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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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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

복 거 일 (현실과 지향<복거일, 문학과지성사 1990>에서)

 

 

1.

변혁의 시대답게 요즈음은 사회 개혁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하다. 여러 마당들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논의들을 지켜볼 때면, 대부분의 경우 있어야 될 목소리 하나가 빠졌음을 발견하고,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내가 찾는 것은 보수주의 논객의 차분한 목소리다.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세상인지라, 보수주의 논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슨 얘기냐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을 것이다.

 

비록 유행에서 빠졌지만, 보수주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세력이 가장 큰 이념이다. 급진적 이념들이 앞을 다투는 세상인지라, 보수주의를 아예 논외로 치는 주장도 있을 것이지만, 보수주의가 큰 세력을 가졌다는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2.

(1) 먼저 어떤 이념 · 학설, 또는 그것을 구체화한 제도는, 그것이 진지하고 우아한 논리를 갖추었다면,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새로운 모습으로 뜻밖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나타난다.

 

(2) 보수주의는 단단한 바탕 위에 서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체조절기구를 통해 생존에 맞는 조건을 유지한다. 음되먹임(negative feedback)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이 경향은 생물적 체계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조직이나 기계와 같은 인공적 체계를 포함하여, 자연계의 거의 모든 체계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균형을 되도록 유지하려는 보수적 태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사회 조직의 생체 조절 기구에 주목하는 보수주의는 나름의 매력과 설득력을 지녔다. 그것의 매력과 설득력은 사회주의의 그것들처럼 이내 사람들의, 특히 젊음의 자비에 부드럽게 취해서 자신들의 가장 좋은 덕성들과 가장 훌륭한 힘들을 인간성의 평균적 질과 속성으로 잘못 여기는젊은이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휘어잡지는 않지만, 세상의 결을 오래 살핀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하기야 코울리지, 에드먼드 버크, 존 에덤즈, 존 핸리 뉴먼, 조지 산타야나, 토머스 엘리어트와 같은 추종자들을 가진 이념이 어찌 매력과 설득력이 없을 수 있겠는가?

 

(3) 보수주의는 적응력이 크다. 어떤 이념이나 학설도 사회가 바뀌고 지식이 늘어감에 따라, 그 이름은 아닐지라도, 그 내용이 바뀌게 마련이다. 그것은 일종의 적응이며 그런 적응을 통해서 이념과 학설들은 진화한다. 그리고 생명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뀐 환경에 대한 적응의 적부가 이념이나 학설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점에서 보수주의는 뛰어나다. 세월이 지나 사회 환경이 바뀌면, 새 시대의 조류를 받아들여 자신이 선 땅을 지켜왔다. 아니, 넓혀왔다. 시민 시대에 맞추어 변신한 보수주의는 자유주의가 섰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가장 가까운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이제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런 사정은 경제학 분야에서 뚜렷하다. 에덤 스미드와 데이비드 리카도에서 레옹 발라와 엘프래드 마셜로 이어진 자유주의 경제 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은 자유방임 학파라고 불리는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의 대표격인 밀튼 프리드먼은 에덤 스미드의 가장 뛰어난 정신적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

 

(4) 작년 유월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은 대체로 보수주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정치 분야에서의 개혁은 보수주의의 처방대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의 계속 집권을 시민들의 저항으로 막으면서도 정권의 교체가 선거를 통해 차분히 이루어지도록 한 기어가는 혁명creeping revolution’은 바로 보수주의의 승리다. 오히려 복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면도 있다. 새 헌법이 이미 한 시대 전에 시행되었던 헌법을 본으로 삼았고, 선거에 관한 사항들을 규정한 법률들도 대체로 그렇다. 지금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가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한 세대는 긴 시간이다.

 

경제 분야의 개혁은 경제의 운용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꾼다는 것이 큰 흐름이다. 이것이야말로 보수주의 경제 이론의 기본적 주장이다. 다른 이념들의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들도 여러 목소리들을 가졌지만, 경제에서 정부의 몫을 줄이고 시장의 몫을 늘려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한 목소리를 낸다. 비록 국제적 경제 현실에 의해 강요되었지만, 수입을 자유화하는 조치도 보수주의 경제 이론의 핵심 부분인 자유 무역 이론을 실천하는 일일 따름이다.

 

지금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크고 빠른 변화가 일어나는 마당인 노동 시장만 해도 그렇다. 노동조합 운동의 급격한 확산을 외칠 보수주의자들이야 드물겠지만, 탄력있는 보수주의자라면, 노동조합 운동의 정당성을 자신의 이론 체계 속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존 겔 브레이드의 대항력개념을 빌어, 노동조합의 등장은 사용자들의 힘이 너무 컸던 노동 시장에서 경쟁 원리를 되살린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작년 유월 이후 우리 사회의 노동조합 운동은 점진적 태도를 보여왔다. 아직도 노동조합 운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는 점, 국민 생산액 가운데 임금의 몫이 발전된 혼합 경제 사회들에 비해 훨씬 작다는 점, 노동조합 운동이 정부의 탄압을 받아 왔기 때문에 과격파가 득세하기 쉬운 처지에 있다는 점 따위를 고려하면,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조합 운동은 무척 차분하고 합리적이다. 본인들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 노동자들은 보수주의의 처방을 따르는 셈이다.

 

사회 분야의 개혁은 대부분 정부의 갖가지 규제들을 풀어서 되도록 시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고 그 타당성을 설명하는 데 곤혹을 가장 적게 느낄 사람들은 바로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그런 규제들을 풀면 풀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3.

그러면 보수주의는 어떤 이념인가? 이념으로서의 보수주의는 사회주의처럼 잘 짜여진 체계는 아니다. 자유주의에 비해 보더라도, 그것이 허술한 체계임은 이내 드러난다. 차라리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지경이다. 그래서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은 사회에서는 그것은 뚜렷한 이론 체계도, 정당이나 운동 같은 조직도 갖추지 않는다.

굳이 찾는다면, 다른 이념들의 경우처럼, 보수주의도 고대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이념으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근대의 일이다. 그것은 18 세기에 구라파와 미국에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현대적 보수주의의 바탕에는 사회 조직이 오랜 문명의 결과로 이룩된 유기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인식에서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의 원칙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체적 태도들이 나온다.

 

(1) 보수주의자들은 현재의 사회 조직이 근본적으로는 이상적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것은, 비록 무척 불완전하지만,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나 과격한 개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2) 그들은 사회의 다양성은 이런 이상적 형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양성을 평등의 이름 아래 없애고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는 시도는 자연의 법칙이나 신의 섭리에 거스르는 일로서, 문명을 시들게 한다고 본다.

(3) 그들은, 인간성이 불완전하므로, 사회 조직은 그런 이상적 형태에 쉽사리 이를 수 없다고 여긴다. 불완전한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은 어떤 제도도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본다.

(4) 그들은 전대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적 유산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뜻을 지닌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질서 · 정의 · 자유와 같은 가치들은 사람들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 큰 값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재산이라고 여긴다. 이런 시각에서 개혁은 언제나 사회의 유기체적 생명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처방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나온다. 사회적 해악들에 대한 간단한 처방들을 보면, 그들은 그런 처방들이 해악들보다 훨씬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위에서 든 보수주의의 특질들을 또렷하게 요약한 것은 엘리어트가 문화의 조건이란 글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다 : ‘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겠다우리는 다만 말할 수 있다 : ‘나는 이 나쁜 버릇을 버리고 이 좋은 버릇을 지니도록 힘쓰겠다.’ 그래서 사회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만 말할 수 있다 : ‘우리는 지나침이나 결점이 뚜렷한 이 면이나 다른 면에서 그것들을 개선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견해 속에 많은 것들을 포함시켜서, 한 가지 일을 바로잡으려고 다른 것을 그르치는 노릇을 피하도록 애쓰겠다

 

4

이런 보수주의는 흔히 보수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신조들이나 태도들과는 거리가 있다. 월터 배저트는 그런 보수주의를 성찰적 보수주의라고 불러서 반동적 성향을 띤 질서의 당의 이념과 구분했다. 사회의 안정을 무엇보다도 강조하여 질서의 당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지난 반동적 태도는 자신들의 생명 · 가정 · 직장 그리고 생활 양식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주로 나온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그런 태도들은 이념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어렵다.

 

성찰적 보수주의는 군부의 반동적 급진주의와는 더욱 다르다. 1960 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여러 비극들은 대부분 사회의 유기체적 성격을 전혀 깨닫지 못한 직업 군인들이 외과용 칼을 마구 휘두른 데서 나왔다. 그런 면에서 군부의 반동적 급진주의는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의 급진주의와 아주 비슷하다. 그 들은, 비록 연원이 다르지만, 사회 조직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유기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들이 내세우는 사회 개혁의 실제적 프로그램들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5

그러면 다른 이념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를 어떻게 보는가?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은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듯하다. 사회 현상을 경제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대부분의 사회 정책들이 경제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관계되며, 경제학이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먼저 계량화에 성공했으므로, 그런 정책들의 경제적 영향들에 대해서는 구체적 검증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사정이 그렇게 만든 듯하다.

 

현재 경제학 분야에서 보수주의와 가장 활발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급진적 이념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다. 둘다 이념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에 바탕을 두었고 주류 경제학의 성과를 유산으로 받았고 자연히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며 주로 혼합 경제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쟁점은 주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 사회가 정당하게 간섭할 수 있는 범위다. 즉 시장에 정부가 간섭하는 범위다.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의 결정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결정이 상당히 불완전하므로, 정부가 그런 결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에 대한 불간섭 원칙은, 실제에 있어서는, 대기업을 위해 길을 치우는 것이었다. 협상력 · 지식, 그리고 소득의 불균등은 무시되었고, 독점 · 유사 독점, 그리고 불완전 경쟁의 현실은 하찮거나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비슷하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해의 충돌도 무시되었고, 사기업들이 사회적 비용을 공동체나 환경에 전가할 가능성도 무시되었다. 더럽혀진 공기와 물, 그리고 소음은 영향력이 있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시장의 수요는 소득의, 정말로는 최저 생존을 초과하는 잉여 소득의, 분배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므로, 시장에 대한 불간섭 원칙은 현대 사회의 모든 정의롭지 못함을 () 반영했다.() 나의 동료들의 의견은 정부를 정의 · 경찰 · 그리고 무력이라는 18세기적 기능들에 국한시키고 싶어했는데, 나는 이것들이 그때에도 불충분했고 우리 시대에는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자유방임 학파의 본산인 시카고 대학의 폴 더글라스가 한 말이다. 이 진술보다 더 신랄하게 보수주의 경제 이론의 약점을 지적한 글도 드물다.

 

위의 비판은 프리드먼의 주장에 대한 폴 사무엘슨의 비판에서 또렷이 요약된다. 사회적 강제를 싫어하고 개인들의 자유로운 판단을 높이는 프리드먼의 견해를 사무엘슨은 다음의 명제로 일반화시켰다 : “만일 자유로운 사람이 당신이나 어떤 다른 사람들이 나쁘다고 여기는 어떤 행동(X)을 한다면, 그들이 그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그르다 : 원칙적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는 자유로운 대화에 의해 그들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일뿐이다.

 

위의 명제의 X자신의 미적 감각에 맞게 머리를 기르기로 대치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에 동의할 것이다. 비록 도심의 거리에서 경찰관이 가위를 들고 젊은이들의 긴 머리를 자르던 풍경을 열 몇해전까지도 서울에서 볼 수 있었지만.

 

만일 X머리를 기르기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에 따라 마약을 즐기기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뭇거릴 것이다. 프리드먼은 서슴없이 말한다.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마약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

사무엘슨은 이런 주장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 “X‘500만 명의 적절히 특정화된 사람들을 가스로 죽이는 일로 대치해보라. 이제 누가 그 주장에 동의할 것인가?” 히틀러를 예로 든 것은 상당히 극단적이고 과연 히틀러의 행동을 개인의 행동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겠지만, 자유방임주의에 어떤 한계가 있음을 위의 반론은 보여준다.

 

6

이제 보수주의는 큰 활력을 보이는 중요한 이념임이 드러났다. 그런 이념을 무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서의 당과 같은 유사 보수주의나 군부의 반동적 급진주의와는 구별되는 성찰적 보수주의가 정립되면, 우리 사회에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1)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인 보수적 성향을 지난 사람들에게 올바른 이론적 바탕을 마련해주어서, 보수적 경향을 사회에 좀더 유용한 힘으로 바꿀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군부의 반동적 급진주의가 겉으로는 보수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 일이 시급하다. ‘성찰적 보수주의의 정립은 막연한 두려움에서 정치 세력으로서의 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군부로부터 떼어 놓을 것이다.

 

(2) 여론이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에 여러 목소리들이 있으면, 그 논의의 폭이 넓어지고 의견이 한 쪽으로 쏠리는 위험이 줄어든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모든 사회 현상들이 간단한 명제 몇 개로 설명될 수 있고 그런 설명에 따라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간단한 처방들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특히 모든 사회적 현상들이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현상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주장이 무척 빠르게 사조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풍조는 경계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 남은 유일한 고대 문명인 한문 문명을 유산으로 받고 현대의 지배적 문명으로 등장한 서양 문명을 급속히 섭취한 우리 사회는 무척 다양한 모습을 지녔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지적 풍토는 그런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두 문명이 부딪쳐 소용돌이를 이룬 사회에서 그런 현상에 대한 문명 차원의 논의가 거의 없다는 점과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인류 문명의 뜻과 장래에 대한 논의가 드물다는 점 따위에서 우리 사회의 지적 편향과 침체를 읽을 수 있다. 사회와 문명을 유기체로 파악하는 보수주의 이념의 정립은 이런 현상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사회주의 이념의 진화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사회주의 이념의 핵심은 경제 이론이다. 애석하게도, 그 이론은 지향하는 목표의 고귀함과 추종자의 많음에 비해서 학문적 엄밀성이 부족하다. 정태적 분석을 통하여 사회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비논리성, 대상 현상의 파악이 어려운 경제학에서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전제로부터 연역에 의해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론적 문제점, 되도록 가치 중립적 용어들을 쓰려는 노력이 적고 때로는 가치 편향적 용어들을 골라 쓰는 태도, 검증의 소홀함, 예측이 틀렸음이 드러났을 때도 사실에 맞추어 이론을 수정하기보다는 용어의 조작을 통해 그 사실을 우회하려는 교조주의적 태도 따위가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이 보여온 결점들이다. 검증을 통해 이론을 발전시켜온 보수주의 경제학과 토론의 마당에서 만날 수 있다면, 사회주의 경제학은 위에서 든 결점들을 반성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4) 변혁의 준거로서 보수주의는 유용하다. 사회를 유기체로 바라보고 그 활력에 영향을 주는 급진적 변혁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변혁의 대상이 된 질서를 가장 올바르게 대변한다. 그래서 그들이 내건 처방들은 흔히 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내건 개혁안들 사이에서 최대공약수 노릇을 한다. 작년의 유월 혁명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났다. ‘직선제 개헌이 보수주의적 성향을 띤 세력들이 제시한 개혁의 범위였고, 거기까지는 반동적 세력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동의했다. 그것을 넘는 개혁을 주장한 목소리들은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보수주의적 개혁인 유월 혁명이 대부분의 혁명들에서 나타나는 변혁과 반동 사이의 진자 운동으로 힘을 소모하지 않고 착실한 개혁을 이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놀랄 만큼 적고 작은 부작용들을 불렀다는 사실은 보수주의적 개혁안이 지닌 최대공약수적 성격과 그런 사정에서 나오는 유용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수주의적 처방들이 유용한 더 큰 까닭은 그것들이 튼튼한 이론적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어떤 제도보다도 훌륭하게 움직이는 시장의 자유로운 기능을 줄기로 삼기 때문이다.

 

이 점은 흔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들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독점에 관한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시장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수요에 있어서나 공급에 있어서나, 시장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지닌 독과점이 적어야 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독과점을 싫어하고 누구보다도 더 격렬하게 비난한다.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독점자는 물론 정부다. 시장에 갖가지 형태로 개입한다는 사실을 제쳐두더라도, 정부는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큰 소비자며 생산자다. 해마다 정부 예산만큼 소비하는 구매자라, 정부는 시장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누리는 생산자로서의 독점적 지위는 더욱 확고하다. 우리 사회에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기업들은 화폐 발행 · 철도 · 우편 · 전기 · 전화 · 전신 · 방송 · 담배 따위 업종에 종사하는 정부 기관들이나 정부 소유 기업들이다. 이들의 독점으로 일어나는 폐해들이 높은 가격만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폐해들이 나오게 되는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여 구체적 처방을 내놓는 데는 시장의 역할을 무엇보다도 높이는 보수주의 경제 이론을 따를 것이 드물다.

그리고 그런 진단과 처방이 기업적 활동 분야에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시장의 기능은 흔히 경제 활동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회 활동들을 점검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7

그러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수주의 논객은 어디 있는가? 사무엘슨은 프리드먼을 없었으면, 우리가 만들어 냈어야 할사람이라고 평했다. 하기야, 사회적 통념들을 훌쩍 벗어 던지고,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모든 마약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아주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최저 임금제는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객이 어느 사회엔들 필요하지 않으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이론에 온몸을 싣는 진정한 보수주의 논객이 없다. 없으니, 아마도 우리는 만들어내야 하리라.

 

보수주의 논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그의 처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그들이 받아야 할 만큼 잘 통치받지 못한다고 설득하러 다니는 사람은 정신을 쏟으며 옳다고 여길 청중이 결코 없지 않을 것이다.” 4세기 전 영국에서 리처드 호커가 한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 논객으로 나설 사람이 걱정해야 할 것은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청중이 없음만은 아니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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