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늑대는 늑대, 멧돼지는 멧돼지인가?(‘철학에세이’에서)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늑대는 늑대, 멧돼지는 멧돼지인가?

(‘철학에세이에서)

 

 

TV프로그램중에 동물의 생태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프리카의 밀림에 살고 있는 동물에서부터 시베리아의 추운 지방에 살고있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 있는 여러가지 동물이 나옵니다. 그중에는 풀을 뜯어먹고 사는 초식동물도 있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 동물도 있습니다. 호랑이나 사자, 늑대같은 것들이 바로 육식동물이지요.

 

그런데 사나운 육식동물, 이를테면 사자가 순하디 순한 기린같은 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게 되면 언뜻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사자나 표범,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이 없다면 저 약한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약한 동물의 팔다리가 뜯겨지는 끔직한 장면을 보게 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자나 호랑이, 표범 등과 같은 육식동물이 없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 농촌지역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주로 밭농사를 지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주위에는 산이 많아 산짐승이 많았습니다. 특히 멧돼지와 늑대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늑대는 밤이면 마을 주변에 자주 나타났기 때문에 그 지역의 주민들은 어두워지면 외출을 삼가하고 꼭 외출을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무리지어 다니곤 했습니다. 해만 지면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은 서로 협의를 하여 늑대 사냥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을의 남자들은 총을 구입해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보이는 늑대마다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몇일간을 이렇게 하니까 많은 늑대들이 잡혔고 또한 살아남은 늑대들도 다른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하여 지역 주민들은 이제 밤에도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들이 농사를 짓는 밭이 파헤쳐져 있고 농작물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장난을 했으려니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또한 한 집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집이 그러했습니다. 곧 지역주민들은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밭을 파헤치고 농작물을 가져간 것은 다른 사람의 장난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의 짓이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잡고 쫓아버리고 해서 늑대가 없어지자 멧돼지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왜냐하면 멧돼지를 잡아먹고 살던 늑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멧돼지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멧돼지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졌습니다. 옛날처럼 산에서 나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멧돼지들은 인가에 내려와 농작물을 파먹으면서 밭을 파헤쳐 놓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늑대로부터 받는 불편 때문에 늑대를 잡아죽였지만, 실은 늑대는 멧돼지를 잡아먹음으로써 농가의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던 것입니다. , 마을 사람들은 인가와 늑대와의 관계만을 생각했지 늑대와 멧돼지, 멧좨지와 인간과의 관계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의 얘기로 돌아가서 만약 육식동물이 없어진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초식동물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서 밀림에 있는 대부분의 풀이나 나무는 없어지게 될 것이고, 산림은 황폐해 질 것입니다. 많은 초식동물이 뜯어먹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도 먹을 것이 부족하면 많은 동물들이 굶어 죽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끔찍한 장면만을 보고 육식동물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식동물이 없어짐에 따라 초식동물이 급격히 늘어나고 산림이 황폐해 지기 때문입니다. 산림이 황폐해 지면 나무가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는 산소가 부족하게 되므로 인간도 생활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동물은 이처럼 서로간에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살아 갑니다. 또한 인간도 이러한 동물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련을 무시하고 사물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앞에서 예로 든 지역 주민들처럼 큰 재난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관련 : 관련, 연관, 관계라는 말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이라는 말 대신에 연관, 관계라는 말을 써도 그 의미는 같습니다.

 

육체와 정신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종교는 흔히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버립니다. 육체는 탐욕스러운 것으로 죄악만이 가득한 현실세계에 속하며, 정신은 선만이 가득한 천국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육체와 정신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신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신체, 즉 육체의 일부분입니다. 육체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정신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심리학(인간의 정신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생리학(신체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을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리학을 공부하는 경우 이는 생물학(생물일반에 관한 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생물학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화학적 과정을 무시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화학과도 관련성을 갖습니다. 화학은 분자*의 결합과 분해라는 문제를 다루는데 분자는 원자로써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원자를 연구하는 물리학과도 관련을 갖습니다. 또 물리학이 연구하는 여러가지 요소의 기원을 탐구하는 경우 그 요소의 생성을 연구하는 지구과학, 또 지구가 그일부분을 이고 있는 태양계의 연구(천문학)등과도 관련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과학은 상호간에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분자 : 분자란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가지는 최소단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물이란 물분자의 모임이고 산소는 산소분자의 모임입니다. 만약 물질을 분자보다 더 작게 나눈다면 그 나뉘어진 것은 그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나타내지 않게 됩니다.

 

** 원자 : 물질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말하며 이는 원자핵과 그 둘레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회에는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노동자, 학생, 농민, 광부, 어부, 기업주 등이 있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가지 직종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은 각자 외따로 떨어져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련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는 정치를 함에 있어서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생각이나 생활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국민들로부터 분리된 정치라는 것은 생각하 수조차 없습니다. 노동자가 만들어낸 생산물은 상품이라는 형태로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됩니다. 만약 섬유공장의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켜 옷을 만들어내 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입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 광부가 산에서 삭탄을 캐내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겨울에 추운 방에서 잘 수밖에 없습니다. 농민이 쌀을 생산해내지 않는다면 당장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서로간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의 각 부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연관을 맺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 또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예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존재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자연이나 인간, 사회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서 과학사에서 유명한 토리첼리의 실험*을 볼 수 있습니다.

 

* 토리첼리의 실험 : 토리첼리(1608~47)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한 끝이 막혀 있는 유리관에 수은을 넣고 다른 쪽끝을 수은이 담겨 있는 그릇에 넣으면 그릇의 수은면보다 약간 높은 곳에서 유리관의 수은면이 정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는 대기의 압력(기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실험을 토리첼리의 실험이라고 부릅니다.

 

자연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물의 관련성을 인식함으로써 위대한 발견을 해 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은을 넣은 유리관을 거꾸로 하여 똑같이 수은을 넣은 그릇에 세워 놓으면, 관 속의 수은은 일정한 높이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며 그릇의 수은면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멈춥니다. 만약 이러한 현상을 주위의 조건과 분리하여 생각하면 이해하는 것이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관이 세워져 있는 그릇의 수은의 표면은 주위의 조건과 분리되어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와 접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주위 조건과의 관련성을 생각하게 되면 그릇에 있는 수은의 포면에 대기의 압력(기압)이 가해지기 때문에 관 속의 수은은 어느 일정한 높이에 멈추어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토리텔리라는 사람은 이처럼 주위 조건과 수은관 현상의 관련성을 인식함으로써 대기의 압력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하고 이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각각 고립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늑대는 늑대고 멧돼지는 멧돼지이며 이들은 서로간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지요. 그리하여 `스포츠는 스포츠, 정치는 정치'라고 주장합니다. 스포츠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스포츠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요? 사실 스포츠와 정치는 다른 것입니다. 분명히 서로 차이가 있고 그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스포츠는 스포츠, 정치는 정치'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올바른 것입니다. 하지만 스포츠와 정치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스포츠와 정치는 완전히 독립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만약 국가의 재정이 넉넉치 못하여 운동장 시설이나 수영장같은 것을 건설할 수 없다면 스포츠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접국과의 외교적 분쟁이 일어난다면 스포츠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최근에 와서는 스포츠를 통한 외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아직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국가와 곧바로 정치, 경제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는 힘들기 때문에 먼저 스포츠를 통해 두 나라의 관계를 가깝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몇년 전 미국의 탁구 선수들이 중공에 가서 중공 선수들과 친선 시합을 하고 이것을 계기로 해서 미국과 중공이 국교를 수립한 것은 그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스포츠와 정치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포츠는 스포츠, 정치는 정치'라는 식으로 양자의 관련성을 무시하는 견해는 현실을 무시한 견해이며 따라서 올바른 견해일 수 없습니다.

 

사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견해는 똑같은 의미에서 `노동자는 노동자, 정치는 정치'라고 주장합니다. , 노동자와 정치의 차이점만을 강조하고 그 관련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노동자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우리나라의 인구를 4천만으로 볼 때 노동자의 수는 약 700만에 이릅니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에 있는 각 사회계층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에 있어서 가장 큰 것입니다. 노동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 그 자체가 정치에 커다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노동자들의 생각, 생활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일시에 파업을 일으켜 일하던 손을 멈춘다면 경제가 마비될 것이고 이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또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노동자들의 생활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서 섬유산업이 적극 권장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농촌에서 올라와 도시의 섬유공자에서 일하는 여자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노동자와 정치는 상호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하고 노동자와 정치의 차이점만을 강조하는 견해는 `노동자는 노동자, 정치는 정치'라고 말하게 됩니다. , 노동자는 노동자고 정치는 정치다, 노동자와 정치는 별개의 것이다, 노동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노동자가 할 일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쓸데없이 어려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해야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정치는 현실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노동자와 정치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는 19452차대전 당시 일본의 나가사끼에 떨어진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에 참가했던 미국의 과학자 존 힐튼의 말입니다.

 

"나는 나가사끼에 투하된 최초의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스스로 직접 참가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깊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랄 만한 파괴력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끔찍한 폭탄의 제조에 내 자신이 참가한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원폭제조라는 일을 맡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과학을 위한 과학'이라는 잘못된 철학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은 근대 과학의 독소입니다. 과학을 사회생활이나 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전쟁중에 원자폭탄의 제조에 참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과학자는 `순수과학'에 헌신해야만 한다, 그 나머지는 기술자나 정치가의 일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학은 인류의 이익에 보탬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나에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원자력이라는 것은 그것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인류에게 커다란 이익을 자져다 줍니다. 원자력 발전소라든가 원자력을 이용한 질병 치료같은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원자력을 이용해서 폭탄을 만드는 경우 그것은 지구상에 있었던 그 어떤 무기보다도 훨씬 큰 파괴력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소련이 앞다투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만약 이러한 핵폭탄이 일시에 터진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없어질 것입니다. 풀 한 포기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존 힐튼은 이러한 원자폭탄의 제조에 자신이 참가하게 된 동기가 `순수과학'이라는 미명하에 과학을 사회나 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은 사회나 인간에 대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과학의 의미도 사회나 인간과의 관련성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사물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없게될 것이고 나아가 현실에 대하여 잘못된 태도와 행동양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