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언어와 사고 / 남기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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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사고 / 남기심

 

 

 

유명한 언어학자이며 동시에 인류학자였던 사피어(Sapir)󰡒인간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객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어를 매개로 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표현의 수단만은 아니다. 실세계(實世界)라고 하는 것은 언어 관습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언어가 노출시키고 분절시켜 놓은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며, 그의 제자로서 그 또한 유명한 인류 언어학자인 워프(Whorf)󰡒언어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의 양식(樣式)을 결정하고 주조(鑄造)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비로소 인식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광선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 나타나는 색깔인 무지개 색이 일곱 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색깔을 분류하는 말이 일곱 가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서로 인접하고 있는 색, 예컨대 녹색과 청색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경계선은 아주 녹색도 아주 청색도 아니다. 그 부분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모호한 색깔도 분명하게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색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프리즘을 통해 나타나는 색은 수십, 수백 가지로 분류될 수 있으며 반대로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종류만으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쇼나 말(로데시아에서 쓰이는 말)에서 이 무지개 색을 오직 세 가지 색만으로 표현한다. 이 말에서는 빨강과 주홍 그리고 자주색을 한 범주로 보고, 청색과 초록의 일부(진한 부분)를 한 가지 색으로 보고, 초록의 연한 부분과 노란색을 한 가지로 본다. , 이들은 우리가 일곱 가지로 보는 색을 세 가지로밖에는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같은 색이라도 진하다느니 엷다느니 하는 형용사를 붙여서 구별하기는 한다. 더 심하게는 바사 말(리베리아에서 쓰이는 말)에서는 무지개 색을 오직 󰡐Ziza󰡑󰡐hui󰡑 두 가지로만 구별한다. 우리 국어에서도 초록, 청색, 남색을 모두 푸르다(혹은 파랗다)고 한다. 󰡐푸른(파란) 바다󰡑, 󰡐푸른(파란) 󰡑, 󰡐푸른(파란) 하늘󰡑 등의 표현이 그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흔히 이 세 가지 색을 혼동하고 구별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분명히 다른 색인데도 한 가지 말을 쓰기 때문에 그 구별이 잘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뜻이 된다. 말을 바꾸어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객관 세계를 보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 세계라기보다, 언어에 반영된 주관 세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은 󰡐언어의 상대성 이론󰡑으로 불리어 왔다.

 

이와 같은 이론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도 한다. 인도 - 유럽어 계통의 말들에는 열()이라는 말이 명사로서는 존재하지만 그에 해당되는 동사형은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유럽의 과학자들은 열을 하나의 실체(實體)로 파악하려고 노력해 왔다(명사는 실상을 가진 물체를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따라서, 󰡐󰡑이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역학적 현상이라는 것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이다. 반면, 아메리카 인디언 말 중 호피 어에는 󰡐󰡑을 표현하는 말이 동사형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만약 호피 어를 하는 과학자가 열의 정체를 밝히려고 애를 썼다면 열이 역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사리 알아 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인 왓슨(Watson) 같은 사람은 󰡒언어가 없는 사고는 없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소리 없는 언어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언어가 그만큼 우리의 사고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언어상의 차이가 다른 모양의 사고 유형(思考類型)이나, 다른 모양의 행동 양식(行動樣式)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색깔의 문제만 해도 어떤 색깔에 해당되는 말이 그 언어에 없다고 해서 전혀 그 색깔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진하다느니 연하다느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서 같은 종류의 색깔이라도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물론, 해당 어휘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인식하기에 빠르고 또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해당 어휘가 없다고 해서 인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언어 없이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이론도 그렇다. 생각은 있으되, 그 생각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며, 생각은 분명히 있지만 말을 잊어서 표현에 곤란을 느끼는 경우도 흔한 것이다. 음악가는 언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 작곡을 하여 어떤 생각이나 사상을 표현하며, 조각가는 언어 없이 조형을 한다. , 우리는 흔히 새로운 물건, 새로운 생각을 이제까지 없던 새말로 만들어 명명하기도 한다. 우리 국어는 영어나 다른 인도 - 유럽어 계통의 말처럼 성()을 표시하는 문법적 범주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의 구별을 못한다든가 둔감하거나 하지는 않다. 아마 우리처럼 성의 구분에 민감한 국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여러 언어는 문법적으로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그들 각각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혹은 사고 능력에 얼마만한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그 가장 본질적인 밑바닥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경험 세계를 상이하게 범주화한 우리의 언어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고, 분명히 주어진 단어에 의해서 지칭되는 개념이 명확한 어휘가 없을 때보다 사고하기에 쉬운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한 사실이 얼마만큼 중요하며 의미가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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