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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건축의 미의식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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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건축의 미의식

 

고 주 석

 

동양 문화권,서양 문화권

동양과 서양의 사고를 유형화하여 창조와 미에 대한 각 문화권의 이해가 어떠한지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전통 문화, 예술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건축가들이 설계 행위의 방향을 높게 잡는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글에서 동양이라 함은 편의상 인도를 경계로 한 동아시아의 불교, 중국 문화권을 지적하고, 서양이라 하면 서구의 기독교, 그리스, 로마 문화권을 의미한다. 나는 통상적으로 이슬람교의 문화권은 그 폐쇄성 때문에 불교권보다 기독교권에, 동아시아와 같은 농경 문화보다는 유목 문화에, 감정 문화보다는 관념 문화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세계 문화권을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문화권으로 크게 구분하고 이들이 대략 500년 간격으로 발생하면서 갈수록 감정 표현을 억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렇게 문화권을 유형화하다 보면 국지적 특수성을 소홀히 다루거나 또는 단순화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이나 뿌리를 본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창조와 미에 대한 서양의 이해

유태, 기독교 문화권에서 창조의 개념은 성경의 창세기에 보이듯이 무에서 유를 낳는 행위이다. 창조라는 개념 자체가 기독교 신앙이 전제로 하는 절대적 신, 즉 창조주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를 하기 위해선 신의 영감을 받는 것이 필요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의 섭리를 반영하는 것이며, 또 아름다운 물체를 창조하기 위해선 성스러운 균형을 포함한 절대미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기독교 세계관은 또 창세와 종말이 있음을 전제로 한 역사관을 낳았고, 인간은 이러한 종말의 위협에서 구제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극락을 추구했다. 즉 신이 영원성, 유토피아, 파라다이스와 같은 개념의 전제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창조적인 사람은 천재 또는 신의 아들로 보아, 이는 노력에 의해 발전하거나 개발되는 것이 아니고 유전적으로 물려받거나, 신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술인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을 신비스럽게 여기는 경향을 낳았다. 그래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건축가는 '디자인은 가르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자기 우월성을 확신했다. 완벽한 신이 만든 창조물, 신의 섭리에 따라 만들어진 창조물은 완벽한 것이므로 수정이나 증축이 불필요하고 불가능한 것이다.

서구 문화의 또 다른 기둥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시작된 관념주의, 이성주의 사고로서, 논증과 실험으로 과학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과학과 기술을 통한 사회와 문화의 진보와 발전을 추구하는 적극적, 목적론적 태도를 낳았다. 즉 진보, 발전이란개념은 서양의 계몽 시대가 낳은 개념으로, 이는 서양 문화를 원시적 사회의 문화보다 앞선 것으로 주장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기독교 문화의 원시적 사회의 문화보다 앞선 것으로 주장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기독교 문화의 배타적 우월 의식과 겹쳐 서양의 식민주의 정책의 합리화에도 이용되었다. 지금도 경제 발전, 사회 발전, 개발국, 저개발국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서구의 사고와 어휘가 오늘날의 세계를 얼마나 많이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진보와 발전은 선형적 시간 개념을 전제로 과거, 현재, 미래를 보는 기계적 시간 개념을 낳았고, 또 현상의 해석에 원인 결과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 구조를 낳았으며,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의 분리도 초래하였다. 자연 속의 조화, 구조, 질서의 존재를 확신하는 과학자들은 그들의 이론 구조나 질서에 맞지 않는 자연 현상과 사회 현실을 우연, 실수로 파악하여 무시하거나 과소 평가하는 경향도 낳았다.

건축에서 '구조', '질서'의 개념은 오늘날 거의 모든 건축 이론의 대전제가 되어 있고, 건축을 공학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형태적, 공간적, 경험적, 관념적 구조로 생각하고, 설계 목표를 질서의 추구와 동일시하는 경향까지 낳았다. 이러한 구조 개념과 위에 말한 창조 개념에 근거해 건축의 설계 행위를 마치 새로운 구조, 형태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건축의 본질이 객체, 즉 건축물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탈구조주의는 서양 철학과 과학의 뿌리에 회의를 느끼고 이러한 관념적 사고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기독교적인 창세의 이론에 위협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과학 세계와 기독교 신앙 간에 균열을 주고 있다. 인간은 신의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고 동식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고로써는 원숭이와 인간이 진화적 사촌이란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따라서 진화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탈구조주의는 이러한 문화 전통의 제한과 한정에서 벗어나려는 것이고, 언어를 이용한 논리와 이에 입각한 진리 추구의 한계성을 의식하는 해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미의 해석, 예술가의 창작 행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미와 예술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미학 분야의 일이었다. 그러나 서양 철학계에서 철학적 접근에 의한 창작의 이해는 언제나 순환 논리에 묶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원척적으로 이성 중심적인 서양 문화가 감정의 세계인 미적 경험을 이해한다는 데 모순이 있는 것은 분석적, 축소적인 서양 과학이 종합적, 환경적인 창작 행위를 이해하는 데 부적합한 도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어에 의존한 서양 철학이 스스로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관념적 접근에 의한 미학과 예술 평론은 늘 부족하고 결정적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이성 중심적인 서양 문화와 언어에 입각해 창조와 미를 해석하는 문제점 및 한계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양 철학과 현대 과학은 실체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본질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관념과 개념에 입각한 논리 구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창조와 미에 대한 동양의 이해

한국미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선조들이 지은 예술품의 배경이 된 정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한국 고유의 것으로만 보기보다 우선 동양의 한 유형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동양 문화는 서양 문화와는 원천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실체에 접근한다. 서양 문화가 이성 중심적인 데 비해 동양 문화는 감정 문화이고, 지적 논리보다 감성적 직관에 의한 총제적, 경험적 실체 파악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도 '정'과 억압된 감정인 '한'이 중요한 어휘인데, 두 개념 모두가 '마음 심'자를 끼고 있다.

 

우리는 요즈음도 전화나 편지로 일을 처리하거나 인사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서 얼굴을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양의 어휘에서 명사, 추상적 개념보다 형용사, 부사가 더 풍부한 것도, 서양이 물체, 결과에 관심을 두는 반면 동양은 감정, 사건의 과정에 관심을 많이 두는 데 따른 현상이다. 서양 문화가 실증주의를 강조할 때 동양 문화는 간결하게 본질을 꿰뚫는 것을 추구한다. 선이란 '단순하게 보는 것'에 해당한다. 실증주의, 과학주의 사고는 객관적 증거를 중요시하고 주관적, 심증적 판단을 억누르게 함으로써 자연 과학의 발전, 기술 문명의 개발에는 크게 기여하였지만, 주와 객의 이중성을 낳았고, 개념에 입각한 논리 구조를 실체에 의한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보고 무엇보다 과학, 물질 문화의 발전 속에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괴리시키고 실존의 불안을 야기시켰다.

동양의 무의 사고는 주와 객 사이의 인위적 구분을 거부하고 주·객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실체, 진리를 경험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실체를 관념화하고 말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본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참다운 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무언의 경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석가의 제자는 단지 '미소'로만 전달,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의 사상은 주와 객, 감성과 이성의 불가분적 음양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서양 문화가 시간과 공간을 이분적으로 개념화하여 각자를 선형화하고 정적인 것으로 여긴 반면, 동양에서는 시간과 공간보다 그 사이에 있는 생태를 먼저 중요시하였다. 동양의 공간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시간'이고 시간은 '시간으로 이루어진 공간'인 것이다. 동양의 미술과 건축은 외부적 형태가 그 속의 빈 자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동양 음악은 침묵을 듣게 하는 것이다.

한국 건축은 '사이'의 개념을 중요시한다. '사이'의 크기는 기능과 사회적 위계에 영향을 받는 탄성이 있다. 또 공간, 시간, 인간 모두 사이의 한 동류이다. 서양의 과학적 사고가 물체를 부분들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불변하는 요소들을 분석함으로써 본질 파악을 추구하였다면, 동양은 사이, 즉 요소들 간의 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거기에서 가치와 의미의 원천을 찾았던 것이다. 서양의 건축이 내적 구성, 폐쇄적 조직을 강조한 객체의 형태를 추구했다면, 동양의 건축은 그보다 객체의 형태와 그것이 놓이는 상황 및 자연 환경과의 어울림을 통해 미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동양의 목재 가구법에 의한 건축 구성 형식은 조적식(돌·벽돌 따위를 쌓아 올리는 건축 방식)보다 환경에 개방적이고 우기에 환기를 좋게 할 뿐 아니라, 내·외부 공간의 차단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대화를 늘 강조하는 것이다. 즉, 건축이 무대나 액자를 설정하고 자연이 끝을 내주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동양 건축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사이가 깊은 추녀, 디딤돌, 기단, 마루의 높이 등에 의해 밀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세종로에서 경복궁을 볼 때도 삼각산이 축을 살짝 비껴 여백을 메꾸어 주고 있음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세밀한 풍수에 의한 입지 설정이라고 나는 믿는다. 동양 건축은 허한 방을 두고 마당을 두어 무 또는 여백의 미를 주고, 이용자 참여에 의해 건축의 본질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서 허는 실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서양의 빈 공간과는 달리 기가 있는 공간이다. 즉, 동양 건축의 미는 건축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과 자연과의 사이, 건축물과 이용자와의 사이의 설정에 있으며, 자연과 인간에 개방된 시스템을 지향한다. 이러한 건축은 그의 특수성과 아름다움이 건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환경과의 연결의 특수성,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 또 한국의 영조 사업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발명, 창조에 의한 절대미의 추구보다, 자연의 기를 파악하고, 자연의 미와 연계시킴으로써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는다.

나는 젊은 건축학도 시절, 왜 우리 조상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건축 양식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서양의 다양하고 '찬란한' 건축 양식에 비해 우리는 별로 내어 보일 것이 없지 않은가 하고 느낀 적이 있었다. 요즈음에 와서는 예술에서의 형태의 발명, 새로운 것의 추구는 서양의 전위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서양에서 독창적이라고 하는 것은 가끔 남과 다른 것, 특이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남으로부터의 차별성을 구현하는 것이 건축의 독창성이라고 믿는다. 물론 개체성을 구현하는 것은 의의가 있고, 또 우리는 본능적으로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기만의 독자성을 나타내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건축에서 기능과 환경 및 의미의 새로움 없이 단순히 변화를 위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신선미나 유행으로서의 소비 가치는 있지만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형태가 작가나 이용자의 정신 문화적 본질이나 개성 구현에의 뿌리 깊은 욕망과 연결을 잃었을 때, 이는 더욱 문제가 된다.

동양의 미술과 건축은 이와 달리 독창성의 집념보다 자연과 도와 기에의 연결에 의한 정신적 미학적인 경험의 설정에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건축은 명당을 파악하고 위치, 형태, 재료, 경험 면에서 자연과의 보완적 연결을 통해 그 미와 특이성을 추구했다.자연은 거의 대부분 아름답고 특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로 건축적 발명의 필요가 없고, 자연의 가능성과 암시의 발견, 자연과의 공생적 어울림에 관심을 둔 것이다.

 

더 나아가 동양은 인간의 실존적 안정을 부·힘의 과시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존재를 그대로 인지해서 받아들이고 자연과의 일체를 이루는 데 두었다. 이는 인간의 개체적 자아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에서의 독창성은 남과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뿌리, 본질, 근원에 접함으로써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 동양의 창조와 미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작을 하기 위헤서는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상태를 '자연스럽게'하여 자기와 자연의 일체 또는 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동양 건축에서의 통일성은 형태의 통일성을 의미하기보다 상황·환경과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포괄성을 지닌다. 즉 건축이나 예술은 환경의 변화에 피해를 받을 수도 있고, 또 변화, 적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양화는 작가의 저작권을 강조한 폐쇄된 작품이 아니고 소유자나 감상자가 시를 첨가할 수 있는 개방된 작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성이 아니고 상징성의 직관적 경험이다. 즉 그림의 본질은 그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맺는 말

창조와 미에 대한 동서양의 의식을 유형화하여 비교한 것은 어느 쪽의 우열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의 깊이와 의의를 부각시키려는 데 있다. 논리와 형태미에 치중한 서양이 건축의 양식 개발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동양은 정원을 꾸미는 데에 많은 훌륭한 예를 낳는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 건축가는 이제 한국 전통 건축의 창작 과정과 미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서양 건축 기법의 장점과 한계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건축이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잃고 금수 강산이라고 불리웠던 국토의 자연미와의 어울림을 잃는 일이 없도록 건물이나 환경을 설계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의 지도적 건축가들이 '진취적 현대 건축'과 '보수적 전통 건축'을 형태와 양식 및 공간에 관한 분석을 통해 물체적으로 비교하고, 논쟁하는 것을 본다. 또 한편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로 '작품'의 추구에 치중하고, 건축상의 결정에도 이용자의 판단을 고려하지 않고 전문인만이 둘러 앉아 사진을 두고 평가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건축의 독창성과 미적 평가에 서구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건축의 목적이 예술품이나 미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건축을 형태, 색조, 질감, 공간 등에 의해 평가하는 것은 건축을 의식 세계의 구조물로 보고, 건축을 폐쇄된 장르의 작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건축이 동양 또는 한국 문화의 상징과 의미 체계에 연결되고 민족적, 역사적 기억과 접목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일반 한국인의 의미 있는 삶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는 독창성과 미에 대한 서양의 절대적인 태도와 동양의 상대주의적 태도가 서로 보완적이면서 각기 다른 유용성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권위적이고 기념성을 강조하는 공공 건물과, 평화와 우애를 강조하는 일상의 환경에는 각각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서양은 철학 속에 미학이 있고, 동양은 미학 속에 철학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서양이 진리와 미를 이성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였다면 동양은 이를 감성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서양인은 과학적으로 살았고 동양인은 예술적으로 살았다고도 하겠다.

서양 건축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거리감을 일으키고 동양 건축은 이러한 구분을 거부하였다. 우리 건축가들은 이제 특이한 '작품'을 만들어 시선을 끌고 상을 받는 것보다, 평범하나 바르고 좋은 건축을 만들어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데 집중할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동양 건축은 평범 속에 자연의 비범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동양 건축의 미는 사진으로는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는 극적이기보다 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경험하지 않고는, 자연과의 연결을 파악하지 않고는, 그 의미와 가치를 다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 건축의 정수는 엄격한 격식의 미보다 너그럽게 열린 산조 내지 파조의 미이며, 건축의 형태 및 내부 공간의 질과, 건축과 자연 풍경과의 연관을 아름답게 함에 있는 것이다.


고주석/서울 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으며,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건축학 박사를 받았다.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 교수이자 서울 오이코스 대표 건축가이다. 국내외적으로 유명 건축물을 많이 설계했으며 각종 학술지에도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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