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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두 얼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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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두 얼굴

장 수 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성

 

만약 어떤 사람이 봉건제 사회의 전형적인 풍경을 그린다면 그는 저 멀리 성채와 교회가 보이는 곳에서 농부가 가축을 이용하여 밭을 가는 모습을 그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본제 사회의 전형적인 풍경을 그린다면 무엇보다도 연기를 내뿜는 공장을 그려야 합니다. 만약 공장을 빼놓는다면 그의 그림은 분명히 제대로 된 그림이 아닙니다. 그만큼, 기계를 이용하여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풍경입니다.

그러나 기계제 대공업을 상징하는 공장들만으로 자본제 사회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공장의 겉모양을 헤집고 들어가 그곳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왜 그러한 기계제 대공업이 생기게 되었는지부터 생각해 봅시다.

사유 재산제가 확립된 이래 사람들은 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부는 곧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의 근거였기 때문입니다. 화폐로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진 다음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벌이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를 하는 방법은 봉건제 사회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를테면 봉건제 사회에서는 장사를 하거나 돈놀이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백화점 주인을 비롯한 상인들은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리고 은행주는 돈을 빌려 준 다음 그에 대한 이자를 받아 돈벌이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변적인 돈벌이 방법일 뿐입니다.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없다면 장사도 돈놀이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를 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상품의 생산입니다. 상품이란 말할 것도 없이 남에게 파는 물건입니다. 자신이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팔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자본제 사회의 중요한 한 특징입니다. 옷감을 생산하는 공장주나 자동차 공장의 주인은 그 많은 옷감과 자동차를 자신과 가족들이 쓰기 위해서 생산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할 따름입니다.

그럼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게 되는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는 먼저 자신의 돈으로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들여놓은 다음 원료를 사고 노동자를 모집하여 일을 시킵니다. 그렇게 하여 새 상품을 만들어 비싼 값에 시장에 다시 내다 파는 것입니다. 새 상품을 판매한 대금 가운데 공장과 기계의 설비비, 원료 구입비 및 노동자의 임금을 뺀 나머지가 공장주의 이윤이 됩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생산 수단(공장·기계·원료) ┐

화폐 →상품 │ → 생산 과정 → 새 상품 │→ 새 화폐

└ 노동력 ┘

이와 같은 상품 생산은 상업과 비교할 때 훨씬 큰 이윤을 갖다 주는 새로운 돈벌이 방법입니다. 생산의 중심지가 들판에서 공장으로 바뀐 것도 기계제 대공업을 도입하여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생산이 낳은 사회적 결과가 무엇인지를 차근히 따져 보아야 할 차례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져온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된 모순이 가져온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는 무엇일까요?

자본주의가 낳은 창조적 결과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이 낳은 긍정적 결과부터 알아봅시다.

가장 두드러진 사회적 변화는, 이전에는 노예나 농노로서 신체적 자유를 갖지 못했던 민중이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 마침내 신분적 구속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 동력은 노동력입니다. 자본가는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노동자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신분적 구속을 벗어나려는 농노와 자유로운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시민 계급은 이 점에서 이해 관계를 같이했고 봉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힘을 모아 싸웠습니다. 그 결과 민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초로 신체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널리 선포되었으면, 이에 따라 법적·정치적 평등이 주어졌습니다.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모든 인간의 능력과 개성이 존중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민중이 신체적 자유를 얻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인류사회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들을 간추려 봄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 자본주의적 생산은 폭발적인 공업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공장'이 부의 새로운 원천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이래 기계제 대공업이 급속도로 확대되었습니다. 영국은 물론이고 벨기에, 프랑스, 미국, 스위스, 독일 등에서도 공장이 증가하여 눈부신 공업의 발달을 낳았습니다.

이와 같은 공업의 발달은 농업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감소시켰습니다. 농업 인구의 감소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나라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농업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는 농업 인구가 기껏해야 4~7%에 지나지 않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1945년 해방 당시 총 인구의 약 80%에 이르던 농가 인구가 1990년 12월 총 인구의 15.3%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것을 1980년의 28.9%와 비교하면 농가 인구의 감소가 얼마나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은 도시의 발달을 촉진했습니다. 공업이 발달하자 농민들의 이농 현상이 두드러지게 늘면서 공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대 도시들이 생겼습니다. 중세의 도시가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변하기도 했지만 농촌에서 발전한 시장 경제의 거점이 새로운 도시로 변한 예도 있습니다. 산업화되기 전인 1750년경 영국에서 5만 이상의 주민을 가진 도시는 런던과 에던버러 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1851년이 되자 1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가 9개, 5만 이상의 도시는 29개에 이르렀습니다. 산업화에 따라 도시가 발전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셋째, 자본주의적 생산은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개발하여 생산과 소비의 범위를 넓히고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우리는 봉건제 사회에서는 만들어 내지 못하던 많은 새로운 생활 물자와 편의 시설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장 또한 전에는 기껏해야 한 지역 또는 나라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전세계가 하나의 상업권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수출과 수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국가 경제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 받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와 '세계사'는 세계 시장의 도래와 함께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본제 사회는 상품과 시장을 개발하여 생산과 소비의 범위를 넓히고 그 차원을 높였습니다.

넷째, 자본주의적 생산은 기술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기술 혁신은 폭발적으로 상품과 시장을 개발할 수 있게 한 힘인 동시에 상품과 시장의 개발로부터 커다란 자극을 받았습니다. 산업 혁명 이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발된 기술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해 온 기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제 사회가 자동적인 기술 혁신 동기를 갖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영국의 철강 산업과 철도와 석탄 산업의 소유주들이 기술 혁신을 통해서는 전혀 이익을 얻지 못하리라는 판단 아래 새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좋은 보기입니다. 자본제 사회의 기술 혁신의 동기는 전적으로 이윤 추구로부터 나옵니다.

어쨌든 자본주의적 생산은 전인류의 생활 향상을 위한 물적 토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처럼 인류 사회에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힘을 제공한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자본주의적 축적이 갖는 이러한 추세가 없었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 의의를 갖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몰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부정적 결과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사회적 결과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냐 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은 사회적으로 보면 아무런 계획 없이 이루어져 자연 자원의 낭비를 가져 왔고,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가 소수 개인의 점유물이 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본가는 상품을 생산하기 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사회에서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계획은 아닙니다. 더구나 자본가들은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을 다투어 생산함으로써 남아도는 물건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바다에 처넣을 망정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저 나누어주지는 않습니다. 자본가의 최대 목표는 오직 이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점은 사회가 많은 부를 생산하면 할수록 그 부가 점차 소수의 수중으로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회의 부가 어떻게 소수 자본가의 수중으로 집중되며 그 정도가 어떠한지를 알아봅시다. 자본가들은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전체 생산물 가운데 일부를 지급하고, 쓰고 남은 돈을 다시 사업에 투자하게 됩니다. 이때 자본가들은 그들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 더 좋은 기계를 사들여 생산을 합리화함으로써 생산비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어떻게든 낮추려 하게 됩니다. 이른바 자본의 고도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본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자본의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롭고 좋은 기계는 값이 비싼 까닭에서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에서 진 소자본은 몰락하게 되고 자본이 점차 소수 자본가의 수중으로 집중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소수 자본가가 사회의 부를 대부분 소유하게 됩니다.

영국의 경우 제 1차 세계 대전 전(1911~1913), 5%의 부유층이 전체 사유 재산의 87%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국민의 90%에 해당하는 빈민은 겨우 8%를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최근 미국의 비영리 연구 단체인「예산과 정책 우선 순위 연구 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상층부의 소득은 높아지는 반면 하층부의 소득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소득이 가장 높은 최상층 1%의 순소득은 122%늘어난 반면 가장 가난한 최하층 20%의 소득은 4%증가하는 데 그쳐, 1977년에는 하층 40%의 소득 총액이 상층 1%의 소득 총액의 두 배를 넘어섰으나 1988년에는 상층 1%의 순소득 총액이 하층 40%의 소득 총액과 맞먹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1988년 10월 현재 제조업체 수에서 한국 전 체의 1%에 해당하는 270개 사업체가 전 제조업 출하액의 40%를 점유하고 고용 인원 역시 전체 고용자의 18%를 점하며 수출액에서도 전 수출액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이270개 사업체는 한국의 30대 재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부의 집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전보다 먹고살기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를 보면 이제 보릿고개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영양 섭취도 전보다 대체로 나아졌습니다. 아무튼 전보다 잘살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민중이 빈곤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빈곤의 질적인 내용

 

흔히 빈곤화라고 하면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사회의 부가 소수자본가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민중은 점차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민중의 몫이 적어지는 것이 빈곤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적 개념인 동시에 질적인 개념이기도 합니다.

첫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양적 개념에서 빈곤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나타난 후 처음 오랫동안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생활 수준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한자리에서 단순하게 반복되는 노동은 노동자들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16∼18시간씩이나 찜통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먹거리를 사는 데도 부족할 정도로 턱없이 낮았습니다.

그 후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어지자 그들의 처지가 다소 개선되기는 했으나 상대적 빈곤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다소 자본주의를 가장 먼저 발전시킨 영국의 예를 들어봅시다.

1870년대 상류 계급의 사립 중등 학교에 다니는 11∼12살 짜리 소년들은 산업 지역학교(빈민의 자녀들이 다녔습니다.)의 같은 또래 소년들보다 평균키가 놀랍게도 13cm 나 컸습니다. 그리고 13∼19세까지의 소년들은 ‘모두 ’기술고의 아이들보다 7.5cm 나 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노동자들과 그 자식들의 영양 상태가 상대적으로 아주 나빴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우리 나라의 사정을 보여 주는 통계를 하나만 살펴봅시다. 보건사회부「사회 복지 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1988년 말 현재 한 달 소득이 도시 가구의 월 평균 지출의60%에도 못 미치는 빈곤 계층이 22%에 이르고 있고, 이 숫자는 1981년 20.9%에서1983년 20.3%로, 1988년에는 22%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 호황기에는 노동자들의 임금도 오르는 거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대적 빈곤은, 비록 시기와 나라에 따라 들쭉날쭉하기는 하지만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통계들은 한결같이 자본가들의 몫이 커지는 것에 비례하여 민중의 몫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들은 동시에 생산자의 지적 능력을 감퇴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은 점차 빈곤해집니다.

고도로 자동화된 기계는 훌륭한 생산 수단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을 더욱 기계의 부속품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과학 기술이 노동 과정에 도입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노동자의 지적 잠재력은 그만큼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맙니다.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부속품을 끼우는 노동자는 생각할 여유도 필요도 없어집니다. 자본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노동자는 지적으로 빈곤화되는 경향을 띠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산성이 높은 기계가 사용되면 노동자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에서 노동자는 빈곤합니다. 좋은 기계 설비는 한 사람이 전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자본가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거나 일용 노동자나 가내 노동자로서 반(半)실업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들은 산업 예비군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산업 예비군은 이런 구조적인 측면에서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산업 예비군을 둠으로써 자신의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는 자본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자본가에게 산업 예비군의 존재는 산업 현역군(취업중인 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의 강화 및 노동 운동의 순화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노동자들의 빈곤함에다 그들이 환경 오염의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갖는 맹목적인 이윤 추구 경향은 자연 자원의 파괴는 물론이고 인간의 황폐화를 재촉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그 최대의 피해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도시의 수질 오염과 공기 오염은 소화기와 호흡기 질환을 날로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공장 폐수와 매연이 그 주범입니다. 산업화가 되면서 의사가 갑자기 돈벌이가 좋은 직업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산림의 벌채와 자연훼손, 전쟁 무기의 가공할 환경 파괴 등은 인류 전체의 생존을 의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예로 들어봅시다.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1990년 현재 우리 나라 노동자 가운데 매일 6명 이상이 산업 재해로 숨지고 있으며, 연 13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 재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실로 놀라운 숫자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회사의 사장이나 중견 간부가 산업 재해를 당했다는 보도를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 산업 재해는 사회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빈고 해진다는 분명한 경제적 증거는 공황입니다. 공황이란 물건이 창고에 쌓여 있는데도 노동자들은 가난해서 그것을 살 수 없고 그래서 더 많은 물건이 창고에 쌓여 더 이상 생산할 필요가 없게 되는 상황이 모든 산업에 걸쳐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머리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인류는 이미 수 차례의 공황을 경험했습니다. 1852년부터 약 10년 간격으로 공황은 주기성을 띠고 나타났으며 1929년의 세계대공황 때는 세계 경제가 파탄을 맞았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갖는 모순은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나아가 먼저 산업 자본주의 이룩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들 사이의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앞에서 자본의 축적은 자연히 생산과 시장의 확대를 가져와,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인류 최초로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형성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동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많은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저개발 국가들을 단순히 자국의 원료 공급지로, 상품 시장으로, 자본과 기술의 수출 대상국으로, 노동력 시장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경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국가들 사이의 불평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은 계속되어 1970년대에 이르면 세계 인구의 16.5%에 불과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일부 석유 수출국들이 세계 생산량의 2/3을 사용하는 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제3세계 국가들은 겨우 15%를 사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 인구의 약30%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및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생산량의 2.4%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불행과 기아에 처한 ‘또 하나의 세계’인 셈입니다.

비록 통계자의 견해에 따라 다소 수치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도표 1]은 세계의 불균등한 경제력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도표 1] 세계 각 지역간의 불평등 (1976, 단위:%)

 

인구

총생산

재화 및 서비스 수출

석유 수출 국가

여타 제 3세계 국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

사회주의 국가

0.3

52.2

16.2

31.3

1.1

15.3

64.6

19.0

5.7

22.6

63.9

7.8

한편,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원료 공급자와 상품 시장, 자본 수출지 등으로 변하면서 저개발 국가들을 둘러싼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각국의 자본 규모가 일정 수준에 이르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다투어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섰고 이는 곧바로 그들 사이의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세력들의 극단적인 충돌이 가져온 피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생산은 폭발적으로 생산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전 인류의 생활 향상을 위한 물적 기초를 마련함과 동시에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민중의 빈곤화를 낳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인류 사회의 발전은 자본주의 회의 창조적 힘을 이용하여 그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한/ 수도침례신학교 교수이며, 저서로는 '산업과 제국', '계급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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