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물욕
by 처사21자연스러운 물욕
(복거일/소설가) 동아일보(새아침 새지평) 96.07.03 05면
어느 사회에서나 물질적 재산을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사람들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존경받는다. 요즘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목소리들이 유난히 높다. 지나친 소비가 여러 문제를 불러오는 터라 검소하게 살자는 반성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재산과 물욕을 혐오하는 것은 건전하지 못하다.
○ 생존―번식에 도움
재산은 삶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잘 살고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게 한다. 물고기나 새들의 수컷이 구애할 때 먹이나 둥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갖고 암컷에게 다가간다는 사실은 음미할 만하다. 우리에게 물욕이 그리도 강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욕을 억제하기는 아주 힘들고 그 일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물욕을 억제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얘기를 자주 하는 사람은 종교지도자들이고 그들은 자신을 청빈의 전범으로 여기는 듯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사정은 크게 다르다.
그들이 자신의 재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어쩌면 걸친 옷 한벌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끼니 걱정을 하거나 잘 곳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아니다. 모은 돈이 없다고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종교 단체가 가진 재산의 혜택을 입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에서 종교 단체들은 엄청난 재산을 가졌고 흔히 가장 큰 지주들이었다. 현대에도 사정은 비슷하니, 종교 단체들은 큰 정치적 영향력과 재산을 가졌다. 따라서 종교 단체들의 구성원은, 특히 높은 자리에 오른 종교지도자는 사회적으로 높은 대접을 받을 뿐 아니라 보수도 괜찮고 아주 안정된 일자리를 누리는 것이다.
오랫동안 수도한 종교지도자들은 청빈의 전범으로 칭송되지만 그들이 그렇게 수도하는 동안 세속의 범인들이 늘 걱정하는 의식주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소박한 물음은 좀처럼 제기되지 않는다. 그렇게 유복한 사람들이 집세와 과외비를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고, 한창 일할 나이에 밀려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조마조마한 사람들에게 물욕을 버리라고 충고하는 모습은 좋게 보려고 해도 마음에 생선 가시처럼 걸린다.
모든 욕망은 진화의 손길로 다듬어졌다. 개체들의 생존과 종족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것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따라서 물욕을 억누르는 일은 힘만들고 효과는 없다. 물욕의 본질을 바로 보고 그것과 타협하는 것이 순리다.
○ 사회 발전 원동력
그리고 물욕이 크게 해로운 경우는 언뜻 생각하기보다는 훨씬 드물다. 돈은 대체로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해야 벌 수 있다. 비록 어느 사회에서나 나쁜 짓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일찍이 새뮤얼 존슨이 말한 것처럼 뭐니뭐니 해도 돈을 버는 일에 매달릴 때 사람은 죄를 가장 적게 짓는다. 그리고 하이에크가 지적한것처럼 사치는 물질적 풍요에 선행하는 현상이다.
사회와 문명은 욕망을, 그것이 성욕이든 물욕이든 공명심이든 버리 라는 얘기를 하거나 따른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해온 것이 아니다. 자식들은 자신보다 좀 낫게 살기를 바라면서 땀 흘려 돈을 번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해온 것이다. 이제는 그런 선남선녀 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돈을 벌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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