼마만큼 생물학에서 기원하고 얼마만큼 사회 문화적 요인에서 기원하는지는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예컨대 '남성상(男性性)', 여성성(女性性)'이라는 말에는 생물학적인 성차 외에도 사회적인 성차 개념이 개입되어 있다.

 

이를 젠더(gender)라고 하는데, 흔히 생물학적인 성차인 섹스(sex)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지만 체격이 왜소하고 섬세한 사람을 여자답다고 한다거나,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지만 체격이 크고 괄괄한 성격의 여자를 남자답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젠더에 의한 구분이다. 이처럼 성차에는 생물학적인 차원과 사회 문화적인 차원이 있으며, 현실 생활에서 이 두 가지 차원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기보다 서로 긴말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구분할 수 없다.

 

사회적 성, 즉 젠더에 관한 논의들은 사회화의 결과로 성 역할이 학습되는 측면에 주목한다. 부모, 가족, 학교, 대중매체 등은 성 고정 관념에 따른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라는 성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내면화한다. 이렇게 해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라는 관념이 통용되는데, 이러한 고정관념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투명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러한 신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기 기술자라고 하면 당연히 남자일 것이고, 회사 사장이라고 할 때도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낮에 집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주부일 것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여성적 일과 남성적 일에 대한 고정 관념의 산물이다.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은 곧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그것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역할이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본성론적인 접근은, 특정 본성을 미리 상정하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들을 예외로 치부함으로써 동어 반복적인 논리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살림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만일 그것을 원치 않는 여성이 있다면 그녀는 비정상적인 여성으로 평가된다.

 

여성이 살림을 담당하는 성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당위(當爲)의 차원에서 먼저 존재하고, 그런 성향이나 행동을 보여 주지 않는 여성은 자신의 본성(여성성)을 갖추지 못한 비정상인으로 진단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이 본래 집안 살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성 역할 규범이라는 당위의 관점에서 나온 해석인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이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에 근거하여 남성의 일/여성의 일을 구분하는 식의 성 역할 규범이 다소 억압적이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폭을 좁힌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결과 가정에서 남성이 가사에 참여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사회에서도 남성이 미용사나 간호사 일을, 여성이 버스 운전사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을 맡음으로써 성차에 의한 노동의 차별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성 역할 분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소수의 예외적인 슈퍼우먼들과 유리한 조건에 있는 여성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그들의 현실적 조건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일수록 현모양처 노릇을 잘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왜냐 하면, 여성의 일차적인 자리는 '가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아실현을 하면 할수록 여성성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 결혼 또는 남성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이를 지워 버리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불평등에 대항하기 위해서 모든 차이를 외면하는 방향으로 일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입장만큼이나,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같다고 하는 입장 역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차이대로 인정하되, 그것이 현실 사회 속에서 남성과 여성사이의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구조적인 모순으로 작용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현실 모순을 타개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그 동안 억압받아 온 여성의 해방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 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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