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문학 / 김상욱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문학 / 김상욱

- 아직도 자장면을 좋아하십니까?

 

 

 

더 이상 자장면을 좋아하지 않을 때, 그 때부터 어른이 되어 간다고들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더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아무리 어른이 되었다 할지라도 어린 시절 가족의 손을 잡고 간 즐거운 나들이에서 먹었던 자장면의 맛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대여섯 살 남짓 되었을 때 한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성당엘 다녔다. 사실 어린 나에게 성당은 그다지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도저히 좀이 쑤셔 못 견딜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가 애당초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새옷(?)만 아니라면 나 역시 형들처럼 진작 딴청을 부리며 가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사1)가 끝날 즈음 나만 훌쩍 남겨 둔 채 앞으로 나가 줄을 서서 신부님이 주시는 하얀 비스킷(그것이 영성체2)임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을 입으로 받아 드시곤 했다. 얇게 저민 그것은 입안에 넣으면 순식간에 사르르 녹을 것처럼 맛있게 보였으며, 뒷자리에 홀로 앉은 나의 입은 저절로 앞에 나간 아버지의 입을 따라 벌어졌다 다물어지곤 했다. 물론, 영성체 대신 침만 흥건하게 고여 있을 뿐이었지만.

 

어느 날인가 마침내 나는 그 달콤한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 몰래 살그머니 앞으로 나갔다. 주춤주춤 줄이 줄어들어 갈수록 조마조마했으나 나는 의연하게 신부님 앞에서 남들처럼 눈을 감고 찢어져라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입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았다. 턱이 아파 참을 수 없어, 살그머니 실눈을 뜨니 그제서야 신부님은 웃으시면서 나에게도 영성체를 떨구어 주셨다. 막상 그것을 입에 넣고서 나는 실망했다. 그것은 달지도 쓰지도 않고 그저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고 마는 밀가루였을 뿐이었다. 성당문을 나오는 즉시 나는 어머니께 선전 포고를 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성당에 가지 않겠다고. 단호한 선전 포고에 힘입어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중국집엘 들어갔다.

 

그 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시커먼 자장면을 먹었다. 쫄깃쫄깃한 면발, 달콤한 양파, 더러 씹히기도 하는 고깃덩어리에 홀딱 빠져 나는 얼굴을 거의 그릇 속에 처박고 있을 지경이었다. 간혹 숨을 돌리려고 얼굴을 들었을 때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속사포처럼 퍼부어졌다. 󰡒천천히 안 묵나!󰡓, 󰡒옷 배릴라, 얌전히 무그라!󰡓 등등.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그냥 둬라. 자장면은 저래 묵어야 안 맛있더나.󰡓 하며 말리셨다.? 나는 자장면 그릇을 싹싹 비운 다음 어머니가 남긴 우동 국물을 시원하게 마셨고, 아버지가 몇 방울 남긴 고량주를 홀랑 마시고 일어섰다.

 

그 후 오래지 않아 생활에 떠밀려 성당에 나가는 것도 그만두고, 가족 나들이도 사라져 버렸지만, 그렇게 맺어진 자장면과의 인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의 이별은 순전하게 내 입맛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자장면값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장면값이 슬쩍 1,400원으로 올라 된장찌개와 100원 차이로 육박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길고 오랜 관계를 청산해야 할 때가 왔지만, 나는 그래도 청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장면을 먹는 방법이다. 돌아가신 당신께서 󰡐저래 묵어야󰡑 한다고 일러 주신 방법은 그 날 이후 소박한 진리로 나에게 남아 있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요컨대, 막걸리를 마실 때는 뚝바리에, 소주를 마실 때는 소주잔에, 맥주를 마실 때는 유리컵에, 자장면을 먹을 때는 온통 얼굴에 자장을 발라 가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 형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정해진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늘 내용에 따라 풍부하고 생생하게 바뀌는 것이다. 때로는 편지처럼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단 한 줄로 끝날 수도 있다. 형식이란 내용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시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굳어진 생각은 수만 가지의 음식을 단 하나의 방법으로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짓거리이다. 다음은 최승호의 시이다.

 

 

인식의 힘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니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이 시는 몇 행과 몇 연으로 이루어진 서정시의 기본틀을 뛰어넘어, 거의 잠언에 가까운 짤막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인의 절박한 내용을 단언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오히려 힘을 덧붙이고 있다. 이 시에 주어진 상황은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나타내듯 절망적인 상태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닐 뿐더러 누구의 책임인지도 불명확하다. 자연의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적인 상태가 니체의 말을 가운데 두고 󰡐대담하게󰡑도 날개를 돋게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대답은 제목에 주어져 있다. 절망적인 상황을 철저히 인식했을 때만이 새로운 비약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인식의 힘󰡑이다. 다시 말하면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조차 철저한 인식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시를 군대에서 읽었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젊고 팔팔한 내가 이 곳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고통스러워했다. 적어도 이 시를 읽기 전까지는. 이 짧은, 시 같지 않은 시는 절망에 잠긴 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 주었다. 그 날부터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으며, 비로소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식의 힘으로, 󰡐인식의 힘󰡑이라는 시의 도움으로.

 

형식을 뛰어넘는 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시영의 시는 연극에서처럼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생생한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공사장 끝에

 

󰡒지금 부숴 버릴까?󰡓

󰡒안 돼, 오늘 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 돼, 오늘 밤은 오늘 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소장이 알면……󰡓󰡒그래도 안 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 오는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 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 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흑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시인은 무허가 건물 철거반원인 듯한 두 사내의 이야기를 작품에 아무런 여과 없이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짤막한 대화는 이들의 성격을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그 다음의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 주고 있다. 한 사람은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지금 당장 부숴 버리자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오늘 밤은 자게 하자.󰡓고 훈훈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 설정에 힘입어 삐져 나온 어린것들의 작은 발을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불빛인 양 덮어 주는 여자의 몸짓이 포착되며, 깜깜한 어둠이란 배경조차 여자의 아득한 심정과 연결되어 우리 모두에게 넓고 큰 울림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는 한 편 한 편이 각기 다른 형식을 요구하는 것이지 고정된 틀을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황지우의 시를 보자. 그의 시는 오늘날의 시가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을 극한에까지 밀어붙여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 시는 이시영의 시가 연극적인 대사를 끌어들인 것과 달리 시나리오를 짜맞추고 있다. 더욱이 어떠한 예술적인 가공조차 거부한 채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시의 틀을 성큼 뛰어넘고 있다.

 

 

마침내, 40대 남자도

 

1. 마침내, 40대 남자도 정수가아아 목놓아 울어 버린다.

2. 부산 스튜디오의 그 40대 여자는 카메라 앞에서 까무라쳐 버렸다.

3. 서울 스튜디오의 그 40대 남자는, 마치 미아가 된 열 살짜리 어린이가 길바닥에서 울 듯, 이젠 얼굴을 들고 입을 벌린 채 엉엉 운다. 정숙이를 부르며.

4. 아나운서가 그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그의 전신에는 지금 어마어마한 해일이, 거대한 경련이 지나가고 있다.

5. 각자 피켓을 들고 방영 차례를 기다리던 방청석의 이산 가족들이 피켓을 놓고 박수를 쳐 준다.

6. 카메라는 다시, 가슴 앞에 피켓을 내밀고 일렬 횡대로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지고 만오천이백삼 번, 만오천이백사 번 …… 황해도 연백군, 함경북도 청진……형님, 누님, 여동생, 삼춘, 아버지, 어머니……

7. 체구가 작은, 한복 입은 할머니 한 사람이 피켓을 들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다. 카메라는, `<원산서 폭격 속에서 헤어짐>을 짧게 핥고 지나 버린다.

8. 다시 화면은 가운데로 잘려서 한쪽은 서울 스튜디오, 다른 한쪽은 대구 스튜디오를 연결하고 여보세요. 성함이 김재섭 씨 맞아요? 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맞아요. 맞어. 재서바아, . 그래, 어머니는 그 때 정미소에 갔다 오던 길이었지요? 미군들이 그 때 폭격했잖아. 맞어, 할머니랑 큰형님이랑 그 때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방 안에 총알 다섯 개가 들어왔다는 말 들었어. 맞어. 둘째 삼춘이 인민군으로 끌려가 반공 포로로 석방됐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맞지요? 맞어. 맞어요. 맞어. 재서바아. 어머니 살아 계시니? 어머니이이

9. 화면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기 가슴을 치며 KBS 이산 가족 찾기 생방송 중계홀 중앙으로 뛰어나간 김형섭 씨를 쫓아간다. 그는 조명등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천정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대한 민국 만세를 서너 번씩 부르고 있다.

10. 남자 아나운서와 여자 아나운서가 그를 다시 카메라 앞으로 끌고 왔을 때 그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계속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케이비에스 감싸함다, 정말 감싸함다, 이 은혜 죽어도 안 잊겠음다, 한다.

11. 남자 아나운서는, 아까 김 씨 입에서 얼결에 튀어 나온, 방 안에 총알이 다섯 개 들어온 대목이 켕기었던지, 그에게 그 때의 정황 설명을 요구했으나 그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네 네, 그 때 전 적지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올려고 했지요. 그런데 중공군이 내려오고 또, 이북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다고 해서, 부랴부랴12. 화면은 이제 춘천 방송국으로 가 있다. 그리고 사리원 역전에서 이발소를 했다는 사람, 문천에서 철공소를 했다는 사람, 평양서 중학교 다녔다는 사람, 아버지가 빨갱이에게 총살당했다는 사람, 일본명이 가네다 마찌꼬였다는 사람, 내려오다 군산서 쌀장수에게 수양딸을 줬다는 사람, 대구 고아원에 맡겨졌다는 사람, 부산서 행상했다는 사람.

13. 엄마아 왜 날 버렸어요? 왜 날 버려!

14. 내가 죽일 년이다. 셋째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15. 아냐, 이모는 널 버린 게 아니었어. 나중에 그 곳에 널 찾으러 갔더니 네가 없더라구.

16. 누나야 너 살아 있었구나!

17. 언니야 왜 이렇게 늙어 버렸냐, ? 그 이쁜 얼굴이, ?

18. 얼마나 고생했니?

 

이 시는 온 국민을 눈물의 강으로 떠밀어 넣은 KBS의 이산 가족 찾기를 제재로 하고 있다. 어떤 수식도 없이 이 시는 텔레비전의 장면을 그대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그 날의 눈물을 떠올리며, 새록새록 40년 분단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다. 특히, 장면 #7의 체구가 작은 할머니의 엄청나게 큰 고통을 카메라는 짤막하게 핥고 지나가는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더욱 깊고 넓은 아픔이 우리 삶에 절절히 아로새겨져 있음을 놓치지 않고 보여 준다. 시인 황지우 앞에서 시의 형식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비낀다. 요컨대, 시의 형식은 무한히 펼쳐져 있는 열린 가능성이며, 각각의 시는 각각의 내용에 적합한 저마다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도 자장면을 좋아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집 가까이에 있는, 파리가 날리는 중국집으로 가십시오. 그리고는 미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그릇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당신 눈앞에 자장면이 나타나면 고개를 처박고 정신 없이 허겁지겁 자장면을 입 속으로 우겨 넣어 보십시오. 하여 숨이 막혀 고개를 들었을 때, 어린 날의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달콤한 자장면의 참맛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당신의 순박한 미각에 한없는 축복을 보냅니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