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고려청자, 그 간결함과 그윽함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고려청자, 그 간결함과 그윽함

 

 

김철순

 

 

고려 자기의 아름다운을 우리는 그릇의 형상, 표면에 새기고 그린 무늬와 그림, 색깔, 그리고 살결의 촉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원래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자로 재듯 과학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과 마주 선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관과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과 생각 그리고 바탕이 문제될 따름이다. 많은 말로 꾸민 논리를 떠나 오랜 생활과 접촉을 통해 알고 느끼는 아름다움이 중요한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디가 어때서 사랑스러우며 나는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종합, 분석, 귀납, 연역할 수도, 할 필요도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무조건 직접 주관적이며 나만이 지니는 비밀의 감정으로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느낄 수 있는 좋은 점과 아름다운 점을 추려내어 이야기하면 그 동안 혼자만이 간직해 온 생각과 느낌을 더욱 심화할 수 있고 또 막연히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자기의 아름다움은 촉감, 색, 문양, 형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 하나 하나 속에 스며있는 도공들의 마음으로부터 무늬의 뜻, 의장의 변화 등 끝없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일들에 집착한다든지 너무 전문적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면 가장 중심적인 아름다움을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려자기를 그 모양, 그림, 그리고 살결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서 알아보기로 한다.

간결한 형태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는 그림의 12세기의 고려 청자 병은 한국 도자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물병, 술병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그릇 모양이고 중국 등 이웃 나라에도 이와 같은 모양을 한 병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병을 자세히 보면 불룩한 몸통이 어깨 부분으로 졸아들면서 갸름한 목을 이루고, 그리고 입 언저리가 밖으로 살며시 벌어져 있다. 파란 청자 색깔밖에는 이렇다 할 장식 없이 깨끗하고 말쑥하게 차린 그릇이지만 그 몸통 면이 구부러지는 방향, 각도가 위의 어깨, 목, 입 부분과 절묘한 균형,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조화는 그릇 전체를 받치는 가는 굽으로 인해 더 돋보이며, 그 모든 부분들이 하나의 병 덩어리로 어울리고 있다. 더할 수 없이 간결한 이런 작품은 고려 자기 중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의 잔, 그림의 접시, 그림의 대접이 모두 그러한 단순하며 깨끗하고 간명한 형태를 한 그릇들이다. 그림의 접시는 그런 간결함을 가장 잘 나타내며 그림의 대접에는 비록 연꽃 무늬가 양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깨끗함을 더하고 있다. 그림의 잔대 는 받침 부분이 비교적 복잡하게 되어 있으나 위에 올려놓은 잔의 단순한 모양처럼 전혀 복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간결함은 반드시 그림과 ⸃처럼 단순, 소박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그림 ⸅의 죽순 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주전자, 그림 ⸆의 정병, 그림 ⸇,⸈의 주전자, 그림 ⸉의 매병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런 작품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비록 연꽃, 죽순, 오이, 표주박 모양을 본뜨고 거기에 그림을 새겨 넣었으나 모든 부분들이 결코 어떤 번잡스런 장식성을 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간결함을 더해 주는 강조점 구실을 한다.

간결함은 정교, 섬세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와 같은 깨끗함은 정교, 섬세하다는 점과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정교 섬세하다는 말이 작품의 한 구석 한 구석에 모든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뜻이라면 정교, 섬세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민족의 전반적인 성격, 예술성, 그리고 문화적 특징을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정교, 섬세와는 좀 거리가 멀다. 정교, 섬세 는 흔히 전체보다는 부분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한 형태를 이루는 큰 덩어리 자체보다는 그 덩어리 안에서의 작은 부분만을 붙들고 갖은 잔재주를 다 부린 작품들을 섬세하고 정교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중국의 예술은 정말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작디작은 알갱이 속에 현미경이나 재고 보아야 읽을 수 있을 만한 글자로 불경 한 권을 새겨 넣는다. 구슬 속에 또 구슬을 그리고 그 속에 또 구슬을 만들어 내는 손재주라든지, 또는 턱도 없이 큰 화폭 속에 수천 수만 명 사람, 짐승, 산천 초목을 머리카락 세듯 그려 넣는 따위는 분명히 정교하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국 사람들과는 관계가 먼 이야기이다. 한국은 비록 땅덩어리는 작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을 받아 왔으나 작디작은 일에 몰두하며 유치한 손재주 피우는 일을 하지도 않았고, 그런 일을 높이 치지도 않았다. 고려 자기만 하더라도 거기에 새긴 그림이라든지 또 상감한 학. 구름을 따져 보면 정교함, 섬세함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분명히 그림 ⸁과 ⸃의 작품은 아무런 가식 없는 순수함만을 추구했고 그림 ⸂는 잔만을 그대로 놓았을 때의 불안정함을 보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받침을 넣고 그러면서도 그림 ⸄에 불교적인 꽃, 연꽃을 형상화하여 불국사의 다보탑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 본 것이다. 그림 ⸄의 대접을 양손에 받아들고 차와 물을 마실 때 손바닥에 와서 닿는 그 연꽃의 가르침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한다는 연꽃의 가르침을 체험하도록 이런 꽃잎을 거기에 양각했던 것이다.

그림 ⸅,⸇,⸈의 주전자들도 비록 전체 모양은 죽순, 연꽃, 표주박, 오이 등을 닮았으나 그런 식물의 실제 모양에 전혀 구애받지도 않았으려니와 또 그것을 닮았느냐 닮지 않았느냐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그림 ⸅ 의 주전자는 선비의 상징이며 풍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나무의 죽순으로 불교의 연꽃 피어오르는 순간을 영원으로 형상화 하고자 했던 것이다. 창조의 순간, 생명의 시동, 발전의 과정,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무한히 뻗어나는 힘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림 ⸇은 위와 아래에서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모양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를 표주박에서 그 모양을 빌어 만들어 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주전자라기보다는 그런 형태가 서로 가까이 올 때 무엇으로 어떻게 대립하고 화합할 수 있나를 몸통, 손잡이, 주둥이, 그리고 뚜껑들로 답한 것이다. 그림 ⸈의 주전자가 구태여 오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고구려 도공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대로 한여름 즐겨 먹던 오이의 신선함일 것이다. 오이 자체가 아니라 오이가 지니는 그 시원함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고려 자기를 만든 사람들은 그릇의 작은 부분을 섬세하게 꾸미기보다는 전체의 분위기를 간결하게 나타내고자 했다.

묵직한 형태

그림 10, 11의 주전자와 12의 매병에는 앞서 살핀 고려 자기의 특징인 간결함과는 좀 다른 공통성을 찾을 수 있다. 경쾌하고 우아하다기보다는 중후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날씬하고 가냘픈 곳이 없고 모두가 무겁고 당당하다. 그림 12의 매병이나 그림 9의 매병들은 그 밑바닥이 땅덩어리 위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것처럼 단단하게 서 있다. 넓적하게 퍼진 어깨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입과 아래가 퍼진 몸통이 이들 매병을 땅 속 깊이 단단하게 자리잡은 듯 보이게 하는 것이다. 작은 몸통으로 큰 상체를 받치고도 안정감을 자아내기 위해 동체 아랫부분을 약간 넓혀 주었다. 그러나 이 두 매병을 하나는 간결함, 또 하나는 중후함의 표준으로 내세우기는 곤란하다.

이에 반하여 그림 10, 11의 주전자들에서는 모두 앞서 매병에서 찾은 바와 같은 무게를 똑똑히 느낄 수 있다. 투박하리 만큼 굵고 단단한 덩어리가 무겁게 아래로 고정되어있다. 그릇들의 여러 부분이나 그림, 무늬뿐만 아니라 그 모양 자체가 거칠고 무겁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려 자기를 우아한 여성적인 작품으로 알고 있다면 이런 작품들을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 토기와 그 이전의 그릇에 나타난 무게, 또 고려시대 이후의 한국 도자기, 공예품, 예술품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알고 난다면 고려 자기의 무게가 오히려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림 10에는 무게가 있다. 흙으로 만든 사기라기보다는 쇳가루를 이겨 만든 놋그릇 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은 그릇 전체를 덮은 연꽃잎의 붉고 두툼한 선이나 목 언저리의 조각 때문만은 아니다. 진흙, 흙탕물 속에서 자라도 티없이 맑고 깨끗한 꽃, 그러나 그 진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삶의 철학을 상징한 꽃봉오리를 이런 주전자로 바꾸면서 우리의 도공들은 땅 위의 삶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같이 빚었던 것이다. 하늘 저 너머의 저승의 행복이 아니라 진흙탕 물 같은 이 속세의 삶에서 그들은 끝없는 즐거움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마음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조용함, 섬세한 기교를 초극한 이런 중후함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이 살아야하고 또 살아가는 이승은 이런 주전자들의 몸통같이 크고, 넓고 또 중요한 부분이며 누구도 갔다가는 돌아온 적이 없는 저승은 그 위의 작은 봉오리요, EH 그림 7 주전자의 작디작은 표주박 끝 부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11 주전자의 둥근 몸통과 굵은 대접은 무겁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런 무게를 알고 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 박물관에 있는 그림 13, 고려자기 주전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주전자는 간결함과 중후함이 하나로 결합된 가장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평범하고 단순한 형태지만 손잡이와 주둥이의 자리와 모양이 연밥, 연꽃을 엎어놓은 뚜껑과 아울러 그 무게를 더하고 있다.

따뜻한 형태

그런데 그림 13 의 주전자의 뚜껑은 우리에게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설명해 준다. 왜 거기에 언뜻 보기에 군더더기 같은 거꾸로 된 연꽃을 장식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에 모든 공예품에 그처럼 따라다니던 연꽃을 어디엔가 꼭 넣어야 했기 때문에 이 뚜껑에 그것을 뒤집어서 붙였을까. 나는 이 작품은 실물을 보지 못했으나 최순우 씨가「한국 미술 오 천 년 전」이라는 전시회에 소개한 그림을 거듭 보면서 왜 고려의 한 도공은 이런 뚜껑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 뚜껑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깨끗하고 멋진 현대적인 형체였을까. 더 이상 단순할 수 없는, 모든 군더더기를 다 없애버린 세련된 모양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뚜껑이 없다면 누가 그것을 8, 9 백 년 전 고려 사람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과연 그런 깨끗함이 한국적인가 하고 나는 다시 반문해 보았다. 한국 미술에 정말로 일본 벚꽃이 지듯 깔끔하고 그래서 일본도처럼 찬바람이 도는 그런 결백함이 있는가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가발 머리칼처럼, 파뿌리처럼 늘어진 뚜껑이 꼭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도공의 마음을 이해할 만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 주전자는 차갑고 다정스러운 곳이 없었을 것이다. 바로 어딘지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한 바보스런 뚜껑을 만들어 줌으로써 절간 후불 탱화에 연잎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선녀의 바람기처럼 훈훈한 인간미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완벽한 기교가 주는 초인간적인, 비인간적인 쌀쌀한 분위기를 한국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멀리했다. 사람의 체온, 체취가 없는 신의 나라, 신의 재주를 찾지 않았다. 먼저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어야 했다. 그런 따뜻함을 모든 문화, 예술, 공예 속에 끄집어 들였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어딘지 모자라는 데에 있고 그런 곳에 사람의 훈김이 서려 있는 것이다. 어느 작품이나 이런 인간미가 없다면 거기에는 생명 자체의 흔적을 더듬을 수가 없다. 그림 13의 주전자가 그 모든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사랑과 생명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따뜻함은 비단 고려 자기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의 커다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여기 나온 모든 고려자기를 하나 하나 따져갈 때 간결함의 상징과 같은 그림 1의 병이나 그림 3의 접시들조차도 그 형태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뜻함이 있는 것이다. 주전자, 매병, 정병, 연적, 고려 시대 모든 작품에는 그런 따뜻한 인정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정이 들고 친근해지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형태의 일치성

이제 고려 자기의 따뜻함, 무게, 간결함을 이루는 형태 구조의 비밀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형체 면으로 볼 때 고려 자기는 그 원형을 신라 토기 또는 한국 고대 도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극히 일부의 특수한 그릇들을 제외하면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긴 세월 동안 찾아낸 한국의 형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비록 중국, 일본에 비슷한 모양의 그릇들이 있다해서 우리 것은 중국을, 일본 것은 우리 작품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일률적으로 속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고려 자기가 비록 유약을 바르고 그 전에 없던 그림과 무늬를 새기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국 민족이 긴 세월을 통해 발전시킨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우리가 여기서 알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고려 자기는 한국의 모든 공예품처럼 대량 생산하지 않았고, 한 작품 한 작품을 도공들이 정성 들여 만들었다는 점이다. 중국이나 일본 또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수백 개씩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냈으나 한국 사람들은 그처럼 생산하지 못했고 그래서 백이면 백 모든 그릇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 점이 한국 도자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철순/ 미술 평론가이며, 저서로는 공예에 관련된 여러 글이 있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