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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와 이큐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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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와 이큐

정 진 경(충북대교수, 심리학, 한겨레신문)

 

 

 

초등학교의 한 어린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은 지가 두어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고등학교 학생 두명이 성적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여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고 한다.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으랴. 우리 사회에는 언제 부턴가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끊이지를 않는다.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번에 죽은 아이들 중 하나는 일이등을 다투었다니 그의 자살은 `성적 비관'이라기보다는 `성적 걱정' 또는 `성적병'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 겠다. 정도의 차이는 있되 이런 성적병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의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퍼져 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심해진다. 그들에게 성적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예측하게 해주는 지표다. 대학을, 그것도 일류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사회적으로 대우 받으며 살기에 유리한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장기적인 인생의 전망이 흐려져서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은 이제 맹목적인 추구의 목표가 되었다.

 

학교 파하고 학원에 갔다 밤 10시 반이 되어서야 집에 와 그때부터 숙제하고 잠자리에 드는 초등학교 아이가 󰡒아직도 공부하는 애들도 있는데 나는 벌써 자서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을 하고, 중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는 부모가 해외지사에 나가게 되니까 자기는 외국 갔다 오면 성적이 떨어지니 여기 남겠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런 모범생, 우등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 인생이 과연 행복한가 하는 의문이다. 유아기부터 18살까지 를 시험과 성적에 저당잡혀, 삶이 제공하는 풍요로운 맛과 다양한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연 아이들이 할 일인가? 해질 때까지 뛰어놀고 만화에 빠지기도 하다가, 크면서 소설에 맛들여 밤을 새우고 여행 궁리에 가슴 설레는 성장과정에서의 평범한 행복들을 그들은 어떻게 자발적으로 대학 갈 때까지 유보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정신 건강검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4분의 1 정도는 심리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나온다.

 

성적병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경쟁심리이다. 성적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핵심은 등수이며, 남을 눌러야 내가 올라가고 내가 붙으려면 남이 떨어져야 한다. 같이 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유아기부터 주변 사람들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면서 자라난 사람들은 협동하면 쉽게 풀릴 문제를 놓고 경쟁으로 치달아 모두가 손해를 보기 쉽다.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행복하게 사는 재주인 `정서적 지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대중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정서적 지능이란 글자 그대로 정서적으로 얼마나 똑똑한가를 말하는데, 자신의 감 정을 이해하고, 남들과 공감할 줄 알며, 행복한 삶을 이루는 방향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인지적 지능을 아이큐로 널리 부르는 것에 준하여, 정서적 지능을 편리하게 `이큐'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정서적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낙천적이며 어려움이 닥쳐도 기가 죽지 않고, 모험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인관계에서는 남들의 감정에 민감하고 그들과 잘 공감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사람을 누군들 좋아하지 않으랴. 이들은 인기가 좋고 남

들의 협조를 잘 얻어낸다. 인지적 지능과 정서적 지능은 직접적인 상관은 없으나, 인지적 지능이 비슷하다면 장기적으로는 정서적 지능이 높은 사람이 더 높은 성취를 이루게 된다. 정서적 지능이 소질과 재능이 시들지 않고 활짝 꽃필 수 있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은 인지적 지능이 아니라 정서적 지능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도 생겨났고, 학교에서 정서적 지능을 함양하는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영국의 유명한 실험학교 서머힐의 교육 목표는 아이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한다. 심리학 용어로 바꾸면 정서적 지능을 계발하는 것이겠다. 그 학교 졸업생 중에는 목수도 있고 수학자도 있는데, 자신 들의 일을 좋아하고 삶의 과정을 즐기며 사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려면 어른들의 정서적 지능부터 높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아버지의 육아관을 듣고 감탄하여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성공하기 위해서 지금 싫더라도 참고 무엇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며, 인명은 재천이라 아이들이라 해도 교통사고도 많고 별별 일이 다 있는 이 세상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 다음만 위해서 살라고 하겠느냐고 했다. 지금 그 아이가 자발적 호기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을 하게 두고 세상을 스스로 경험할 여지를 주며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훌륭하게 행동하도록 격려하면서, 바로 지금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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