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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리송한 세계화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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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리송한 세계화

고 승 철

 

 

팔십년대 초에 이상한 나라, 한국이라는 책이 프랑스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이책의 저자는 이해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의 여러 모습을 적어 놓았다.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서로 돈을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남자들, 논밭을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부모. 그 책의 저자가 요즈음에 한국에 오면 세계화라는 구호가 요란한 것을 보고 또 이것을 두고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이다. 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다 못해 우스울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라면 안 걸리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지난 시월 십일에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화 추진 위원회 보고회 내용을 살펴보자. 내년부터 지역 실정에 맞춰 온천 이용세, 관광세 들을 새로 걷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행정 고시와 외무 고시에 응시하는 여자에게는 삼에서 오 퍼센트의 점수를 얹어 주겠다는 방침도 있었다. 이런 것이 세계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지방 토착 시설과 명승지의 관람료와 주차료를 현지 주민과 객지 주민을 구별해 달리 받는다고 하는 계획도 발표됐다. 이것이 세계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시드니에서 뱉은 대통령의 한마디

 

세계화란 말이 갑자기 널릴 퍼진 배경을 추적해 보자. 지난해 십일월 십칠일 김영삼 대통령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이른바 시드니 선언을 발표했다. 세계화를 국정의 새로운 목표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가 나가자마자 무엇이 세계화냐?”, “세계화와 국제화는 어떻게 다르냐?” 하는 물음이 국민들 사이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 질풍노도처럼 퍼져 가던 국제화라는 말이 대통령의 세계화란 말 한마디에 종적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총리실엔 국제화 추진 위원회 사무국이란 조직이 엄연히 있었고 사무실 입구엔 큼직한 현판도 걸려 있었다. 국제화 추진 위원회는 지난해 삼월 팔일에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발족했었다. 그러께 십일월에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에이팩) 정상 회담에 참석한 뒤에 김 대통령이 여러 자리에서 국제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김 정원 전 주미 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화 추진 위원회의 위원으로는 각계 저명인사 열네명이 위촉됐었다. 이회창 국무총리는 국제화는 경제뿐아니라 교육, 문화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 말했다. 김 위원장도 국제화는 일종의 개혁이며 의식 구조를 국제 현실에 맞게 뜯어고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화 추진 위원회는 발족한 뒤로 제법 왕성한 활동을 했다. 열 개 과제를 골라 지난해 말까지 국제화의 개념과 그 기본 방향, 국제화를 저해하는 언어 문화 장벽, 교육 국제화, 국제화 의식함양 해서 네 개 과제의 연구 결과를 국무총리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국제화의 전략 개념을 국제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각주에서 단서를 달았다. 국제화라는 개념은 다소 시사적이므로 일정한 정의가 어렵고 굳이 절대적인 공용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국제화의 기본 방향으로는 첫째로 개혁을 꼽았다. 그리고 개혁은 사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 사회, 국가가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제화 추진위원회가 연구하기로 한 나머지 여섯 개 과제는 행정 국제화, 국제화 시대의 한국 외교, 법질서 확립, 정보화 사회 이행, 언론 국제화, 경제 국제화들이었다. “국제화라는 명분만 내걸면 국정 어느 곳에도 손을 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화 선언을 터뜨린 진짜 이유

 

거창한 이름으로 출범해서 야심찬 연구 과제를 발표했던 국제화 추진 위원회는 세계화라는 강적을 만나 소리도 없이 사라진 셈이다. 일년 만에 왜 갑자기 국제화에서 세계화로 바뀌었는지의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분석가들은 김 대통령이 국가 경영의 장식용 이데올로기로 이를 주장하지 않았나 하고 추정하고 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언론학)는 최근에 나온 저서 김영삼 이데올로기에서 세계화 천명은 국내용이었다고 주장했다. 집권 직후에 나타난 구십 퍼센트 안팎의 지지도가 사그러들자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던 터에 해외에서 느닷없이 세계화 선언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사회 과학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내영 박사(정치학)계간 사상올해 봄호에서 한국정치권 내에서는 세계화가 한국 정치에 던지는 도전이 무엇이고, 왜 세계화를 위해 정치 개혁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없이 단지 구호로서만 정치의 세계화, 선진화가 제기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집권자는 흔히 통치 수단으로 국정지향 목표를 내세운다. 과거 육십년대, 칠십년대엔 잘 살아 보자는 것이 통치 이념이었다. 팔십년대에 접어들어선 정의 사회 구현또는 선진 조국 창조였다. 이렇듯이 통치자가 앞장서 국정 목표를 외치면 국민들은 대개 이에 반대할 여유도 없이 소극적으로 따라가는 수가 많다. 국민들이 비판할 인식 논거를 갖지 못하는 것은 통치자의 논리를 대변해 주는 언론 매체의 왕성한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 활자로, 영상으로 통치자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지원 활동을 펼치니 이를 수용하는 국민들은 비판 의식을 가질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일부 지식인들과 청년층만이 미디어의 일방적인 전달을 거부할 뿐이다.

 

 

우왕좌왕하는 언론

 

김 대통령의 세계화 추진 구상이 밝혀지자 이제는 세계화의 개념을 정립하느라 한 바탕 무성한 논의가 벌어졌다. 국제화나 세계화나 다 비슷한 개념인 것 같은데 무엇이 다르냐는 지극히 기본적인 물음이 쏟아졌다. 각 언론 매체에서도 그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지난해 이 무렵 곧 십일월 이십구일에, 조선일보는 세계화는 말이다.”는 주제의 연재물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의 일관된 논리는 세계화를 이루려면 국제 언어인 영어를 잘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리즈의 제목을 살펴보면 얼른 이해할 수 있다. “영어 조기 교육이 국민 경쟁력”, “중국 국가 구호 결사적 영어 교육’”, “홍콩, 영어 모르면 취업 불가능”, “일본, 외국인 교원 초빙 집중 투자”, “태국, 세계 주요 방송 안방 시청”, “말레이시아, 이공대 영어 강의 의무화”, “국교부터 생활 영어 가르치자들이 그것이다.

 

이 연재물은 세계화의 의미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의 초점을 측면에만 맞추었다. 그러나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그러니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을 경제적 필요성에 둔다면 곤란하다 할 것이다. 이렇게 편협하게 생각해서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의 사고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불문학자 정 명환 교수로부터 필자가 학창시절에 들은 강의 내용이 기억에 떠오른다. “외국어를 도구로 여기면 잘못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자기와 다른 사고 방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다양성의 인식을 얻는 것이지요. 일본인이 프랑스에 가서 당신은 학처럼 아름답다고 칭찬했더니 그 여자는 몹시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짓더랍니다. 왜냐구요? 학은 일본인에겐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불어로는 매춘부를 뜻하지요. 외국어를 배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 문화 전통을 상대화시키게 되고 다른 나라의 세계관과 상징 체계를 배우게 됩니다.”

외국어를 익히는 목적이, 정교수의 주장대로, 적어도 이런 차원 높은 곳에 바탕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모든 사람이 이처럼 진지한 자세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앙고라라는 토끼?

 

소설가 복 거일 씨의 기발한 발상은 종종 잠든 의식을 일깨우곤 한다. 그이는 구십이년 여름 책의 미래라는 주제로 춘천에서 열린 어느 심포지엄에서 영어가 일상 언어로 세계어 구실을 하는 미래를 예견했다고 한다. 영어를 제외한 대다수 언어는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연재물에 나타난 영어의 필요성이 극단적으로 강조되고 미국의 힘이 계속해서 온 세계에 미칠 수 있게 된다면 복 거일씨가 본 미래의 모습이 터무니없는 허구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한해 동안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국인 유학생 여럿을 만났다.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에서 명문 대학에 다니다 온 학생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국 바깥 세계의 상식이 너무나 모자란 학생이 수두룩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온 유학생이 있었다. 어느 한국인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인 학생은 앙골라가 나라 이름임을 모르고 있었다. “앙고라라는 이름의 토끼로 머리속에 연상되는 모양이었다. 앙골라 학생에게 몇 차례 국적을 물어도 자꾸 앙골라라고 대답하자 한국인 학생은 농담하지 말고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이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학생 거개가 미국이나 유럽 각국 말고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한국에서는 학교 교육에서 세계사 과목이 푸대접받고 있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배운 학생들이니 열린 세계를 보는 눈이 좁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한 언론의 그럴싸한 설명

 

중앙일보도 지난해 십일월 이십구일부터 세계화, 이제는 실천이다.”라는 주제 아래서 연재물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연재물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열린 마음부터 가르치자”, “국제 협상 대표단, 우리만 남성 독차지”, “친절 몸에 배야한다.”, “값싼 애국심은 안 통한다.”, “외국인이 갈 만한 식당이 적다”, “배타성, 이젠 버려야 한다.” 들이다.

 

좋은 지적이다. 그러나 연재물 전반에 걸쳐 한국 국민들을 너무 질타하는 바람에 읽고 난 한국 사람으로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일제 시대 때에 일본인들이 즐겨 쓰던 한국인의 국민성을 지적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열등하다는 자아 비하 의식을 암암리에 조성하도록 하려고 일본 지식인들이 교묘하게 조작한 개념이 국민성아니더냐.

 

개념이 혼동되는 가운데서도 중앙일보 전문위원인 김 정수 박사는 명쾌한 설명을 했다. 김 박사는 세계화는 원래 기업 경영이 세계 경제를 겨냥할 때를 두고 사용하는 말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새로운 모습을 세계화로 그려내려면 과거와는 다른 더 넓은 의미로 봐야 한다. 그 개념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한 나라의 힘과 생각이 밖으로 미치는 범위와 강도 곧 세계성과 적극성으로 가늠할 수 있다. 선진화, 국제화, 세계화는 한 단계가 끝나면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식으로 진행되기보다는 함께 벌어지는 수가 많다. 한 나라가 사람을 제일로 보고 효율을 높이려고 애쓰는 것을 선진화라 하면 국제화는 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나라들이 경쟁 속에서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보다는 더 적극적인 세계화는 한 나라가 속해 있는 지구촌이 잘되는 것이 그 나라가 잘 사는 길이란 이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문민 정부의 국가 경쟁력 타령

 

김 박사의 설명을 들으니 세계화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올해 총 대통령 비서실에서 펴낸 대통령의 세계화 구상이란 홍보 자료를 읽어 보면 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이 자료는 국제화를 국가가 중심이 되어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주로 무역이나 경제에서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그 반면에 세계화는 국가뿐 아니라 지방과 지방, 기업과 기업, 국민과 국민 사이의 교류가 급속히 증대되는 세계화 시대의 국가 발전 전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에 동참하기 위해서 스스로 존재 의의를 축소시켜야 할까? 이는 문민 정부가 툭하면 내세우는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말과 상치되는 것이 아닐까? 서로 뒤죽박죽이 된다. 실제로 경실련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이 강조하는 세계화의 뜻을 아느냐?”는 질문에 삼십사 퍼센트만이 알겠다고 응답했다. 그나마 그 절반쯤은 세계화를 정부에서 강조하는 국제 경쟁력 강화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동 문제 연구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경남대 이 수훈 교수가 발표한 최근 세계화 담론에 관한 한 논평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교수는 여기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는 세계 체제의 상층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그 상층부를 위한 프로그램인 것 같다. 대체로 세계인구의 상층 오분의 일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세계화 전략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역 계층간 격차 해소를 위한 일체화를 내걸긴 했지만 그것은 구색 맞추기용인 것 같고 여전히 일류화 논리가 압도적이다. 이것은 철저한 적자 생존의 논리이자 엘리트 논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게임의 성격상 우리 모두가 일류, 일등이 될 수 없다. 일류가 있으면 당연히 이류, 삼류가 있다. 일류는 소수일 수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수다. 이 다수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소가 웃을 일

 

새해에 들어 일월 십삼일에 공보처는 세계화 지표 연구라는 홍보 책자를 내 놓았다. 여기서 이천이십년까지 세계에서 다섯 번째의 세계화 수준에 도달한다는 목표와 그에 따른 전략을 제시했다. 그때 가면 한국의 세계화 수준이 프랑스와 영국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과 제도, 인적 자원, 집행과 운영, 의식과 관행의 세계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이런 것들을 겨우 이십오년 만에 고칠 수 있겠나?

필자는 우리 국민이 왜 통치 계층의 그런 일방적인 구상에 따라 허겁지겁 따라가야 하는가 하고 우려한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무모한 경쟁, 대결, 갈등 들을 지양하고 인류 공통의 보편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이 아닐까?

 

프랑스에서 사년 가까이 사는 동안에 가까운 독일,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지에 여러 차례 가 봤다. “유럽 정신은 이성에 바탕을 둔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질서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인간 이성이 처절하게 말살 되었던 암울한 중세를 거쳐 계몽 사상의 횃불 아래에서 뭉친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열정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프랑스 민중의 뜨거운 피가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가는 바퀴가 됐다. 그이들은 이십 세기에 들어 처참한 양대 세계 대전을 경험하면서 전쟁을 통해 인간 이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자각했다.

 

계몽 사상가들의 특징으로 박식함과 넓은 견문을 들 수 있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디드로 해서 프랑스 계몽 사상가들은 온 유럽을 여행하면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라는 저서에서 유럽은 이제 기독교적 문명을 기준으로 다른 세계를 야만시하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테르의 서재엔 공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을 정도였다.

 

 

자기 잘못부터 인정할 줄 알아야

 

일본이 경제 대국이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세계화가 덜 이뤄졌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정도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정의가 될 것이다. 일본은 세계대전을 철저히 반성할 줄 모른다. 교과서에도 자기들의 반역사적 행위를 제대로 기술하지 않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서양문물을 도입하면서 주로 기술, 제도 같은 외형의 것에만 유념을 했지 합리성에 바탕을 둔 정신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하기야 서구에도 비이성적인 정책 결정자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가 적지 않다. 국수주의 논리를 가진 지도자들은 제국주의 깃발을 펄럭이며 식민지 쟁탈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제국주의자들도 다른 나라 사정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로는 계몽 사상가나 마찬가지였다. 그이들은 여행가, 선교사들이 쌓아놓은 대상국 정보를 침략의 도구로 삼은 것이다.

독일은 두 차례에 걸쳐 세계 대전을 일으킨 과오를 두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 다음 세대에게도 조상의 죄과를 감추지 않는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에 나치 희생자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일본의 뻔뻔스런 태도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나라가 세계화된 나라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일본은 아직 뒤지는 나라다. 한국은 일제 잔재의 청산뿐 아니라 오일육쿠데타에 대한 청산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최근의 오일팔에 대한 정리도 시점과 동기가 명쾌하지 못한 면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제이차 대전 뒤로 민족 정기를 바로 잡으려고 독일에 부역한 사람을 엄정히 수사하고 재판으로 단죄했다. 제일차 대전에서 독일군을 물리친 전설적인 장군 페탱 원수도 독일 점령 기간에 독일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사회 기강이 바로 잡히지 않고는 선진화, 세계화는 이뤄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 편협한 민족주의이다. 이것이 기승을 부리면 인류의 평화는 또 다시 위협받게 된다. 실제로 옛 유고 연방에서 벌어진 처참한 살륙전에서 우리는 광란적 민족주의의 부작용을 읽을 수 있다. 옛 소련 땅에서도 이런 조짐이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세계화는 개방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미래의 열린 사회에서 인류사 발전에 기여하려면 좀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주로 수출 경쟁력을 키우려고 그런다는 듯이 어정쩡한 세계화를 부르짖어서는 곤란하다. 국내 정치용으로 이런 거창한 구호를 외쳐서도 안된다.

 

(고승철 ; 경향신문 경제부 차장. 그 신문의 파리 특파원이었다. 군사 정부 시절의 구호처럼 귀걸이로, 코걸이로 쓰이는 세계화를 보며 씁쓸한 감회를 누를 길 없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샘이 깊은 물 19951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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