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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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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박 찬 구(한국 외국어 대학교 교수)

 

 

안 내 글

 

쌀 개방, 금융 개방, 통신 개방, 증권 개방 등 온갖 개방의 파도가 우리 사회를 거세게 몰아 치고 있다. 여기에 이와는 차원이 다른,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개방이 있다. 성개방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적 성 윤리와 서구에서 밀려 들어온 성 문화가 뒤엉켜 있는 지금, 이러한 성 개방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성 윤리관이다.

 

이제 성을 신비하고 은밀한 곳에 가두어 두려는 전통적 성 윤리가 지배하던 시대는 갔다. 성을 어두운 곳에만 두려는 것은 성 범죄를 부추길 뿐이다. 차라리 당당하게 성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밝은 곳으로 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끌어내어 이러한 혼란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성 윤리에 관한 네 가지 입장에 대해 살펴보고, 성적 자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교과 관련

 

1980년대 이후에 우리 사회의 성 도덕이 크게 문란해지고 있다. 특히 여성의 성을 매개로 한 향락 산업이 번창했으며, 이로 인하여 인신 매매범이나 가정 파괴범이 늘어나고 있다. 에이즈(AIDS), 동성 연애, 매춘, 성 폭행, 마약, 음란 비디오, 저질 만화 등이 늘어나면서 성 도덕의 문란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가치관의 혼란과 성을 상품화하려는 상업주의에서 기인하며, 개인적으로는 성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성 윤리관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윤리교과서 P. 105~106에서

 

 

1. 머리말

 

오늘날 우리는 시선을 끄는 온갖 성적 자극물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스치는 TV 광고 속에서, 스포츠 서울의 제1면에서,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잡지나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또 최근에는 PC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직간접으로 성충동을 자극하는 그림이나 정보들을 접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매스컴을 통해 빈번히 보도되는 성 폭행, 인신 매매 등의 범죄는 이러한 무분별한 성적 표현의 허용이나 성의 상품화 현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과연 성적 표현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그리고 그런 것을 󰡐도덕󰡑의 이름으로 규제한다면 온당한 일일까?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대답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우리는 성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들을 살펴보고, 각 입장은 어떠한 근거 및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자. 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2. 성 윤리에 관한 다양한 입장들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식욕과 성욕이 그것이다. 식욕이 개체 보존 본능과 관련된다면, 성욕은 종족 보존 본능과 관련된다. 따라서 동서를 막론하고 성적 욕구가 갖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자녀를 생산한다는 목적과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결혼을 통한 일부 일처제(一夫一妻制)의 확립과 더불어 성은 다음과 같은 금기를 중심으로 규제되어 왔다. 첫째, 결혼 전까지는 성 관계를 삼가야 한다. 둘째, 결혼 후에는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통적 입장에 의하면 성 관계는 자녀의 생산이나 부부간의 애정을 돈독히 함에 있어서만 도덕적 의의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1960년대의 성 혁명 -이른바 자유 연애(free sex)의 물결 -을 거치면서 결혼 및 자녀 출산과 관련된 것 이외의 성 관계를 금하는 전통적 성 윤리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성 혁명을 통해 인위적 피임, 혼외의 성 관계, 동성애, 성적 쾌락만을 위한 성 관계 등도 용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당사자가 합의하는 한 어떠한 성적 표현이나 행위도 허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자유 연애를 옹호하는 이러한 입장은 전통적 가족 제도의 붕괴, 상업주의에 편승한 성의 상품화 현상, 쾌락만을 위한 성 관계에서의 비인간화 현상 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성 윤리를 둘러싼 논쟁은 더이상 음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도 급격한 산업화개방화와 더불어 결코 이 문제에 있어 예외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성 문제가 공개적인 토론의 장에서 본격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논의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성 윤리를 둘러싼 논쟁 거리들로는 대체로 성과 사랑과의 관계, 혼전 순결, 혼외 정사, 도색물(挑色物, pornography)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들 수 있다. 이제 아래에서 우리는 그 동안 전개되어 온 성 윤리에 대한 입장을 편의상 극단적 보수주의, 온건한 보수주의, 극단적 자유주의, 온건한 자유주의 등의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 극단적 보수주의

극단적 보수주의는 서구의 경우 대개 보수적 크리스트교 윤리에서, 우리의 경우 전통적 유교 윤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입장에서는 성이란 결혼 및 자녀 출산과 관련을 가질 경우에만 도덕적이고 온전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은 청소년에게는 혼전 금욕과 절제의 삶을, 결혼한 성인에게는 배우자에 대한 성적 지조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보수주의적 입장이 이제까지 우리 삶의 근간인 전통적 가족 제도의 유지, 즉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 안정적이고 책임 있는 자녀 교육 등을 뒷받침해 왔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보수주의적 입장은 안정적 삶을 위해 변화와 모험이 가져다 주는 다양하고 신선하고 흥분으로 가득 찬 삶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즉 보수주의자의 성 관념은 보다 바람직하고 훌륭한 성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안정적 삶이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수적 심리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성 해방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자위 행위나 부부간의 인위적 (자연적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닌) 피임까지 죄악시하는 엄격한 윤리가 설득력을 갖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매스 미디어를 통한 온갖 성적 자극 요인들이 범람하고 있는 오늘의 여건 속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절제와 금욕의 삶만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온건한 보수주의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전통 윤리가 요구하는 엄격한 금기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은 사랑과 성을 굳이 결혼이나 자녀 출산과 결부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온건한 보수주의에서는 혼전 성 관계를 용인하되, 그것이 상호간 사랑의 서약이 전제될 경우에는 정당하다는 주장을 편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성애(性愛)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필수적이며, 성적 쾌락을 그 자체로서 즐기는 데 있어 출산이나 피임 등과 관련된 어떤 제약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즉 이들은 한편으로 스스로를 전통적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존재들로 여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된 사랑이 동반되지 않는 성은 옳지 않다.󰡑는 보수적 입장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제약 없이 성을 그 자체로써 즐기려는 자유주의자들이 볼 때, 이러한 입장은 아직도 답답한 보수주의의 굴레를 벗어 버리지 못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보수적 입장이 어떤 면에서 도덕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 주어진 훌륭한 선물인 성을 충분히 누리는 삶인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즉 보수주의자는 성애에 사랑이라는 족쇄를 채움으로써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성적 환희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 온건한 자유주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 성은 일차적으로 쾌락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즉 성은 자신이 선택한 행위에 대해 충분한 분별력과 책임 의식을 지닌 성인들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성행위는 반드시 양쪽 모두의 합의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타인에게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한, 온건한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성은 그것이 혼전의 성이건 혼외의 성이건 동성애이건 특이한 형태의 성적 실험이건 간에,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사랑, 결혼, 자녀의 출산과 관련되지 않는 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시하는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온건한 자유주의자들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행위라든지, 상대방의 의지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성행위라든지, 타인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가 아닌 한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도덕적으로 문제삼지 않는다.

특히 이들은 사랑이 동반된 성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이들이 보기에 연인이나 부부 사이의 판에 박은 듯한 성 관계보다는 새로운 상대자와의 성 관계가 모험과 환희, 더욱 흥미 진진한 성적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성은 마치 그때 그때 스포츠를 즐기는 것과 같기 때문에, 성과 관련하여 반드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등의 제약을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 극단적 자유주의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은 성은 쾌락을 위해 있다는 자유주의자 일반의 주장에 동조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있어 어떤 제약도 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성이 쾌락을 가져다 주는 한, 어떤 유형의 행위든(예컨대 자위 행위, 가학증이나 피학증, 혼음 등), 어떤 유형의 상대이든(예컨대 미성년자, 동성, 동물, 인공물 등)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용납된다면, 그것이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 한 어떠한 비도덕적 성행위도 쾌락의 이름으로 옹호될 수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제까지 우리는 성과 관련된 네 가지 입장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것은 아무래도 극단적이지 않은 󰡐온건한 보수주의󰡑󰡐온건한 자유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적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 두 입장에 대해 보다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3. 쾌락을 위한 성, 사랑을 위한 성

일반적으로 사랑이란 어떤 한 사람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고 보살피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성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할까, 혹은 무관하게 성적 쾌감 자체를 위해 행해져도 무방한 것일까?

 

. 쾌락을 위한 성 : 온건한 자유주의

성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흔히 성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경직된 태도, 즉 사랑과 관련되지 않은 성은 저급한 쾌락에의 탐닉 행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을 비판한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성은 (사랑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상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단순한 이끌림, 관심, 호감, 우정의 표현일 수 있으며, 상호간의 욕구와 동의에 입각한 신체적 호응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을 사랑과 같은 심각한 어떤 것과 굳이 결부시킬 필요가 없으며, 또한 그것이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킨다거나 타인을 수단화하는 것으로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쾌락과 만족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랑과 무관한 성이 사랑과 관련된 성보다 더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후자가 책임과 헌신이라는 부담감을 수반하는 데 비해, 전자는 부담 없이 보다 새롭고 다양하고 낭만적인, 따라서 더욱 큰 즐거움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성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 프로이트(S. Freud)의 견해를 폭 넓게 수용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좋은 것이고, 오히려 성적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정신 분열증이나 우울증을 유발하는 나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보다 넓게 적용한다면 이른바 도색물(독자나 시청자에게 성적 자극이나 쾌락을 유도할 목적으로 신체의 특징 부분 또는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보여 주는 매체)도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성적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한때 미국에서는 (70년대 미국의 도색물 심의 위원회) 도색물이 유해하기는커녕 많은 부부들의 성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부모 자식간에 성에 대한 격의 없는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리기도 하였다.

 

. 사랑을 위한 성 : 온건한 보수주의

한편 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볼 때, 성은 단지 생물학적 성질(자연적 본성)의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체성, 즉 인간의 생각, 감정, 의지 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생물학적 성질이 성취, 욕구 충족, 생식, 쾌감 등과 관련되다면, 인간의 전체성은 책임감, 수치감, 가치감, 인간 존엄성 등의 윤리적 측면과 관련된다.

 

이러한 두 차원, 즉 생리적 영역과 인격적 영역은 한 인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극단적인 성 해방을 주장하는 자유 연애주의자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식의 문란한 성 생활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이 단순한 생리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는 성적 수치심 역시 성이 지닌 윤리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성적 수치심은 단순히 습관이나 학습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지닌 본래적인 감정으로서 󰡐단순히 본능적인 존재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하나의 자연적 방어력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적 수치심은 성적 성숙과 더불어 생겨난다. 이것은 타인과 거리를 두어 자신을 성적으로 방어(보호)하고 억제함으로써 새로운 방법으로의 결합을 예비(결혼할 때 깨끗하게 증여할 가치를 적립)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성행위는 남녀가 서로 자신을 증여하는 헌신적인 영육(靈肉, 영혼과 육체)의 표현이며 상호 완성에 이르기 위한 행위가 된다. 그것은 처음부터 자제와 헌신과 같은 윤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행위는 결코 자기 중심적인 것이거나 쾌락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입장에서 도색물은 단호히 비판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성욕이라는 자연적 현상에 기대어 상업주의적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의 육체를 성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왜곡되고 비하되기 때문이다. 결국 도색물의 만연은 성의 참된 의미와 인격의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문화의 쇠락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성 윤리의 문제를 성적 쾌락과 사랑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보았다. 어차피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각자의 신념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정립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제 성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고 성적 쾌락이 음성적으로만 행해졌던 시대는 이미 흘러갔다. 따라서 이 시대에 다시금 전통적 성 윤리를 외치는 것은 무모한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서구 문물을 뒤쫓아 무분별한 외설을 용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런 때야말로 우리의 비판적 윤리 의식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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