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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에 나타난 역사의식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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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에 나타난 역사의식

 

 

훌륭한 시가 산문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인생만큼이나 깊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이 깊은 시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것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우주에 편재해 있는 사물이나 어떤 대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학작품인 시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풀어내는 지적인 통찰력은 역사와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해 한용운의 대표적인 님의 침묵은 언뜻 보면 단순히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노래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이 지닌 탁월한 포괄적 상징성을 꿰뚫어 보면 불교적인 심오한 사상을 배경으로 한 역사의식이 짙게 깔려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의식은 개체적인 인간이 신에 의해 예정된 이상적인 목표를 향한 시간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다른 자연현상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신의 의지에 동참하거나 복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용운의 시편 님의 침묵에는 신이 어디에 나타나고 있을까. 그것은 이라는 것과 포개져 있다. 이 나타내고 있는 실체에 대해서는 학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필자는이 어떤 예정된 이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기적인 자연과 우주에 뿌리를 두고 개체적인 생명 및 삶과 함께 왔다가 사라지는 영혼과 일치되는 것으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시의 공간은 신이 움직이는 시간(역사)의 흐름과 함께 실어오는 에로스, 생명력의 소멸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님의 침묵은 한용운의 자전적이고 불교적인 여러 가지 의미를 예술로서 형상화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신과 함께 온 듯한 에로스로 구체화된 생명력이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과 그것에 따르는 시인의 아쉬움과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분명히 뜨거웠던 생명력이 소멸되어 가는 가을 풍경임에 틀림이 없다. 또 이것은 무성하던 여름을 상징하는 황금의 꽃이 가을을 나타내는 차디찬 띠끌이 되어 한줌의 미풍이 되어 날아갔다는 말로 이어지고 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지만, 남겨둔 씨앗들과 함께 미래의 만남을 약속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 한용운은 이 시를 님의 소멸 그 자체로만 생각하지 않고,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또 생성을 위한 미학으로 변용해서 수용하고 있다.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슬픔과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바기에 들어부었습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렇게 한용운이 가버린 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기다리고 또 그것을 되찾으려 갈망하는 것은 윤회사상을 중심으로 한 신의 뜻에 동참해서, 소멸된 생명을 부활시키려는 의지와 함께 잃어버린 낙원의 자유를 되찾으려는 역사의식을 구현하려는 책임있는 인간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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