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축제로 본 대학 문화의 새길 찾기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축제로 본 대학문화의 새길 찾기

(한겨레21/ 1996.5.22)

 

 

: 󰡒축제의 주제 항목중에 󰡐민주주의󰡑가 들어 있던데 무슨 뜻이죠?󰡓

 

: 󰡒민주주의하면 󰡐대화와 타협󰡑을 핵심으로 하는 것, 민주시민하면 󰡐질서를 잘 지키는 시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런 기준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서죠. 민주주의는 억압과 배제를 넘어서는 사상의 자유가 그 핵심이라는 게 우 리의 생각입니다.󰡓

 

: 󰡒그건 이미 오래 전에 끝난 논쟁거리인데, 그런 초보적인 논쟁이 지금 왜 필요하죠? 󰡓

 

: 󰡒초보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어요. 이를테면 󰡐투표행위나 합리적 질서 속에서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야지 왜 길거리를 막고서서 폭력적으로 시위를 하느냐, 그건 너무 비민주적인 행태가 아니냐?󰡑는 힐난에 자주 부딪히다보면 도대체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초보적이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어요. 최근 몇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누구나 실감했겠지만, 투표행위라는 게 사실상 최악과 차악중 누구를 고를 것인가가 아닙니까. 그 게 민주주의입니까.󰡓

 

축제를 기획한 한 대학 총학생회 간부와 기자의 대화 내용중 일부다(가는 기자, 나는 학생회 간부다).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상아탑

그러면서 그는 96년 봄 한국의 대학사회가 딛고 있는 난해한 지형을 이해 할 수 있는 잣대 하나를 제시했다.󰡒󰡐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라는 구분법이 있다. 상식대로라면 옳으면 좋아야 하는데, 또래의 대학생중 상당수가 그 상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80년대 내내 󰡐침묵하는 다수󰡑라 불렸던 그들은 지금 전혀 거리낌없이 이야기한다. 󰡐니 얘기는 옳지만 그래도 나는 싫다.󰡑그리고는 끝이다. 더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작하는 것이다. 󰡐옳은데 싫은 이유는 무엇인가󰡑, 󰡐거리시위와 집회를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라 비판하는 너의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자유인이자 상식인양 하는 너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등을 묻고 싶었다.󰡓

 

한 사회가 가는 길이 궁금하거든 눈을 들어 청년을 보라 했던가. 96년 봄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가.

 

대학문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대학축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지난 514일 낮 서울 관악구 국립서울대학교 정문. 거대한 철골 구조물인 정문에 일단의 학생들이 걸개를 얹고 있다. 걸개에는 󰡐LET󰡑S OFF SNU󰡑라 쓰여 있다. 서울대를 벗어나자? 서울대를 꺼버리자?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열렸던 서울대 봄대동제인 󰡐대학제󰡑의 모토다. 󰡐서울대 를 꺼버리자󰡑는 말은 무엇이고 󰡐대학제󰡑란 또 무슨 뜻인가.

 

좀더 걸어들어가 보자. 길디 긴 진입로의 하늘에는 파란 플래카드가 줄지어 걸려 있다. 󰡒불꺼진 방, 불꺼진 아궁이, 생산의 힘을 잃어버린, 불꺼진, 불임의 공간, 대학. 그리고 질문 하나. 당신에게 대학은 4천만원짜리 졸업장, 그 이외의 무엇인가?󰡓플래카드에 적혀 있는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젊은이들은 왜 그들의 삶의 터전인 대학을 󰡐불임의 공간󰡑이라 자조하는가.

 

 

허위의 철옹성을 파괴하는 몸부림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대학은 이 땅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지탱해 왔을 뿐이다. 지식인, 그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에게도 진실이 아니다. 허위의식이 걷혀진 대학, 그곳에 남는 것은 앙상한 상품관계, 패배자의 피를 담뿍 머금고 굴러 가는 경쟁의 수레바퀴가 아닌가. 지우고, 꺼버리자시선을 벗어난 삶.

유일한 정치로 미화되는 의회를 통한 정치를 거부하고 민중의 바로 곁에서 거리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 언론을 통해 퍼부어지는 님비의 오명을 뒤집어 쓰며 핵을 반대하는 이들, 이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성적 소수자들, 그들의 삶은 주류의 시선을 꺼버린 공간에 비로소 존재한다. 지우고, 끄고, 파괴해 버리자삶과 운동의 무의식을 유영하며 우리가 들어야 할 대답은, 대답은? 다시금 그것은 당신은 살아 있는가 라는 질문.󰡓 그들이 이해한 󰡐대학제󰡑란 전면적인 자기부정과 다름없다. 다소 감상적인 어조를 띤󰡐일체의 권위와 억압을 넘어 달라지겠다󰡑는 그들의 몸부림은, 축제에서 어떤 양태로 구체화됐을까.

 

󰡐대학제󰡑의 깃발은 전야제를 여는 게릴라극으로 올려졌다. 󰡐권위와 억압, 배제󰡑로 점철된 지배질서의 철옹성에 파열구를 내기 위한 연습이라는 게 기획자들의 설명이다. 축제 첫날인 14일 환경퍼포먼스로 개막제 식전행사를 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게릴라의 퍼포먼스󰡑15, 16일 사상의 자유를 짓누르는 모든 영역에 걸친 검열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몸짓하는 󰡐검열반대 10종 경기󰡑로 이어진다. 󰡐탈주󰡑 또는 󰡐전복󰡑같은 개념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90년대적 사고방식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처럼 온세상을 지배하는 󰡐소비자본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지난한 몸부림과 다름없다. 󰡐성에 관한 한 우리 모두는 파시스트다 !󰡑라는 구호 아래 14,15일 열린 이반영화제(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모음제)나 서울대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마음 003󰡑의 토론회 같은 󰡐성정치󰡑를 내건 프로그램들은 기획자들의 말에 따르면, 󰡐주류 사회의 시선󰡑 밖에 밀려나 있던 소수집단의 고통읽기를 위한 것의 일종이다. 그를 통해 철옹성 같은 지배질서에 파열구를 내거나 숨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건 󰡐해방과 혁명󰡑의 깃발이 나부끼던 80년대의 대동제와는 엄청 다른 모습이다. 마당극과 노래극, 대동굿, 그리고 이어지는 대규모 거리시위로 상징되는 80년대의 대동제 풍경을 찾아볼 수 있는 대학축제는 이제 대한 민국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이 자체로 󰡐옳다󰡑거나 󰡐그르다󰡑고 평하는 것은 과도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의 모험적인 변화 시도에서 모종의 󰡐혐의󰡑를 느낄 수 있다거나 󰡐좀 위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대학 안팎에 널려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복저항을 위한 접점 찾는다

축제를 기획, 주도한 서울대 문화국장 김종한(22국문4)씨는 󰡒우리의 시도에 󰡐혐의󰡑를 두는 시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시선이 부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외줄타기 같은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 총학생회 문화기획국의 한 간부도 󰡒지금 대학사회는 소비자본주의의 문화에 깊이 침윤돼 있다󰡓면서 󰡒대동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문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명원창(22교육4)씨의 말은 이렇다. 󰡒문제는 총학생회로 상징되는 이른바 󰡐운동권󰡑과 일반학우 사이의 반목이나 갈등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행복한 시절 얘기다.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들의 반발은 먼저 무관심으로 행동화되고 있다. 이 점을 무시하고는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96년 봄 대학축제는 대중문화에 침식당한 대학사회, 크고 굵은 사회적 쟁점에 무관심한 학생들을 전제로 그 사이에서 󰡐전복󰡑󰡐저항󰡑을 위한 접점찾기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축제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또하나, 90년대 대학사회에 팽배한 인식은󰡐화석화된 80년대 저항정신󰡑에 대한 반발심리다. 󰡒80년대를 회고조로 더듬는 시나 소설이 밀리언셀러가 되고, 김문수씨 같은 80년대를 풍미했던 노동운동가가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 되는 현실은 󰡐80년대의 저항정 신󰡑이 이미 화석화됐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화석화된 저항정신은 익히 알고 있듯이 지배계급의 이해에 봉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태풍처럼 밀려오는 소비자본주의의 󰡐참을 수없이 가벼운 문화󰡑와 변절일로를 달리고 있는 80년대 정신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90년대 젊은이들은 󰡐전복󰡑󰡐일탈󰡑을 꿈꾼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빠지지 않고 새로운 메뉴로 등장한 록음악 관련 프로그램은 그 단적인 예다. 󰡐부활, 그 이름으로󰡑라는 모토로 대동제를 치른 연세대의 󰡐혼재, 대화 그리고 공존󰡑이라는 노래공연이 대표적이다.

 

󰡐록의 탄생과 이란성 쌍생아-민중과 대중사이에서-전사와 게릴라의 대화 -마무리󰡑 4부로 구성된 이 노래공연은 부활과 천지인 등 록그룹과 꽃다지, 희망새 등의 민중 노래패, 권진원, 패닉 등의 대중가수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혼돈에서 대화를, 그를 통한 공존󰡑의 방식을 모색한다. 록 그룹과 국악, 서양 고전음악, 현대무용 등을 한 무대에 올린 한양대의 󰡐 크로스오버󰡑공연도 󰡐Break the wall󰡑을 구호로 내걸고 새로운 길찾기에 나섰다. 성균관대의 󰡐록콘서트󰡑나 서강대가 국내 대학중 최초로 시도한 󰡐록페스티벌󰡑 등도 󰡐저항정신󰡑의 복원을 위한 시도의 한 예다.

 

 

록음악은 저항의 무기가 될 것인가

현상적으로는 60년대 서구에서 저항적 청년문화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록 음악이 90년대 대한민국에서 저항적이고자 하는 대학사회의 󰡐호명󰡑을 받은 셈인데, 그 호명의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연세대의 󰡐혼돈, 대화 그리고 공존󰡑의 기획자들이 록음악이 태생적으로 저항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식된 이질적 장르임을 명백히 하고 싶다󰡓면서 록을 󰡒습격당한 장르󰡓라 규정하는 조심스러움을 보이는 반면 서강대의 󰡐록페 스티벌󰡑은 록을 90년대적 저항의 유력한 저수지로 이해한다. 그런 혼란 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성균관대 총학생회가 󰡒젊음으로 반란을 도발하자 󰡓며 마련한 록콘서트에 대해 한 학생이 󰡒학생회비를 꼬박꼬박 내는 게 아까웠는데, 이번에는 유명한 록그룹의 노래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아깝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데서 드러나듯, 기획과 수용 사이에는 멀고도 험한 간극이 존재한다.

 

무관심한 일반학생들을 향한 총학생회쪽의 손내밀기의 비극적인 모습은 번지점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건국대 충주교정과 용인대에서 축제 기간 동안 번지점프 행사중 두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발생해 다른 대학에서는 대부분 취소되기 했지만,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번지점프가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 대학 총학생회 간부는 󰡒축제는 즐거워야 하지만, 대학축제가 단순히 잘 놀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번지점프는 60년대 대학축제 기간중의 쌍쌍파티의 90년대적 변종에 불과하다. 도대체 그게 대학문화의 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침묵하는 다수󰡑는 흥겨운 프로그램을 찾아 움직인다.

 

학우들을 찾아 나서는 총학생회의 발걸음은 다양하다. 연세대처럼 󰡒모든 학우들이 축제에 주체로 참여하게 하기 위해 학과별 행사를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한다는 조건을 달아 강제󰡓하는 것이나, 성균관대 같이 󰡐일탈과 자유(15), 저항(16), 연대(17)󰡑로 주제일을 정해 다함께 󰡐일탈에서 연대까지󰡑 연습하기를 실행하는 것 등은, 이를테면 󰡐90년대적 하방󰡑이다.

 

 

󰡒죽은 정신을 땅에 묻어버리자󰡓

소비자본주의의 꽃, 대중문화와 󰡐일탈과 저항, 전복󰡑의 새길 찾기가 날카롭게 부딪히는 96년 대한민국의 대학교정에서 미아가 된 젊은이들은 󰡒죽은 정신을 땅에 묻어버리자󰡓고 절규한다. 그 끝에 그들의 바람대로 󰡐주류질서의 전복󰡑이 있을지, 아니면 소비자본주의에 목졸림당한 주검이 널브러져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이 즐겨 인용하는 브레히트의 말처럼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도전과 모험에 덧씌워진 󰡐혐의󰡑는 그저 유보될 수 있을 뿐 이다.

 

농담(?) 한마디. 그런데 왜 올해 대학축제 프로그램에서는 노동이나 빈민, 농민, 인권과 관련된 행사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일까. 눈이 나빠서일까.<이제훈 기자

 

 

 

김종한 서울대 총학생회 문화국장 인터뷰

(한겨레21/1996.5.22)

 

서울대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특이하게도 󰡐대학제󰡑라는 이름을 걸고 봄대동제를 열었다. 󰡒서울대특별법 제정 기도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 특권의식, 학벌주의, 학력주의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 했다. 대다수의 학우들도 서울대특별법 제정에 비판적이다. 우리는 이제 󰡐대학󰡑으로 상징되는 지배질서에 복종하는 지식인들, 더 나아가 무차별적 경쟁 강요로 대학사회를 기계공장으로 만들려는 지배집단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슴에 품고 있다. 대학제는 그 절박함의 산물이다.󰡓 혼돈의 와중에 휩싸여 있는 96년 대한민국 대학사회의 고민을 가장 정형화된 형태로 제출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대학교 󰡐대학제󰡑를 주 도한 서울대 총학생회 문화국장 김종한씨를 지난 514일 총학생회실에서 만났다.

 

-󰡐대학제󰡑인가.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서울대특별법 제정 방침은 이미 위계질서화된 현재의 교육구조를 전문화 다양화 특성화라는 논리로 고착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개혁이라는 것도 대학을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한 인재개발 󰡑의 도구로 삼으려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은 그런 곳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무한경쟁과 지배질서에의 복종󰡑에 가두어놓은 굴레를 벗어

던지고 힘차게 달려나가자는 뜻에서 󰡐대학제󰡑를 제안한 것이다.

 

-대학제는 얼마 전부터 대학가에 불기 시작한 󰡐2대학󰡑과 어떻게 다 른가.

=2대학은 좀 거칠게 말하자면 보수적인 현재의 대학교육방식에 맞설 수 있는 진보적인 강좌를 마련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대학󰡑으로 상징되는 지배질서는 대학사회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회 전체에 팽배한 권위와 억압, 배제의 덮개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시작한다󰡑는 뜻에서 대학을 내건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학제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80년대와 90년대는 전략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가 내세우는 󰡐전복󰡑은 비대칭성을 추구한다. 그것은 지배질서에 대립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침투해 있는 지배이데올로기에 파열구를 내고 그 구멍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의 시도는 수세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선 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비정상 또는 비상식적, 병적이라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볼 작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인식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이제훈 기자>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